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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만 Jan 09. 2019

졸업...

저는 공립 대안 중학교에 근무합니다. 그 전에 일반 중학교에 4년, 인문계 고등학교에 6년을 근무했습니다. 평범한 교사였습니다.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였고 수업 시간에만 자유롭게 아이들과 놀았습니다. 물론 진도도 나가면서 말이지요. 체험학습, 수학여행, 점심 저녁 시간은 아이들과 저에겐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음 놓고 놀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는 것도 100% 자유는 아니었습니다. 어느정도 학생들에 대한 통제는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에는 거의 의무적으로 방학마다 보충수업을 실시했습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학생들은 보충수업 빼는 것 조차 힘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보충수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도통 결론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보충수업을 원치 않는 학생들이 대부분인데, 생활기록부에 출석이 포함되지는 않는 방학기간이었지만 출결은 또 얼마나 확실히 체크했는 지 모릅니다. 지각하면 지각한다고 집에 전화하고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부모님께 전화해서 학생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로 이른 적도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이제 저는 고등학생들이 집에서 TV보고 게임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부모님과 학생들을 한명이라도 명문대학교에 진학시키려는 학교의 합작품 쯤으로 보충수업을 정리합니다. 학교는 아이들이 신나게 생활할 수 있는, 자라는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해서 자연스레 다른 형태의 학교에 관심이 생겼고 이는 곧 대안학교로 근무지를 옮기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저는 올해로 3년째 근무중입니다. 일반학교와 우리학교가 다른 점은 학생들의 자치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자유 또한 최대한 이끌어 내려 노력합니다. 실패를 격려하고 무기력함을 탓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숫자로 아이들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중학교 3년 동안, 대안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아이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최소한 선생님들로부터 지지받았다는 경험이라도 남아주길 바랄 뿐입니다.


지난 주 금요일 3기 아이들의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3기 아이들은 졸업식 전날 꿈터라는 큰 공간에서 다 같이 놀고 함께 잠을 잤습니다. 그 자리에 저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만 재우기에는 불편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아이들의 불편함을 도와주기 위해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준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함께 웃고 노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때로는 박수치며 크게 웃고, 때로는 잘한다, 못한다 하며 놀리기도 했습니다. 새벽 1시쯤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막상 졸업하는 날이 되었지만 아이들은 담담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떠난 다는 것에 실감을 못하는 것일까? 아이들에게 이 학교의 3년은 별 의미가 없었던 것일까?' 혼자 갖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졸업식은 유쾌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한명 한명이 신나는 음악에 맞춰 런어웨이를 하며 등장했고 많은 분들이 웃으며 박수치고 아이들을 맞았습니다. 친구들이 주는 상을 다 받았고 교장선생님의 축시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의 영상과 후배들의 영상은 또 다른 감동을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못다한 이야기 하기'차례가 되었습니다. 졸업하는 3기 아이들은 전교생과 부모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명씩 나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아이도 울고, 그 친구를 위로하는 옆 친구도 울고, 친구를 안아주는 학생을 보며 박수치는 분들도 울었습니다. 

'친구들에게 진짜 고마웠고 샘들도 고마웠습니다.'

'다시 1학년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이 학교는 저에게 특별한 학교였어요.'

'후배 누구누구누구, 나랑 놀아줘서 고마웠고 누구누구누구야. 진짜 미안해'

'엄마, 아빠 사랑해요!!!'


많은 아이들의 많은 이야기가 강당을 가득 메웠습니다. 


모든 아이들의 이야기가 끝난 후 강당벽 쪽으로 사람들이 동그랗게 섰고 졸업생들은 한명 한명과 포옹을 하며 한바퀴를 돌았습니다. 눈물반 웃음반으로 뜨겁게 포옹했던 아이들...


졸업생 뿐 아니라 후배들도 떠나는 오빠, 누나들을 보며 같이 울었습니다.


학생들이 운다는 것이 좋은 학교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는 이가 아쉬워하고 보내는 이가 안타까워했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행사지만 해마다 감동의 색깔은 달랐습니다.


대안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친구도 있고 일반고, 특성화고, 집 근처의 학교로 진학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학교를 가든, 어떤 환경에 처하든, 중학교 시절, 자유롭게 생활했던 건강한 추억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건강한 추억이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경우를 많이 봐 왔습니다.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는 곳보다는 관계를 경험하는 곳이 되면 좋겠습니다.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을 강하게 하는 것은 외웠던 지식이 아니라 그 시절에 함께 했던 친구들 입니다. 졸업식 때 흘렸던 눈물만큼 아이들은 깊어졌습니다.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한다는 것, 이별은 슬프지만 또 다른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 교과서가 아니라 삶으로 배우기를 바랍니다.


졸업은 장소를 옮기는 것이지 자신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딜 가든 빛나는 존재가 되길 바랍니다. 아이들의 기억속에 몹쓸 교사로만 기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가져봅니다.


경남꿈키움중학교 3기 아이들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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