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02-여행5일차
나는 어느 여행이던 시장에 가보는 걸 좋아한다. 국내에선 잘 가지도 않는 시장을 왜 가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 나라 사람들이 직접 키우고 만든 것들을 가지고 나와 파는 것들에 매력을 느낀달까. 그래서 오늘은 주말에만 열린다는 빈티지 시장에 가보기로 했다.
빈티지 시장은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은 가야 했다. 이때쯤 비로소 귀에 이어폰을 꼽게 되었는데 뭔가 세상 뿌듯. 그전까진 소매치기 없나 눈치 보랴 지하철 역 확인하랴 음악 감상할 여력이 없었는데 진짜 여행자가 된 느낌이었다.
내가 너무 일찍 간 탓이었는지(열 시쯤이었던 듯) 상점들이 이제 막 문을 열고 있었다. 그 주변에 구역별로 시장이 모여 있었는데. 길 양쪽으로 늘어선 짝퉁 시장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가면 왼쪽 편에는 그림과 조명, 인테리어 제품을 파는 곳이 있고 오른쪽에는 진짜 빈티지 시장이 있다. 그 주변은 다 그런 시장이니 그냥 발길 닿는 데로 걸으면 된다.
골목골목이 진짜 빈티지스러워서 아무 데나 카메라 갖다 대기만 해도 그림이었다. 나는 거기서 캐릭터 배지를 잔뜩 샀는데 그게 내가 여행 와서 처음으로 산 것이었다. 여행 내내 가방에 달고 다녔는데 제법 귀엽다. 원래 목적은 빈티지 카메라를 사는 거였는데 여기에서도, 이후 넘어간 영국에서도 맘에 드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
점심때가 되어 밥 먹을 겸 시장에서 빠져나왔다. 전날 숙소에서 샹젤리제 거리 쪽에 홍합찜 식당이 있다고 해서 그쪽으로 이동했다. 홍합찜 요리는 한국과는 다르게 여기에선 고급 요리라 들었기 때문에 한 번은 먹어야 했다. 일단 개선문 쪽으로 가서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직접 올라가진 않았다. 엄청난 계단을 올라가야 하고 그것도 빙글빙글 돌아야 한다길래. 중간에 토하는 사람도 있다고 해서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섰다. (잘한 듯) 그 길로 쭉 내려오다 보면 오른편에 파란색 간판으로 된 식당이 하나 있다.
가게 이름은 Leon. 화이트 와인으로 푹 찐 홍합찜과 글라스 와인을 먹었는데 역시 숙소에서 추천해줄 만한 맛이었다. 담배냄새와 같이 먹어야 하는 것만 빼면 아주 좋았다. 동양인을 무시한다는 평이 있어서 살짝 걱정됐는데 나를 담당한 서버에게선 그런 거 못 느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서 본격적인 쇼핑을 해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유로와 파운드로 나눠 환전해왔는데(카드 쓸 요량으로 많이 해오지도 않음) 그것마저 쓰질 않아서 돈 좀 쓰겠다며 호기롭게 장담했다.
마침 블랙프라이데이 이기도 했고 쓰려면 얼마든지 쓸 수 있었는데도 돈도 써본 놈이 써본다고 막상 뭔가를 사려니 주저하게 됐다. 결국엔 자라에서 원피스 하나랑 입생 로랑 립스틱 하나 샀는데 지금까지 아주 잘 입고 잘 바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