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한 쪽 구석에서 발견된 너.
희끄무레한 곰팡이 범벅이 된 귤을 보며 생각했지.
너, 참 안타깝다.
누구보다 상큼하고 달큰한 맛을 가지고 있었을 너는
탄생부터 결말까지 지니고 있을 원래의 사명을
누구한테도 보여주지 못한 채로
내 손을 거쳐 쓰레기통으로 떨어지게 된 거니깐.
그 얄궂은 운명의 한 조각에는 나의 책임도 있었다.
짧게 인사했다.
안녕, 잘가. 다음 생에는 더 값진 무언가가 되어서
꼭 너의 전성기를 맞이하길.
마흔이 넘은 나는 곧잘 시간이 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별거 아닌 하루가 지나간 밤,
이유없이 가슴이 두근거린다.
전성기. 까지는 아니라도
나라는 인간이 가진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손톱만큼이라도 알릴 수 있을까.
쓸데없지만 끝이 없는 걱정으로 꼬리를 무는 밤을 조심스레 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