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대단한 성과는 없지만, 나는 매일 설렌다

1인 기업가로서 마주한 현실, 그리고 멈추지 않는 확장

by Korea Tiger

브런치북의 마지막 장을 쓰며 나의 '방구석 대시보드'를 냉정하게 들여다본다.

야심 차게 시작한 시니어 유튜브 채널은 정체기에 접어들었고,

밤잠 설쳐가며 등록한 전자책 판매 부수는 여전히 조용하다.


전략가로 살아온 16년의 잣대로 보면, 지표는 솔직히 처참하다.

숫자와 성과가 인격이 되던 조직의 논리대로라면, 나는 지금 명백한 실패자여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게 아침을 맞이한다.

통장 잔고의 숫자는 변함이 없지만, 내 일상의 밀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 이유를 이 마지막 화에서 솔직하게 써보려 한다.




1. 성적표보다 소중한 '연결'의 기록

유튜브 채널 지표는 정체됐다. 전자책 결제 알림은 고요하다. 수치만 보면 실망스러운 게 맞다.

그런데 숫자가 가르쳐주지 않는 진실이 있다.


아들과 함께 로블록스 전장을 누비며 영상을 찍는 그 시간.

그게 우리 가족의 가장 강력한 연결고리가 되었다.


예전의 나는 어떤 아빠였나. 퇴근하면 피곤에 절어 있었고,

아이가 뭔가를 이야기해도 '응, 그래' 하며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주말엔 밀린 잠을 자느라 아이와 제대로 마주 앉을 시간이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아들이 어떤 게임 맵을 좋아하는지, 어떤 유튜버 말투를 흉내 내는지, 어떤 순간에 가장 크게 웃는지 나는 이제 누구보다 잘 안다. 댓글 하나에 같이 설레고, 조회수가 안 나오면 같이 머리를 맞대고, 다음 기획을 두고 의견이 갈리면 진지하게 토론한다.


9살짜리와 콘텐츠 전략 회의를 한다는 게 웃기게 들릴 수 있다.

그런데 솔직히 그 회의가 내 커리어 내내 참석했던 어떤 회의보다 더 재밌다.


image.png 묘하게 어울리는 로블록스 속 아들과 나의 캐릭터


전자책도 마찬가지다.

비록 결제 알림은 아직 없지만, 이 책을 쓰면서 나는 호치민 5년을 처음으로 '내 눈으로' 복기했다. 회사 실적 보고서로 정리되던 그 시간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잃었는지를.

누군가의 지시가 아닌 오직 나의 의지로 세상에 내놓은 첫 번째 지식 자산.

팔리든 안 팔리든,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언제든 다시 무기를 벼려 시장에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수치가 말해주지 않는 가치가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이제 그걸 믿는다.




2. 매일의 생산성이 만드는 작고 단단한 근육

회사를 나오고 처음 몇 달은 솔직히 불안했다.

KPI가 없다는 게 처음엔 자유처럼 느껴졌지만, 금방 공허함으로 바뀌었다.

내가 오늘 뭔가를 했는지 안 했는지를 증명해줄 시스템이 없었다.

잘하고 있는 건지, 그냥 시간을 낭비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만의 기준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늘 어제보다 한 가지를 더 알았는가.'

구글 오팔을 활용해 업무 워크플로우를 자동화해보고, 오픈클로 세팅을 만지며 나만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AI 도구를 활용해 직접 간단한 앱 개발 영역까지 기웃거렸다.


잘 됐냐고? 반은 됐고 반은 실패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는 정확히 알게 됐다.


회사에 있을 때 나는 '실행하는 사람'이었다.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최적화된 사람.

그런데 지금은 '설계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무엇을 할지 스스로 정하고, 어떻게 할지 직접 찾아내고, 안 되면 방향을 바꾸는 사람.

그 전환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걸 매일 느낀다.


동시에 그 어려움이 나를 어제와 다른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도.

통장은 아직 고요하다. 하지만 나의 엔진은 매일 조금씩 더 정교해지고 있다.

이 매일의 작은 시도들이 쌓여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는 날이 올 거라고, 나는 진심으로 믿는다.


image.png 치열하게 고민했던 구글 OPAL 자동화, 그리고 절반의 성공


3. 길 잃은 40대 동료들에게

요즘 우리 40대들은 참 어렵다.

회사에서는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집에서는 무거운 가장의 무게를 버텨야 한다.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늦은 것 같고, 그렇다고 지금 자리에 안주하기엔 불안하다.

앞도 뒤도 막힌 느낌. 그 감각을 나는 잘 안다.


나 역시 16년을 바친 회사를 뒤로하고 육아휴직에 들어섰을 때, 묘한 공포를 느꼈다.

당장 쫓겨난 것도 아니고, 명목상 자리는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복귀의 문이 열려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보일 뿐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애매한 불안감이, 어떤 명확한 이별 통보보다 더 오래 나를 붙잡았다.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속도보다 자존심이 무너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나는 이제 뭐가 되는 거지?'라는 질문이 밤마다 찾아왔다.


8개월의 정지와 2개월의 가속을 거치며 깨달은 게 있다.

회사라는 울타리가 사라진다고 내 인생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그 울타리 밖에 나와서야 비로소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조직 안에 있을 땐 '회사가 원하는 나'로 살기 바빴는데,

밖에 나오고 나서야 '내가 원하는 나'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낭만적인 이야기만은 아니다.

돈이 안 들어오는 현실은 차갑고, 기다림은 길고, 불안은 수시로 찾아온다.

다 괜찮은 척할 생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미래가 두려워 밤잠을 설치는 동료들에게 감히 한 마디 건네고 싶다.

당신이 쌓아온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

다만, 이제 그 시간을 회사가 아닌 당신 자신을 위해 쓰기 시작해도 된다.

그게 전부다.



[에필로그]

브런치북의 마지막 장이다.

대단한 성공 신화는 없다.

여전히 나는 옷방 구석에서 노트북을 켜고, 조용한 알림판을 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통장은 오늘도 얌전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매일 설렌다.


오늘 뭘 배울지, 아들과 어떤 영상을 찍을지, 또 어떤 무모한 걸 시도해볼지.

그게 기대되는 아침이 이어지고 있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냥, 오늘 하루가 내 것이라는 느낌. 그게 생각보다 꽤 강력한 연료다.


모든 시작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불안한 오늘을 견디는 모든 40대에게 진심을 담아 외쳐본다.

화이팅. 우리 아직 안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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