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의 시작

첫번째 이야기

by 오 광년

2002년 9월 17일 03:28


“ ... 끝은 처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 그게 당신이 남기는 마지막 말입니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제복을 입은 자가 말했다.


“ 그렇습니다.”


남자의 얼굴은 몹시 피곤해 보였지만, 편안해 보이기도 했다.

온 몸의 피가 다 빠져버린 남자의 입술은 말라비틀어진 청어 덩어리 같이 쌜쭉하다.

오똑한 코 아래에는 핏자국이 무례하게 붙어 있고, 쓸쓸히 남은 한쪽 눈이 힘없이 감긴다.

취조실 건너편 방은 회색 불빛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서 있는 세 명의 남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제대로 녹화되고 있겠지?”


건조한 말투가 칼날처럼 내리 꽂혔다.


“ 예. 그렇습니다. 0시 30분부터 17일 3시 28분까지 전부 녹화되었습니다.”


나이가 많은 사내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흠. 그래. 적당하게 간추려서 그럴듯한 시나리오로 만들어 올려. 세 시간 준다.”


사내의 입가 주름 두 개가 깊게 파여 고집스럽게 보였다.




2002년 9월 17일 12:00


“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지난 15일에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벌어졌던 충격적인 사건에 희생된 분들과 그 유가족 여러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먼저 보냅니다.

저도.... 제 막내 아들을 잃었습니다....

지금 어떻게 우리가 이 아픔을 견뎌내야 할지 캄캄하고 참담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국민여러분.

우리는 함께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갈 것입니다.

그를 위해 현 당국에서는 사건 진상을 철저히 밝혀내어 더 이상의 의혹으로 국민 여러분이 두 번 상처받지 않도록.... ”


대통령의 침통한 얼굴이 화면 전체에 잡혔다.


브라운관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서울역 대합실, 지하철 안, 도시의 전광판, 시장 골목 안, 아파트 단지 등.

오열하는 사람들.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울음을 참는 사람들.

아직도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

세상이 망했다고 욕을 해대는 사람들.

넋을 놓은 채 입을 닫아버린 사람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이틀 전에 실제로 일어났지만.

아무도 이 사태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조차 헷갈렸다.

브라운관 아래 자막으로 ‘ 대통령 긴급 기자회견, 집단 자살 사건, 3만 명 사망 추정’

이란 글자가 떴다.


“ 지난 15일 밤, 대한민국에 유례없는, 아니 전 세계적으로 유사 사례를 발견할 수 없는 집단 자살 현상이 있었습니다. 서울 수양동 A빌딩에서 있었던 가수 우아성씨의 공개 콘서트 현장을 시작으로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다섯 시간 동안 있을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으로 서울에서만, 현재 밝혀진 사망자수는 9572명입니다. 전국적으로는 현재 보고된 사망자 수는 대략 3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 국가 비상사태를 두고 해외 외교 정상들도.... ”


뉴스 진행자의 매끄러운 진행이 어려웠다.


“ 이 해민 기자.. 자세한 소식 부탁드립니다..”


그는 말끝을 흐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의 아내도 사건 현장에 있었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처럼 죽음을 선택했다.


“ 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에 지금, 상상할 수도 없는 전대미문의 일이 발생했습니다.

실제로는 사망자 수가 더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6.25 전쟁 이후, 그러니까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인명 피해입니다. 지난 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사상자수는 1445명으로, 사망자 수는 502명이었습니다.... 현재 정부, 경찰, 군인 및 의학 전문가들 협업해서 이 사건을 두고 정밀 분석하고 있습니다.”


“ 이기자. 부상자들 중에 생존자가 있습니까?”


“ 아... 현재 밝혀진 바로는 잠수대교 아래 용산구 쪽 방면에서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신원 미상의 남자가 살아있는 채로 구조되었습니다....”


“ 신원 미상이라니... 의아하군요? 정확한 이름, 주민번호 등 신원사항이 조회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 하... 이상하군요. 혹시 신체 일부가 많이 훼손되었나요?”


“ 아니..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직 조사 중이라 뉴스 보도로 전달 드리지 못하는 점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믿을 만한 근거자료가 부족해서,,, 이 점 시청자 여러분, 양해 부탁드립니다.”


“ 아... 그렇군요. 지금 정국이 올 스톱된 상황이라... 시청자 여러분들도 이해해주실 겁니다.

그럼 이기자.. 자세한 정보 전달되는 데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잠시... 정신과 전문의 서울대 김재범 교수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교수님... 이번 집단 자살 사태 어떻게 분석하십니까? ”


화면에 연한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은 50대 가량의 남자가 비친다.

선한 눈빛의 남자는 얇은 금테 안경을 끼고 있었고, 긴장되어 보였다.


“ 네, 이번 집단 자살 현상으로 인해 의학계에서도 큰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같은 날, 일정한 시간에,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자살을 시도한...

정말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족이나 연인 등 가까운 관계 범주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강한 유대감으로 정신병을 공유하게 되면서 함께 자살을 저지르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이들이 동시에 죽음을 선택한 것은 의학적으로도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현상입니다....”


“ 네, 그렇군요. 박사님. 정말 답답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것이....그 시간에 자살을 한 사람들이 모두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우아성씨의 노래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아성씨의 콘서트 현장에 있었던 많은 분들도 죽음을 선택하셨고요.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우아성씨도 노래를 부르고 난 후....60층 높이의 건물에서 바로 투신했는데... 어떤 노래나 영상만으로도 사람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는 게 가능한가요? 어떻습니까? 박사님... ”


“ 네...이해하기 쉬운 상황은 아닙니다.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고,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그 증거입니다. 집단적 허무주의를 느꼈다고 보기에도... 이론적 설명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생태학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이런 유사한 사례가 발생한 경우가 있긴 합니다.”


“ 생태학적 관점이요? 자연 세계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 네,, 바로 고래입니다.”


“ 고래요?”


“ 고래는 집단 유대감이 굉장히 강한 생명체입니다. 그래서인지, 때때로 고래떼들은 확실한 이유 없이 물 위로 올라와 함께 자살하는 일이 있는데, 이것을 스트랜딩이라고 합니다.”


뉴스 진행자와 의학 박사의 모습이 함께 화면 안에 함께 잡힌다.


“ 박사님.. 아.. 스트랜딩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설명 가능할까요?”


“ 네, 대략적인 부분만 시청자 여러분께 말씀드린다면, 스트랜딩은 바닷 속 해양 생물이 스스로 육지로 올라와 먹이를 먹지 못하거나 기타 다양한 이유로 탈진 증상이 일어나 죽는 현상을 말합니다...이 집단 자살 현상인, 스트랜딩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서는 몇 가지의 추측만 있을 뿐입니다...”




2002년 9월 17일 13:30


“그 자는 어떻게 됐나?”


취조실과 연결된 보안 대기실 안으로 나이 많은 사내가 다시 들어섰다. 그 자리에 있던 건장한 체구의 사내 네 명이 일제히 자리에 일어나 차렷 자세를 취했다.

그 중 한명이 입을 열어 대답했다.


“ 죽었습니다.”


“ 언론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기자 새끼들... 골치 아프게 됐구만.

생존자가 있다는 이야기가 새어 나가면 어떡하나? 어?”


“ 죄송합니다.”


“ 면목 없습니다.”


나이 많은 사내가 한심한 듯 나머지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는 책상 앞, 의자에 앉으면서 두 손가락을 입 앞에 대자,

자동적으로 불 붙여진 담배가 준비되었다.

어둑한 방 안에 매캐한 담배연기가 피어올랐다.

사내의 사각턱이 일정한 간격으로 움찔거리며 담배를 힘껏 빨았다.

취조실 녹화 영상 장면이 그의 머릿속에 어지럽게 뒤엉켰다.



‘ 이게 무슨 일이야. 그게 과연 사람이란 말인가. 귀신인가. 허깨빈가.”


빠르게 타들어가는 담뱃재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사내의 허벅지 위로 떨어졌다.


“ 앗.. 씨발....”


사내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뒤쪽으로 그림자처럼 서 있던 건장한 체격을 한 남자들이 몸을 앞으로 숙이며 나타났다.

담뱃재를 손으로 털어내고, 얼음이 든 팩을 준비하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는 화내기도 귀찮다는 듯이, 오른 손을 들어 휘휘 저었다.

다시 그들은 그림자처럼 벽 뒤로 붙어 섰다

연기가 아직 피어오르는 담배를 책상 위에 비벼 끄며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 난 vip 만나고 오겠다.”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