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숙박업은 네 번의 호황을 겪었다

매번 같은 방식으로 공급이 늘었고, 같은 이유로 조정이 왔다

by 이감


숙박업은 늘 수요 이야기로 설명된다. 관광객이 늘면 잘 되고, 줄면 어려워진다는 식이다. 이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한국 숙박업의 지난 시간을 설명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조금만 시간을 길게 놓고 보면, 이 산업을 실제로 흔들어 온 것은 수요보다 공급이었고, 그 공급을 움직인 것은 대부분 정책이었다.


한국 숙박업은 지난 40여 년 동안 네 번의 큰 호황을 겪었다. 이 네 번의 호황은 각각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구조는 놀랄 만큼 비슷했다. 특정 이벤트나 수요 변화가 먼저 나타났고, 정부가 규제를 풀거나 지원책을 내놓았다. 그 결과 몇 년의 시차를 두고 공급이 급증했고, 거의 예외 없이 그 다음에는 조정이 뒤따랐다.


이 흐름을 시간순으로 다시 보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시장도 전혀 낯설지 않게 보인다.



1. 첫 번째 호황 : 1988년 전후


첫 번째 호황은 1980년대 후반, 서울 올림픽을 앞둔 시기였다.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외국인을 맞이해야 했고, 호텔은 단순한 민간 사업이 아니라 국가 인프라로 인식됐다. 이 시기 호텔 신축은 ‘기회’라기보다 ‘과제’에 가까웠다. 올림픽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에 맞춰 공급이 늘어났다.


하지만 올림픽은 겨우 몇 주였고, 호텔은 그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야 했다. 이벤트가 끝나자 수요는 일상으로 돌아왔고, 그때부터 차이가 벌어졌다. 도심 핵심 입지에 자리 잡고 기업 수요를 흡수할 수 있었던 호텔은 비교적 빠르게 안착했지만, 그렇지 못한 곳들은 곧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이미 한 가지 교훈은 분명해졌다. 이벤트는 건설의 명분이 될 수는 있어도, 장기적인 생존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2. 두 번째 호황 : 2002년 전후


두 번째 호황은 2000년대 초, 월드컵 전후였다. 이 시기의 특징은 이전과는 조금 다른 정책 방향에 있었다. 정부는 무작정 새 호텔을 짓는 데만 집중하지 않았다. 기존 숙박시설의 개보수와 서비스 수준 개선에도 자금을 투입했고, 실제로 많은 호텔이 리노베이션을 통해 체질을 바꿀 수 있었다.


이때의 공급 증가는 상대적으로 온건했다. 신축 중심의 폭발적인 증가라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던 숙박시설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다. 월드컵이라는 이벤트가 끝난 뒤에도 시장의 충격이 비교적 완만했던 이유다. 이 시기는 정부 지원이 ‘확장’이 아니라 ‘개선’으로 작동했을 때 시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준 사례로 남았다.



3. 세 번째 호황 : 2012년 전후


세 번째 호황은 2012년 이후 시작된 인바운드 급성장기였다. 이 시기는 지금의 숙박업 지형을 만든 결정적인 구간이다. 한류 확산, 저가항공의 성장, 중국과 동남아 관광객의 급증이 겹치면서 “서울에 호텔이 부족하다”는 말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담론은 곧 정책으로 이어졌다.


관광숙박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이 시행됐고, 용적률 인센티브와 인허가 완화, 대규모 관광기금 지원이 동시에 작동했다. 목표는 명확했다. 수도권에 대규모 호텔 객실을 공급하는 것. 이 정책의 효과는 빠르게 나타났고, 짧은 기간 동안 서울 도심을 중심으로 중저가 호텔이 대량으로 공급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공급은 빠르게 늘었지만, 수요는 균질하지 않았다. 특정 국가 관광객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졌고, 운영과 브랜드에서 뚜렷한 차별화를 만들지 못한 호텔들은 자연스럽게 가격 경쟁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러던 중 2017년 사드 사태가 터졌고, 외생변수는 공급이 많은 시장을 가장 먼저 흔들었다.


그럼에도 이 싸이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20년 코로나는 조정이 아니라 리셋에 가까운 사건이었다. 수요는 줄어든 것이 아니라 사라졌고, 호텔은 운영업이자 동시에 부동산 자산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이 시기를 거치며 많은 호텔이 매각되거나 용도 전환을 고민했고, ‘버티는 호텔’과 ‘정리되는 호텔’의 경계는 더욱 또렷해졌다.


4. 네 번째 호황 : 2024년 전후


그리고 네 번째 호황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됐다. 다만 이번 호황은 이전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과거처럼 중형·대형 호텔 신축이 중심이 되는 국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축이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공유숙박이다.


코로나 이후, 공유숙박 시장에서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에어비앤비를 비롯한 플랫폼들이 영업신고증 등 합법 요건을 갖추지 않은 숙소들을 대거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시장에 존재하던 수많은 회색지대 숙소가 한꺼번에 사라졌고, 그 결과 합법 요건을 갖춘 숙소들의 상대적 경쟁력은 급격히 높아졌다.


이 변화는 곧 또 다른 현상을 만들었다. “합법으로 운영하면 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합법 숙소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 각종 특례 제도, 합법 구조에 대한 설명이 빠르게 확산됐고, 상가 주택, 다세대/다가구 주택 등이 제도권 안으로 편입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특례형 공유숙박까지 등장했다. 특정 조건과 지역 하에서 내국인도 숙박할 수 있는 모델이 만들어지면서, 공유숙박은 더 이상 비공식적인 대안이 아니라 제도 안의 하나의 축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번 싸이클의 공급 증가는 눈에 띄는 신축 붐이 아니라, 기존 공간의 법적 지위가 재정렬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점이 네 번째 호황을 이전과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이번에는 먼저 정리가 이뤄졌고, 그 다음에 합법 공급이 늘어나고 있다. 많이 짓는 사람이 유리한 시장이 아니라, 제도 안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든 사람이 유리한 시장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생긴다. 공급이 늘어나는 시장에서 누가 살아남는가. 숙박업에서 이 질문은 늘 같은 대답으로 돌아온다. 잘된다고 해서 그저 뛰어들면 살아남기 어렵다. 오히려 그럴수록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시장은 더 빨리 평준화된다.


과거의 싸이클이 반복해서 보여준 장면이 있다. 공급이 늘어나면 대부분은 ‘비슷한 상품’을 만든다. 비슷한 객실, 비슷한 가격, 비슷한 사진, 비슷한 문구. 이때부터 숙박업은 운영이 아니라 할인 경쟁이 된다. 결국 제일 먼저 흔들리는 곳은 차별화가 없는 곳이고, 가장 늦게까지 남는 곳은 명확한 포지션을 가진 곳이다.


그래서 살아남는 방식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첫째, 차별화다. 단지 인테리어가 예쁘다는 수준이 아니라, 고객이 머무르는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둘째, 규모다. 규모는 객실 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구매, 세탁, 청소, 예약, CS 같은 운영 체계를 표준화하고 비용을 낮출 수 있는 힘이다. 셋째, 브랜드다. 브랜드는 광고 문구가 아니라 반복 방문과 추천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다. 공급이 늘어날수록 브랜드가 없는 곳은 가격으로만 말하게 된다.


이 세 가지를 갖춘 곳만이 호황 이후의 조정 국면을 통과한다. 올림픽 이후에도, 월드컵 이후에도, 인바운드 이후에도 결국 남은 쪽은 대체로 비슷했다. 입지가 좋거나, 운영이 탄탄하거나, 브랜드로 가격을 방어할 수 있는 곳. 반대로 그때그때 유행을 따라가며 비슷한 상품을 만든 곳은, 다음 외생변수 앞에서 가장 먼저 무너졌다.


이 네 번의 흐름을 나란히 놓고 보면, 숙박업의 본질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숙박업은 관광객 수에만 반응하는 산업이 아니다. 규제가 풀리는 순간 공급은 몇 년 뒤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 시차가 시장을 흔든다. 그리고 이 과정은 생각보다 정직하게 반복돼 왔다. 그래서 지금 숙박업을 바라볼 때 던져야 할 질문은 “관광객이 더 늘어날까”가 아니다. 앞으로 몇 년 뒤 공급은 어떻게 변할 것인지, 정책은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 그리고 이 시장이 다시 한 번 공급 과잉으로 들어갈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묻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다.


지금은 또 하나의 공급 과잉 초입이라기보다, 지난 싸이클의 결과가 정리되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는 구간에 가깝다. 이 시기에 살아남는 숙박업은 더 많이 짓는 곳이 아니라, 같은 공간으로 더 높은 가치를 만들어내는 곳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아마, 다음 싸이클이 시작될 때도 구조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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