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욕과 성욕의 그릇된 교차, 그리고 비극적 결말
제목만 들었을 때부터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작품이었다. '매혹당한 사람들'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이기에 감히 매혹당했다고 단정 짓는 걸까. 포스터는 이러한 궁금증을 더 키웠다. 그냥 보고 있는 나조차 매혹당할 만큼 감각적이고 우아한, 그러면서 긴장감까지 살아있는 포스터를 보고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재밌었다. 매혹적이고 스릴 있었지만, 너무 기대를 많이 했던 탓인지 기대감을 충족시킬 만큼은 아니었던 게 조금 아쉽다.
생존, 그리고 섹슈얼. 결국 욕망
이 영화를 단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욕망'이다. 조금 더 단어를 써보자면, '욕망의 그릇(잘못) 된 교차'로 이 영화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의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여자 기숙학교에 우연히 나타나게 된 남자로 인해 발생한 사건을 그린다. 극 중 유일한 남성인 '존(콜린 파렐) '은 북군인 자신이 적진인 남부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숙학교의 여자들을 이용한다. 그는 살기 위해 여성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본인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생존에 대한 본능, 욕망이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그는 단 한 명의 남성이라는 자신의 이점을 철저히 이용해, 교묘하게 여자들을 자신의 손안에 움켜쥔다. 여자들의 섹슈얼한 욕망을 자극하면서, 본인의 존재감을 더욱 강인하게 어필하고, 그로 하여금 본인의 생존을 보장받는다.
반면, 기숙학교의 여자들은 전쟁 중이라는 고립된 환경 속에서 새롭게 나타난 '남성'으로 인한 섹슈얼한 욕망에 휩싸인다. 이러한 욕망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어린 학생들이 예쁘게 꾸미고 존에게 이것저것 말을 거는 장면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존 또한 이런 여성들의 욕망을 각자 맞춰줌으로써 본인을 어필한다. 모든 것을 책임지고 도맡아야 하는 '마사(니콜 키드먼)'에게는 위로와 의지를 주고, 자유를 갈망하는 '에드위나(커스틴 던스트)'에게는 같이 떠나자고 속삭이고, 성숙해 보이고 싶은 '알리시아(엘르 패닝)'에게는 그녀가 동경하는 어른의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그들의 욕망을 더욱 자극하고 불태운다. 이러한 각자의 욕망이 가장 많이 표출된 장면이 바로 다 같이 저녁식사를 하는 장면이다. 모두 예쁘게 단장하고, 모든 여성이 존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이 장면은 그동안 존의 생존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위를 가졌던 기숙학교의 여자들이 단 한 명의 남성에게 '매혹당함'으로서 우위를 잃어버리는 장면이며, 이 영화의 제목 그대로 '매혹당한 사람들'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욕망의 교차, 비극적 결말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욕망은 저녁식사를 한 날 '밤'을 기점으로 교차하게 된다. 더 이상 열위에 있지 않은 존은 여자들의 욕망을 무기로 하여, 본인의 우위를 확고히 하고자 한다. 존은 더 이상 이미 보장받은 생존의 욕망이 아닌, 섹슈얼한 욕망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존은 다리를 잃게 된다. 이때부터 존은 기숙학교의 여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게 되는데, 존이 생존에 대한 불안 때문보다도, 자신의 우위에 선 기점에서 자신이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한 대상들이 본인에게 행사한 일종의 폭력적 행위에 대해, 분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북전쟁이 일어나던 당시라면,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에 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자신이 이용할 대상들이 본인에게 행사한 폭력이 그에게는 본인의 우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 이유로 존은 분노하였고, 여성들에게 여과 없이 본인의 욕망을 표출하였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반대로 여자들이 공포에 휩싸이며, 섹슈얼한 욕망이 아닌, 강한 생존의 욕망을 따르게 된다.
존의 폭력 이후 그녀들은 더 이상 그에게 매혹당해있지 않는다. 다만 본인들의 생존의 보장을 위해 하루빨리 그녀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를 없앨 방법을 찾을 뿐이다. 계속되는 생존에 대한 위협 끝에, 그녀들은 존을 독버섯으로 죽이려 하고 이에 성공한다. 이때 에드위나는 다른 구성원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존을 바라보고 있었고, 때문에 다른 방향으로 존을 진정시키려고 한다. 존이 그녀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녀는 그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그를 '남성'으로 바라본다. 때문에 그의 욕망의 분출을 받아주고, 그를 정말 '사랑'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행동은 전체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다. 결국 존은 죽었고, 그녀는 여전히 공동체에 속해있으며, 이는 영화의 마지막에 여성들이 여전히 잠겨있는 학교 안에 존재함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결국 생존욕, 그리고 성욕의 그릇된 교차가 이러한 비극을 낳은 것이다.
영화 전반적으로
매혹당한 여자들, 그리고 매혹하는 한 남자의 모습은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극대화된다.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연기, 특히나 매혹당하기 직전의 그 묘하고 간질간질한 감정선이 잘 드러나는 연기는 이 영화를 더욱 매혹적으로 만든다. 액션이나, 악센트가 강하지 않지만, 절제와 담담함 속에서 미묘한 서로의 감정선이 더 두드러진다. 그리고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이 감정선을 꽤나 잘 이끌어간다. 전쟁 중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정적인 환경 속에서의 강렬한 욕망의 행사는 더욱 부각되고, 때문에 배우들의 감정선이 더욱 두드러진다. 다만, 이 영화의 예고편은 이 영화를 굉장한 스릴러로 묘사하고 있는데, 스릴러스럽거나 과하게 동적이기보다는 대부분의 장면이 절제되고 정적이라는 점은 기대와 달라 아쉬웠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생존에 대한 욕망과 섹슈얼한 욕망의 극한 대립 속에서 비극적으로 교차하는 상황을 그린다. 이 과정에서 배우들의 감정선은 충분히 훌륭했고, 소피아 코폴라 감독이 연출한 정적인 배경과도 잘 어울렸다. 다만, 예고편의 스릴러를 기대한 사람이라면, 지나치게 정적인 배경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욕망의 대립과 이를 잘 표현한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꽤나 괜찮은 영상미에서 한 번은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나의 별점 : 3.5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