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최치원 무대를 준비하며
6/25-26 일정으로 올라가는 뮤지컬 최치원에서 진성여왕의 역할을 맡았다.
파리넬리의 안젤로 같은 경우에는 기존에 세상에 없던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배우로서 자유롭게 캐릭터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 쉬웠다면, 진성여왕은 역사에 실존했던 인물이기에 그녀의 캐릭터를 그려내는 것은 참 어려운 작업으로 느껴졌다.
배우로서 캐릭터 해석을 위한 작업의 시작은 맡은 배역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시작돼서 일까?
대본을 받아 리딩을 하고 '날아갈 수 없는 새'라는 진성여왕의 넘버를 흥얼거리던 중 진성여왕에 대한 역사적 평가들이 올바른 해석일 까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다.
네이버에서 진성여왕을 검색하니 특이하게도 연관검색어에 '진성여왕 음탕'이라는 키워드가 나왔다.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사치와 환락의 대명사로 묘사되었던 것 때문일까? 왜 그녀가 음탕하다고 표현되었을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동시대를 살았던 최치원은 그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최치원의 사사위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진성여왕은 사심이 없고 욕심이 적으며,
몸에 병이 많아 한가함을 좋아하고,
말해야 할 때가 된 뒤에야 말을 하고,
한번 뜻한 바는 빼앗지 못하는 굳은 의지를 지닌 인물이다.
또한 최치원이 쓴 양위표나 낭혜화상탑비등에서 기록한 진성여왕은 '성군'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똑같은 시대를 살았던 최치원이 기록한 진성여왕은 참 어질고 성숙한 여왕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왜 대부분의 자료들에서는 진성여왕에 대해 '음탕' , '음란'이라는 단어를 붙이는지에 대해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역사적 평가에서 진성여왕이 비난을 받는 것은 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내용 때문인데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 있고
유모인 부호 부인과 그녀의 남편인 위홍 등 서너 명의 총신들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국정을 어지럽혀 도적들이 벌 떼처럼 일어났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 있다.
진성여왕이 위홍이 죽은 뒤 젊은 미남 두세 명을 남몰래 불러들여 음란하게 지내고, 그들에게 요직을 맡기면서 국정이 문란해졌다
최치원이 기록한 "굳은 의지를 가진 성군 진성여왕" 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가 기록한 "음란하고 국정을 문란하게 만든 난군 진성여왕" 과연 진실이 무엇일까 궁금해서 자료를 좀 더 찾아들어갔다.
막상 여러 가지 자료들을 찾아보고 당시 신라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놓고 보니 진성여왕은 부도덕한 난군이 아녔다는 생각의 확신이 들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970422
'김부식과 일연은 왜: 삼국사기·삼국유사 엮어 읽기'라는 책을 보면 "여자가 왕이라는 지존의 자리에 오른 것에 대한 남자들의 질투심이 그녀를 음탕하고 문란한 여인으로 만들었고 그녀의 행실이 엄하게 부풀려졌다"고 서술되어 있다.
이에 대한 뒷받침으로 김부식이 선덕여왕에 대해서 다룬 내용을 말하는데 다음과 같다
신이 듣기에 옛날에 여와 씨가 있었는데 이는 바로 천자가 아니라 복희를 도와 아홉 주를 다스렸을 뿐이다.(...) 하늘의 이치로 말하면 양은 굳세고 음은 부드러우며, 사람으로 말하면 남자는 존귀하고 여자는 비천한데, 어찌 늙은 할멈이 안방에서 나와 나라의 정사를 처리할 수 있겠는가? 신라는 여자를 세워서 왕위에 있게 했으니 진실로 어지러운 세상의 일이다.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하겠다. 서경에서 "암탉이 새벽을 알린다"고 했고 역경에서 "파리한 돼지가 껑충껑충 뛰려 한다"라 했으니 그것은 경계할 일이 아니겠는가.
- 삼국사기 권 5 신라본기 <선덕왕> 中
남자는 존귀하고, 여자는 비천하다고 여겼던 당시의 남존여비사상이 진성여왕에 대한 기록을 100% Fact를 기반으로 쓰지 않고, 본인들의 사심을 넣어서 쓰게 하지 않았을까를 의심하게 되는 대목이다.
당나라 유학생활을 마치고 신라로 돌아온 충신 최치원이 신라의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서 필요한 시무십조를 읊는다.
시무십조를 들은 진성여왕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과 나라를 위한 좋은 정책과 개혁에 대한 그림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야기하는 최치원에 대한 자신의 신세와 안타까움을 가득 담아 노래를 부른다.
뮤지컬 최치원에서 진성여왕이 부르는 유일한 넘버다.
꽃다운 어린 나이에 나 왕의 자리에 올랐으나,
내 곁엔 모두 사라져 이 한 몸 둘 곳 없네
이 넘버의 제목은 '날아갈 수 없는 새'인데 왕이라는 직위만 갖고 있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진성여왕이 자신의 신세에 대해서 새는 새인데 날아가지 못하는 새장 속에 갇힌 새와 같다고 비유하여 노래하는 넘버다.
이 노래를 마친 후 미소를 지으면서 최치원에게 말한다.
미안합니다.
이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최치원이 충심으로 하는 이야기 신라의 정치개혁이라는 꿈을 듣고 싶었던 진성여왕은 최치원의 충심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한다.
뮤지컬 최치원에서 진성여왕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당나라 유학생활을 마치고 신라로 돌아온 최치원이 그의 정치개혁을 펼치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과 최치원을 지지하고 그에게 의지했던 힘없는 진성여왕의 처지를 보여줌으로써 왜 신라의 정치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했는지에 대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활용되는 역할이다.
비록 작은 역할이지만 그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고 생각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버려지고, 봉인되어지고, 지칠 대로 지쳐 있는 무력한 여왕, 진성
어쩌면 신라에 남은 유일한 충신이자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최치원.
그들의 이야기를 잘 그려낼 수 있도록 공연이 오르기 하루 전인 오늘 다시 한번 그녀에 대해서 곱씹어 본다.
해석에 도움을 주신 이현규 연출님과 공부를 위한 자료조사를 도와준 네이버에 깊은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