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간 100km를 걷다.
저희 학교는 매년 1학기 전교생이 로드스쿨을 떠납니다. 로드스쿨은 길 위의 학교라는 뜻으로 학년마다 다른 곳, 다른 활동을 하며 공동체성을 느끼고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함께의 가치를 깨닫는 특별한 교육과정입니다.
올해 1학년의 원래 계획은 제주도에 가서 3박 4일간 75km를 걷는 것이었습니다. 75km도 쉬운 코스는 아니었습니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만반의 준비를 다 해서 4월 10일, 제주도로 떠났습니다. 제주공항에 내려서 짐을 들고 숙소까지 걷는 것으로 첫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날씨가 좋았습니다. 첫날이라 그런지 아이들 발걸음도 힘찼습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제주도 자체가 마음을 설레게 하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계획은 첫날부터 차질이 생겼습니다. 학생 한 명이 다치고 렌터카를 인수하여 오시던 선생님 두 분이 타신 차가 뒷차의 추돌로 인해 교통사고가 난 것입니다.
솔직히 당황했습니다. 교통사고 당하신 선생님들께선 전화상 침착한 목소리로 '사고가 나서 예정된 시간, 예정된 장소에 도착하기 힘들 것 같다. 죄송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만 해도 큰 사고가 아닌 줄 알았습니다. 게다가 발목을 크게 다친 학생이 앞에 있다 보니 정신이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안부를 묻고, 다친 학생 주위에 몰려, 자신들이 가져온 파스를 붙여주고 부축해서 걸었습니다. 감동이었습니다.
누구도 다친 친구 탓을 하지 않고 서로 번갈아 가며 도왔습니다. 다친 친구도 걸을 수 있다고 말하며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아픈 것은 분명했습니다. 얼마 후 어서 병원에 가야 한다고 결정했고 인근 병원에 제가 학생을 부축하며 갔습니다. 부모님께 당연히 전화 연락드렸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자녀뿐 아니라 선생님들, 친구들을 걱정하셨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인대가 늘어났다고 했고 반깁스를 했습니다.
치료 후 약 받고 기다리는 데 사고당하신 선생님들께서 새 렌트카를 타고 오셨습니다. 정말 반가웠습니다. 사고 경위를 들어보니 큰 사고였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자신들의 몸을 돌보기보다 아이들을 걱정하셨고 치료도 받지 않으시고 바로 현장으로 와주셨습니다. 웃으시며 '괜찮아요'라고 말씀하셨지만,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렇게나 아이들을 위하시는 선생님들이 존경스러웠습니다.
다친 학생과 함께 렌트카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고 나머지 학생들도 선생님과 걸어오다가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한 후 저녁을 먹고 하루 평가회를 했습니다. 이때 학생들은 선생님들께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친 학생 상태가 어떤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첫날이라 그리 힘들지 않았지만, 친구와 선생님들이 걱정된다고 했습니다. 로드스쿨 첫째 날은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둘째 날부터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날은 제주 올레 19코스, 20코스, 총 30km를 걷는 일정이었습니다. 어제 다치신 선생님들은 오전에 병원 진료받으시라고 강력히 요구하여 선생님 두 분은 병원 가셨고 남은 두 분의 선생님께서 학생들과 출발했습니다.
거리가 만만치 않았지만 씩씩하게 출발했습니다. 이날 코스에는 제주 4.3 유적지가 있었습니다. 너븐숭이 4.3 기념관을 방문하여 4.3 관련 영상을 시청하고 인근의 유적지를 견학했습니다
너븐숭이 유적지에 대한 설명과 현기영의 순이 삼촌 문학비, 제주 4.3사건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학생들은 진지했고 엄숙했습니다. 너븐숭이 애기 무덤 앞에선 다 같이 묵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로드스쿨의 목적은 단지 걷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제주의 역사를 배우는 것도 중요한 교육목표였습니다. 학생들은 몸이 힘든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제주의 아픈 역사를 되새겼습니다.
전설이 시작되다
걷고 걸어서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때 새로운 전설이 시작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잘 걷는데요? 75km가 아니라 100km도 가능할 것 같아요. 학생들 의견을 들어보죠." 인솔하신 선생님께서 제안하셨고 점심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평범한 로드스쿨을 원합니까? 아니면 전설이 되길 원합니까?"
몇몇 학생은 "평범한 것을 원합니다!"라고 말했지만, 다수의 학생은 전설이 되길 원한다고 답했습니다. 해서 우린 전설이 되자고 합의했고 75km를 걷자던 원래 목표는 100km로 조정되었습니다. 처음 계획을 세울 때 상상치도 못했던 일정입니다.
'3박 4일간 100km? 이게 가능해?' 사실 저도 걱정되었습니다. 저 또한 살아오며 3박 4일간 100km를 걸었던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학생들과 함께라면 걸을 수 있겠다는 왠지 모를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린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4월 13일, 저녁 5시! 마지막 도착지였던 동문시장에 도착하며 우리들의 100km 완주는 성공했습니다.
학생들 반응은 생각보다 덤덤했습니다. 야호! 하며 얼싸안고 눈물 흘리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이젠 쉬자! 밥 먹자! 고생했다!'는 분위기였습니다. 환호성이 터지진 않았지만, 학생들이 친구들을 둘러보며 좋아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게 김해금곡고 4기 학생들은 친구들과 함께 월요일 오후부터 금요일까지 100km를 걸었습니다.
학생들이 말했습니다.
"이번 로드스쿨로 얻은 것은 완주 기념품이 아니라 성취감이었습니다."
"혼자였으면 절대 못 했을 겁니다. 친구들, 선생님들과 함께여서 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에게 고맙고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번 경험으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다시는 하지 않을 도전이지만 끝까지 해낸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제주도에 이런 아픔이 있는지 몰랐다는 제가 부끄러웠어요. 앞으로 제주도에 온다면 이번에 못 가봤던 곳들도 꼭 가보고 싶어요."
16명의 학생과 함께 제주도 역사를 배우며 힘든 고난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공동체의 가치를 경험한 이번 로드스쿨은 선생님들께도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정말 대단해요. 엄청 힘들었을 텐데 싫은 소리 하는 학생이 없었어요."
"친구가 다쳤을 때 걱정하는 마음이 감동적이었어요. 다친 친구들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걷고 쉬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내었어요."
"이렇게 선생님들을 배려하고 고마워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이 고마웠어요."
개인적으로 내년에는 이 코스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생에 이런 경험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발바닥이 갈라지고 물집 터지고 무릎 아프고, 발목이 아픈 상태에서도 서로 격려하고 웃겨주고, 같이 노래 부르며 걸은 거리는 단순한 100km가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학생들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자신감을 느끼게 되었으며, 관광지로써 제주도가 아니라 제주도의 과거와 현재도 알게 되었습니다.
로드스쿨을 다녀온 지 4일이 지났지만 우리들의 감동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겨우 지난 주 일이지만 벌써 엄청난 경험담이 되어 학교에 퍼졌습니다. 적어도 학생들은 로드스쿨로 인해 더 단단해졌습니다.
동기들과의 관계도 돈독해졌습니다. 100km를 걸어낸 학생들은 앞으로 고난과 변수의 연속인 인생에서 쉽게 좌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기르는 학교'란 교육철학을 가진 김해금곡고의 힘입니다.
실패의 경험은 필요합니다. 살아가며 실패와 고난의 순간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학창 시절 다양한 실패를 해봐야 합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고난을 함께 극복하는 경험을 해 봐야 합니다. 성공하는 삶만이 아닌 실패하는 삶,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는 경험, 쉽게 좌절하지 않는 경험을 학창 시절 해 봐야 합니다.
지식만 배우고 외우는 학교가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하는 학교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김해금곡고는 학생, 교사, 학부모가 같이 성장할 수 있는 학교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2023년 김해금곡고 로드스쿨은 전설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