20200203-여행6일차
오르세 미술관에 갔을 때 패키지(?)로 오랑주리 미술관 티켓까지 샀었다.
미술에 대한 지식은 없지만 원데이 투어 때 내가 미술관 다니는 거 좋아한다고 했더니 가이드님이 한번 가보라고 추천해주셔서 덥석 사 버린 것.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공사 중이어서 모네의 수련 시리즈만 볼 수 있었다. 크기에 먼저 압도당하고 또 색감에 반했던 그림은 카메라로 한 폭에 담아지지 않았고 기울여 찍긴 했지만 직접 본 것만큼 감동을 주진 못했다.
파리의 마지막 날.
미술관에서 반나절을 보내고 느긋하게 점심을 먹으려던 계획은 생각보다 일찍 나오게 됐고 이제 어디로 갈까 고민하던 중 여기서 좀 멀리 떨어진 몽마르트에 가보기로 했다. 음... 그 당시 여행 오기 전에 본 영화가 ‘몽마르트 파파’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는데 나도 실제로 그 거리를 보고 싶었달까.
지하철에서 나와 나가는 길이 헷갈릴 땐 사람들이 많이 가는 쪽으로 따라가다 보면 도착할 수 있다. 가는 길에 우연히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있어서 기웃거렸는데 그곳이 ‘사랑의 벽’이란 작품이 있는 곳이었다. ‘사랑해’라는 단어가 전 세계의 언어로 쓰여 있는 그 벽에서 당연히 한글을 찾아 사진을 찍었다. 역시나 한국 사람들이 많아서 쉽게 사진 찍을 수 있었다. 한국인 최고.
표지판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사크레 쾨르 성당이 나온다. 성당보다 더 좋았던 건 성당 앞에서 보는 파리 시내였는데 날씨가 그렇게 좋지 않았는데도 한눈에 보여서 탄성이 나왔다. 그리고 ‘아 이거 못 보고 갔으면 아쉬웠겠다’ 싶었다.
거기서 천천히 내려오다 보면 몽마르트 언덕이 나온다. 사각형의 광장 안에서 화가들이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옆에 서서 그림 그리는 거 구경하고 싶었는데 자꾸 앉아보라고 잡아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냥 걷는데도 두 번이나 잡혔다.
여기에선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다. 내가 그림에 눈을 돌린 채(최대한 사람과 눈 마주치지 않고) 걷고 있는 도중 한 아저씨가 내게 잠깐 이리 와서 앉아보라고 했다. 거기서 앉았다간 분명히 그림 한 장은 그려야 하므로 무시한 채 걸었는데, 어디서 왔냐 어쩌고저쩌고 묻길래 내가 돈이 없다고 했더니(실제로 영국으로 넘어가는 날이었기 때문에 현금을 탈탈 털어 썼었다) 왜 여행하면서 돈 없이 다니냐고 혼났다. 내가 돈이 없는 것과 당신과 뭔 상관이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아서 참았다.
몇 발자국 못 가서 또 다른 아저씨가 따라왔다. 그는 주머니에서 검은색 종이와 가위를 꺼내 오리기 시작했다. 뭔가 계속 보다간 또 잡힐까 봐 슬쩍 걸어갔더니 역시나 말을 걸길래 이번에도 돈이 없다고 했더니 양손을 으쓱하곤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몽마르트 갈 계획이라면 공짜는 없으니 눈속임에 주의하시길...
몽마르트를 한 바퀴(빠르게) 쓱 돌고 천천히 골목을 내려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원래 가려던(평점이 좋았던) 레스토랑은 런치타임이 지나서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근처 레스토랑 아무 데나 들어갔는데 괜찮은 선택이었다. 식사를 하고 나와서 근처 기념품 가게에서 엽서 몇 장을 샀다(그 엽서는 지금 우리 집 냉장고에 붙어 있다).
근처 표지판을 보니 여기서 쭉 내려가면 물랑루즈 극장이 있다고 해서 걸어갔다. 영화에서 보던 그 물랑루즈라니... 내부까지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멋졌다. 밤에 봤으면 더 멋졌을 것 같다.
이 여정을 끝으로 파리 여행은 끝났다.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챙긴 후 유로스타 타러 갔다. 가기 전에 민박집 사장님께서 뼈해장국을 해주셔서 든든하게 먹고 출발할 수 있었다. 지내는 내내 맛있는 한식을 주셔서 감사했던 사장님.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 하셨는데... 아 언제 다시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