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금곡고등학교라는 이름
우리학교 개교할 때부터 함께 하신 이승주샘께서 쓰신 글입니다. 승주샘 동의하에 올립니다. 우리학교 간판 달리는 것을 보고 쓰신 글입니다. 같이 나누고 싶어 소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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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금곡고등학교라는 이름
교사 이승주
2022.12.8
2022년 12월 8일 ‘김해금곡고등학교’ 이름을 드디어 학교건물 벽에 걸었다. 개교한지 거의 3년만이다. 보통 개교한 학교는 1~2개월 내로 학교명 간판 작업을 한다. 행정실에서 간판업체를 선정해서 대충 위치를 정한뒤 학교 벽면에 붙이면 그만이다. 그리고 학교건물 벽에 붙어 있는 학교명 간판은 이정표로 혹은 랜드마크로… 그냥 그렇게 바라보는 이들에게 소비된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3년이 걸렸다. 간단하게, 쉽게, 평범하게 갈 수 있는 길을 우리는 왜 그렇게 돌아 돌아 왔을까?
돌아 돌아 온 길을 굳이 일일이 다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오늘 학교명 간판을 걸면서 우리 학교가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교한지 3년이 되었는데 이제 출발점이라니? 이에 대해서 잘 설명할 수 있다면 오히려 우리가 돌아 돌아 온 길에 대해서 더 깊이 성찰할 수 있지 않을까?
첫번째 출발점 #1 허허벌판-비움과 채움
2020년 학교는 그야말로 빈공간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교실 하나 하나 기숙사, 복도, 교무실과 같이 물리적인 공간 뿐만 아니라 학교철학, 교육과정, 선생님들의 문화, 학생들과의 관계, 학생들간의 문화 등 정신적인 부분들도 일일이 정립하고 가꾸어 나가야 하는 것 투성이었다. 새롭게 창조하는 과정은 상당히 괴롭다. 시간과 정신력이 많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의 학교가 시간내에 해내야 하는 것들 또한 감당하면서 빠르게 뭔가를 채워나가는 것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채우는 것이 아닌 어떤 부분을 어떻게 남겨둘 것인가에 대해서 알게 모르게 고민했던 것 같다. 다 채우지 않으려는 의지는 당장 뭔가를 해내고 싶은 열망을 잘 억누를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학생들 그리고 또 다른 교사들이 와서 채울 때까지, 그네들의 색깔로 입힐 때까지 견뎌야 한다.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서 우리 학교는 어떤 채움을 기다릴까? 또 어떤 부분을 비워낼까?
두번째 출발점 #2 자유
대안학교는 일반학교에 비해 뭔가 더 자유롭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연출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학생들이 많다. 실제로 대안학교는 일반학교에 비해 많은 자유가 주어진다. 복장, 두발, 행동, 사고, 시간 등 일반학교는 꿈도 꾸지 못할 자유가 넘쳐 흐른다. 이러한 자유를 ~으로부터의 자유라고 정의할 수 있다. ~ 으로부터의 자유는 인간이라면 끊임없이 갈구해왔던 것이다. 역사를 잘 살펴보면 역사의 흐름은 어쩌면 인간이 자유를 성취해내는 과정이다라고 정의하는 것이 꼭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김해금곡고에서 자유는 타인의 자유와 부딪히는 그 지점에서 멈춘다.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자유로 나아간다. ‘~에 의한 자유’ 가 바로 그것이다. 비록 나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자유가 멈출 수밖에 없지만 더 높은 적극적인 자유, ‘~에 의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 과감히 숨을 고른다. 교사들은 거저 주어지는 자유를 학생들에게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숙고된 자유, 쟁취된 자유를 획득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한다. 이러한 과정을 겪은 우리 아이들은 더 이상 자유로부터 도피해버리는 바보들이 아니다.
세번째 출발점 #3 함께-불편
‘함께’는 김해금곡고등학교의 첫번째 핵심가치이다. 우리는 사회적 실험, 교육의 가치 등과 같은 낭만적인 ‘함께’를 가르치지 않는다. 사실 ‘함께’는 생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이다. 20세 이상의 그 누구도 혼자서는 버티기 힘든 세상이기 때문이다. 함께 생존하기 위해 우리는 배려와 공감과 타협과 협동의 싸움 기술을 전수한다. 이 기술이 습득되기 위해서는 ‘불편’이라는 냄새가 몸에 배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교사들은 ‘불편’을 학교 곳곳에 숨겨놓는다. 모든 교과수업 그리고 그 수업이 일어나는 교실, 홈베이스, 복도, 모임, 현장체험학습(로드스쿨), 기숙사까지... 이러니 우리 아이들은 학교 곳곳에서 불편을 호소한다.
하지만 불편을 겪어내어야 비로소 우리가 남이 아니고 나와 너는 하나의 단어라는 뜻을 이해하게 된다. 이를 견뎌내기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있다. 몇 몇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다. 그래도 대부분은 버티고 또 버틴다. 왜냐하면 그 불편한 자리에 동료들이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교사들이 함께 있기 때문에...
네번째 출발점 #4 버티기-고통
1학년은 5월경이 되면 김해금곡고와의 허니문 기간이 사실상 끝이 난다. 캠프처럼 다가왔던 기숙사 생활, 토론과 프로젝트 중심의 행복했던 수업, 좋은 선생님들과의 좋은 관계, 소수의 친구들과의 애틋한 만남 등은 이제 삶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삶은 낭만적이고 달콤한 것이 아니다. 어떤 부분과 어떤 과정 중에는 우연히 낭만적이고 달콤한 무언가가 발생할지는 몰라도 대부분의 삶의 과정은 그렇지 않다. 마찬가지로 김해금곡고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는 고통의 연쇄반응 과정 중에 있습니다.’라고 감히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모든 교과 교사들은 삶으로서의 과제와 발표, 토론, 강의를 제공한다. 모든 학교 교육과정 역시 아이들을 삶으로 삶으로 삶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모든 아이들은 동태눈으로 우리 교사들을 쳐다본다. 그럴 때마다 우리 교사들은 속으로 외친다. “버텨라”, “버텨라”, “버텨라” 이 또한 지나간다.
다섯번째 출발점 #5 꺾이지 않는 마음-실패
김해금곡고라는 이름으로 졸업한 아이들은 결코 꺾이지 않는 마음을 지닌다. 확정적이고 선언적인 바로 윗 문장은 우리 교사들의 지향점이다. 부러지는 것이 아니고 휘어지더라도 다시 냉큼 본연의 자세로 돌아오는 마음 곧 꺾이지 않는 마음은 1:0으로 지다가도 2:1로 뒤집을 수 있는 마음이요, 예선 탈락 위기에도 우승을 이뤄낼 수있는 힘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독하게도 아이들을 실패의 현장으로 내몬다. 실패하게 내버려둔다. 한국의 교사로서 이 꼴을 보고 있는 것은 쉽지 않다. 실패하는 상황에서 아무말 안하기는 교사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게 한다. 속이 뒤집어지는 걸 아무렇지 않게, 태연하게 기다리는 것 그리고 한결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우리 교사들을 미치게 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본인이 한 실패를 복기해본 사람은 결단코 같은 실패를 허락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말이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충분히 실패의 좌절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거기서 스스로 일어나도록 기도한다.
이 기도는 꺾이지 않는 마음을 키우는 주문이요 빔이다.
그렇게 우리는 2022년 12월 8일 ‘김해금곡고등학교’라는 이름을 내 걸었다. 그리고 이제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