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떠오른 것들을 말하지 않으면 끙끙 앓다가 몸져눕는 습관이 있어
주변 사람에게 제 약점과 악(惡)을 시인하고
약에 취한 사람들은 내가 준 식칼로 평타가 아닌 막타를 치기 위해 집중해
계획하고 실행하고 평가하고 환류하는 게 재미있으면서
습관은 버리지 않고 회복력은 더디고 두려움은 커져
충만한 그때를 그리워한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어
"(충만해지고 싶었지만) 난 충만하지 않았어"
그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너무 나쁜 사람이라서 상종 못 할 인간이라서 손절해야 하는 유형이라서
가까운 이들은 아니라며 나를 위로해 주겠지만
행동만 보인 곳에서 판단해야 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런 평가를 내릴 거야
벌거벗은 아홉 살은 창피함을 무릅쓰고 생전 경험하지 못한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싶어 우물에서 올라왔고
머리를 쓰다듬고 안아주고 업어주며 재워놓고선
"죄를 짓는 기분이다
너를 대신에 여기에 있는 기분이다
너에게 소중한 것들을 빼앗은 기분이다"
그런데 나는
그 아홉 살이 받아먹고 싶었던 애정을
벌거벗은 신체를 내보였던 간절을
외면하지 못하고
너를 놓고 그와 함께 우물로 돌아갔어
옹졸하고 이기적인 인간이라서 미안해
승인할 용기를 남에게 떠넘긴 자의 최후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