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프

나의 작은 아버지

by 날자 이조영

국민학교 때 나는 매일 저녁 잠자기 전, 연필을 가지런히 깎아 필통에 넣어두곤 했다.

누가, 누가 아껴 쓰나.

내기라도 하듯 몽당연필을 모나미 볼펜에 끼워 더 이상 끼울 수 없을 때까지 썼다.

반에 더러 잘 사는 애들이 한두 명 있게 마련인데, 그 애들 필통에는 샤프가 담겨 있었다.

아무리 연필을 잘 깎아도 보잘것없던 내 몽당연필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육각형의 각진 모양과 나무의 딱딱한 재질은 오래 쓸수록 중지 마디에 굳은살이 배기고 아팠다.

그러나 샤프는 어떤가.

모난 데가 없이 매끄럽고 예쁜 데다 심이 뭉툭하게 닳을 염려도 없고 저녁마다 깎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까지.

역시 돈은 편리함과 직결된다는 걸 샤프를 보며 깨달았다.

어른들에겐 만년필, 아이들에겐 샤프.

부의 상징이라 부르던 필기도구.

나에겐 죽어도 안 생길 것 같은 그 샤프를, 늘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곤 했다.

나중에는 위화감을 조성한다 하여 국민학생은 샤프를 못 쓰게 하던 시절도 있었으니, 샤프가 얼마나 귀했는지 알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도 그 샤프란 것이 생겼다.




아버지의 남동생인 큰삼촌은 집안에서 제일 골칫덩이였다.

집이 가난해 중학교밖에 나오지 못해서 그게 한이었다.

대학을 나온 큰고모와 고등학교를 나온 작은 고모가 너무나 밉고 싫었던지 술만 취하면 행패를 부렸다.

형은 서울대 붙고도 등록금을 빌리지 못해 좌절하게 만들더니, 아들들은 공부 안 시키고 딸들만 공부시킨 게 가슴에 맺혔던 모양이다.

큰삼촌은 그런 부모님을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흥이 많고 통이 컸던 큰삼촌은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도 유명한 개구쟁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른이 돼서는 허풍만 세고 어른 구실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돈 없고 못 배워 하는 일마다 안 된다는 건 비겁한 변명이었다.

꿈은 크고 현실은 따라주지 못하는 그 괴리감을 술로 푸는 지질함.

나는 술에 취하면 딴사람이 되어버리는 큰삼촌이 싫었다.

점잖고 지적인 아버지 밑에서 어떻게 저런 동생이 있는지 기가 찼다. 그런 사람이 아버지 동생이라니 너무 창피했다.

큰삼촌이 뾰족한 가시처럼 거슬렸고, 뽑아버리면 속 시원할 존재였다.




내 생일이던 어느 해, 큰삼촌이 집에 와서는 뜬금없이 물었다.


“영아, 갖고 싶은 거 말해봐라. 삼촌이 사주꼬마.”


샤프가 너무너무 갖고 싶었기에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샤프요.”

“샤프? 그래, 문방구 같이 가자.”


큰삼촌을 따라 문방구에 갈 때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그 비싼 샤프를 덥석 사주는 큰삼촌이 소원을 이뤄주는 요정 같았다.

문방구에 가서 샤프를 고를 때는 마음이 둥실둥실.

샤프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 나무로 만든 연필과는 상이한 감촉을 잊지 못한다.

약간은 차가운 감촉이 손바닥에 전해지자 기분 좋은 긴장감에 짜릿했다.

문방구 아저씨는 친절하게 샤프심을 어떻게 넣는지 알려주셨다.

기껏 해봐야 지우개가 달려 있던 연필 꽁지와는 격이 다르게 샤프 꽁지는 톡톡 누르기만 해도 샤프심이 나왔다. 너무 신기했다.

뭐 이런 게 다 있는지, 나는 신통방통한 샤프에 홀딱 반해버렸다.

큰삼촌은 그날 샤프만 사준 게 아니었다. 용돈 하라며 거금 만원을 주었다.

만원!

명절 때도 받기 어려운 어마어마하게 큰돈이었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 큰삼촌은 억수로 통 크네.'


엄마는 큰삼촌이 공부를 제대로 했으면 큰 사업가가 되었을 거라고 그랬다.

나도 그날만큼은 엄마의 말처럼 큰삼촌이 사업가로 성공하기를 바랐다.

샤프뿐 아니라 갖고 싶은 건 뭐든 척척 사주는 삼촌이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가!

큰삼촌이 돌아간 뒤 공책에다 샤프로 글을 써봤다.

종이에 쓸 때의 느낌도 쓰는지 안 쓰는지 모를 정도로 부드러워서 쓰는 맛이 났다. 글씨도 연필로 쓸 때보다 훨씬 예뻤다.

잘못 힘을 줘 샤프심이 톡 부러질 때면 아까워서 가만가만 힘 조절을 했다. 연필처럼 힘줘서 쓰지 않아도 되니 손이 아프거나 미워질 염려도 없었다.

글씨가 틀려서 지우개로 박박 지울 때에도 연필을 쓸 때처럼 지우개똥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공책을 아끼느라 얇은 속지뿐 아니라 두꺼운 겉지에도 빡빡하게 썼는데, 샤프는 심 두께가 얇아 한 줄을 빽빽하게 써도 글씨가 정갈하고 필기도 깔끔했다.

필기가 잘 되니 공부도 더 잘할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지긋지긋하던 몽당연필을 더 이상 쓰지 않아도 되고 매일 저녁 연필을 깎는 수고로움과도 작별이었다.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다음날 학교에 가니 애들이 우르르 몰려와 내 샤프를 구경했다. 부잣집 애나 된 듯 우쭐해졌다.


“와아, 니 샤프 샀나?”

“큰삼촌이 생일이라꼬 사줬다.”

“억수로 이뿌다. 좋겠다.”


나는 처음으로 큰삼촌을 자랑했다. 그리고 샤프 하나로 반 친구들에게 한동안 부러움을 샀다.




어느덧 나도 성인이 되어 대학에 가고 큰삼촌과는 여전히 데면데면했다.

큰삼촌은 내가 바라던 사업가도 되지 못했고 집안에선 골칫덩이로 남아 있었다.

가끔 아들 둘과 집에 놀러 와 밥을 먹을 때면 그 모습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중학생이던 사촌들이 큰삼촌처럼 말썽꾼은 아니어서 다행이라며 속으로 흉을 봤다.

친가 쪽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나는 남 대하듯 큰삼촌 식구들을 대했다.

큰삼촌에게는 더더욱 살갑게 군 적이 없었다.

유일하게 큰삼촌이 좋았던 적은 샤프를 사주었던 그때뿐이었다.

어느 해인가, 아버지와 엄마는 연락 한 통을 받고 부리나케 집을 나섰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영아, 큰삼촌 돌아가셨다.]

“뭐……?”

[교통사고 나가꼬…….]

“……!”


멍하니 전화를 끊었다.

혈기가 펄펄하던 큰삼촌이 돌아가셨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아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이 그렇게 죽을 수도 있는 거구나. 그런 건 남 얘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손끝에 박혀 까슬거리던 가시가 빠졌다. 그런데 기분이 왜 이럴까.

전혀 속이 시원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가시가 빠질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나쁜 사람은 오래 산다는데 큰삼촌이 왜?’


큰삼촌을 미워하고 싫어했던 죄책감이 가슴을 헤집어 견딜 수가 없었다.

나쁜 사람은 큰삼촌이 아니라, 그를 미워하고 싫어하던 나였다.

단 한 번도 밝은 얼굴로 맞이한 적 없던 내가 너무나 옹졸하고 인색했음을, 그때야 비로소 후회했다.

내게 행패를 부린 것도 아닌데, 어른들 말만 듣고서 큰삼촌을 창피하게 여긴 게 미안했다.

오히려 아버지와 엄마를 부모님보다 더 좋아하고 의지했으며, 조카인 우리 삼 남매에게도 대놓고 싫은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큰삼촌도 잘 살아보고 싶어서 그랬을 텐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울분 속에 살았을 뿐인데.

큰삼촌이 돌아가신 후에야 그 상처와 고통을 공감하는 어리석음.

새벽까지 이리저리 뒤척이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모로 누워 자는데 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내 뒤에 와서 앉았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그는 내 어깨를 쓰다듬더니 일어나 방을 나갔다.


‘큰삼촌?’

잠결에 그가 큰삼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장례를 치르느라 오지 못하는 부모님 대신 다음날 학교에 가야 할 동생들 때문에 장례식장도 못 가고 집에서 자던 그날 밤.

나는 그렇게 큰삼촌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샤프처럼 날카로운 인상과 뾰족한 삶을 살다 간 큰삼촌.

나의 작은 아버지.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아버지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셨다.

장례식장에 같이 있지 못했으니 아버지가 얼마나 눈물을 흘리셨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장례를 마치고 온 가족이 식사를 하는 식당에서 슬픔에 젖어 담배를 피우던 아버지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맏아들이란 이유로 충격에 빠진 가족들을 챙기던 아버지의 강한 정신력.

그러나 텅 빈 것만 같던 눈동자와 피로해 보이는 낯빛, 담배연기를 날리던 허망한 표정.

우리에게 호랑이처럼 구는 것만큼 큰삼촌에게도 그렇게 하라며 아버지를 원망했던 나.

그날 아버지의 슬픈 모습에서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아버지에겐 큰삼촌이 아픈 손가락이었다는 걸.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잠결에 있었던 얘길 해주었다.


“큰삼촌이 니가 보고 싶었는갑다.”


아버지처럼 머리가 좋았던 큰삼촌이 공부를 제대로 했다면 어땠을까.

고달프고 한스럽게 살다 간 세월보다 좀 더 나은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이제 샤프를 쓸 일은 없어졌지만, 이따금 큰삼촌을 생각하면 처음 생겼던 샤프가 떠오른다. 살아계실 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넬걸 하는 후회와 함께.


"삼촌, 샤프 정말 고마웠어요."

그 한마디 하기가 왜 그리도 어려웠을까.




사진출처 : https://cafe.naver.com/bohemiantree/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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