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용만 Sep 05. 2023

김해금곡고 학생들의 서이초49제 추모이야기

선생님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지난 3일 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인 9월 4일이 '서이초 선생님 49재, 공교육 멈춤의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교육부 장관은 연가, 병가, 조퇴 등을 내는 교사들에겐 법적 책임을 묻겠다, 엄정 대응하겠다 했습니다.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겁이 나서가 아닙니다. 선생님들이 왜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가 집회를 이어왔는지, 지금 학교 현장이 어떤지, 교사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교육부가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것 같아서였습니다. 혼자 고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글을 올렸습니다.

"9월 4일이 서이초 선생님 49재인데 우리 학교도 추모 펼침막을 다는 것은 어떨까요?"

이미 지난 1일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9월 4일엔 검은 옷을 입고 오자'고 뜻을 모았던 상황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펼침막을 설치하는 것은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것입니다. 교장 선생님 포함, 모든 선생님들은 동의한다고 했고 펼침막은 일요일인 3일에 설치되었습니다.

9월 4일, 먹먹함이 가슴을 채웠습니다

학교에 설치된 펼침막

9월 4일, 검은 옷을 입고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했습니다. 학교에도 펼침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한참을 서서 펼침막을 바라보았습니다.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먹먹함이 가슴을 채웠습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교무실로 향했습니다. 선생님들께서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오셨고 교사회의를 시작했습니다. 회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엄숙하고 슬펐습니다. 선생님 한 분, 한 분 돌아가며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방학 때 이 소식을 듣고 힘들었습니다.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당했던 때가 생각났고 그 선생님이 얼마나 외롭고 힘드셨을지를 생각하니 평범한 일상을 보내기 힘들었습니다."

"학교는 학부모, 학생과 같이 가야 할 곳인데 어느 순간부터 교사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이 된 것 같습니다. 가르쳐야만 하는 것을, 지도해야 하는 것을 눈치 보느라 하지 못하는 현실이 슬픕니다."

"선배 교사로서 부끄럽습니다. 지금 현실은 선배 교사들이 묵인하고 변화시키지 못했기에 생긴 일 같아 미안한 마음이 너무 큽니다."

"저는 아직 악성 민원을 당해보지 않았으나 이것은 제가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저는 단지 운이 좋았던 것 뿐입니다. 저도 이제 어떤 것을 실천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도, 제 주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하신 선생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같이 고민해주시고 도와주시니 큰 힘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추모하시는 선생님들

 사실 저희 학교는 교육부의 '엄정 대응' 공문 때문에 재량휴업을 안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재량휴업을 하는 학교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죄송스러운 마음이 컸습니다. 오전 수업을 하고 점심을 먹으러 급식소에 갔습니다. 기분 탓인지 검은 옷을 입은 학생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한 학생에게 왜 검은 옷을 입은 것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 주말에 학생회장 언니가 우리들 단톡방에 글을 올렸어요. 그 글을 읽고 검은 옷을 입고 온 거예요."

학생회장이 전교생에게 보낸 글

 학생에게 보여줄 수 있는 지 물었습니다. 부회장 친구가 보내주었습니다.
 

금곡고 학생들에게 <월요일에 검정색 옷을 입고 등교하자고 말하는 이유>

돌아오는 월요일(9월 4일)은 서울 서이초등학교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지 49일이 되는 날입니다. 해당 선생님께서는 지난한 시간 동안 교사로서, 개인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크기의 책임과 고통에 시달리셨고 결국 7월 18일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그 비보로부터 우리는 비로소 지금의 학교가 얼마나 깊은 상처와 문제를 안고 있는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래로 전국 수만 명의 선생님은 교사로서 겪어온 어려움에 공감하고, 입을 모아 교권 회복과 올바른 교육 환경을 호소하고 계십니다. 서이초 선생님의 49재가 되는 다음 주 월요일은 교사들이 추진하는 연가 파업 형식의 '9.4 공교육 멈춤의 날'입니다. 30여 개의 학교가 재량휴업을 결정했지만, 우리 학교는 정상 등교를 합니다. 대신 우리 학교 선생님들께서는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을 추모하고, 공교육 정상화의 날을 기리기 위해 검정색 옷을 입고 출근을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올바른 교육을 외치고 바라보는 일이 비단 선생님들만의 소명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건강한 교육을 고민하는 수많은 선생님들의 시선에는 항상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교과서 말고도 수많은 배움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그 배움은 선생님들의 소망, 정성, 개성으로부터 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과 교사는 교육이라는 이름 안에, 학교라는 공간 안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교권이 보장되지 않는 교육 환경에서 교사가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은 반드시 줄어들 것이고 학생들은 나날이 좋은 선생님들을 잃어갈지도 모릅니다. 공교육 멈춤의 날에 학교를 멈추는 일을 하지는 못했지만, 어떠한 모양으로든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권유하지 않으셨음에도 저는 월요일에 검정색 옷을 입고 출근하시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을 따라 검정색 옷을 입고 등교를 할 생각입니다. 어렵지 않은 일이기에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어 글을 적었지만, 공식적인 발언이 아니라 오로지 제 바람만을 눌러 담은 거라는 말도 해야겠죠? 이 글을 읽고 검정색 옷을 주섬주섬 꺼내 놓을 사람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하며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내일 학교에서 만납시다!
 


울컥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학교 선생님 단톡방에도 위 사실을 알렸습니다. 선생님들께서도 읽어보셨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참 고마워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학생회에서 따로 서이초 선생님 추모식을 준비했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 학생회장에게 어떻게 이런 행사를 준비하게 된 것인지 물었습니다.

"서이초등학교 사건 후 사회에서 비로소 학교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느꼈어요. 가슴아픈 이 일은 저와 학생들에게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나 안전한 학교는 어떤 학교인가를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이렇게 선생님들이 올바른 교권, 학습권, 학생들을 교육할 권리, 교권을 회복해달라 하는 것은 비단 선생님들만의 책임과 소명(때문)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건강하고 안전한 학교를 위해 필요한 내용이에요. 우리 학교도 이런 사회적 현상에 주목하고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 추모식을 준비하게 되었어요. 전 선생님들께서 이렇게 마음 아파하시고 거리로 나가시는 것에 학생들도 같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고마웠습니다. 학생들에게 받은 위로를 안은 채 경남 도교육청 앞에서 열린 추모제로 향했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같이 "꿈꾸지 않으면"을 불렀습니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현재의 학교에서 과연 꿈꾸기 위해 배우고 희망을 노래하기 위해 가르친다는 것이 가능한지 돌아봅니다. 정치기본권이 없는 교사들이 교실이 아닌 길거리로 나와 단체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돌아봅니다. 학생들에게 정의를 가르칩니다. 민주주의를 가르칩니다. 부끄러운 어른, 부끄러운 교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고 서이초 선생님, 지금 이 순간에도 외로우실 대한민국 모든 선생님들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힘들어하고 계시는 선생님들께 용기내어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선생님, 포기하지 마세요. 제발 더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 마세요. 우리는 점들이지만 이 점들이 모이고 있어요. 선생님은 혼자가 아니에요. 위에서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도울 수 있어요. 끝까지 함께해요."

선생님들의 외침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이초 선생님..명복을 빕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