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끼 속 편한 저염식, 저당질식

저염식의 시작 why에서 how가 되기까지

by 예은예슬맘

2020년 10월, 밥을 먹었는데도 배가 고프다.

무슨 이유였을까? 혹시나 당뇨인가 하고 내과를 방문했다.

당뇨 수치가 높게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빈혈수치는 7. 대 치료받으셔야 합니다.


네??? 빈혈이요? 혹시 자궁 근종이 있는데 빈혈의 원인이 될 수 있을까요?

네 아마도 정확히 원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철분제 처방해 드릴게요.

철분제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내과에서 산부인과로 병원을 옮겨서 다시 치료가 시작되었다.


사실, 자궁근종은 10년 전, 산전검사를 할 때 알게 되었고, 임신가능성을 위해서 수술을 하진 않았다.

그리고 연이은 연년생 출생,, 연년생 두 아이를 키우며 너무 정신없이 바빴기에, 증상도 없었던 터라

자궁근종의 유무 자체를 잊고 살았다. 아니 나라는 사람을 잊고 살았다. 연년생 두 딸을 입히고 먹이고 재우느라 나라는 사람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발생했다. 지금도 충분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3년을 보내며, 나의 몸은 어디가 끝인지 모르게 바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이들을 키운다고 바쁘다는 이유로 내 밥 챙겨 먹을 시간도 없어서 라면, 짬뽕, 피자, 치킨, 초콜릿, 케이크, 떡볶이,, 이렇게 항상 고탄수 화물에다가 나트륨 함량이 높은 음식들로 나의 식단을 채워갔다.


그리고 코로나와 함께, 문밖도 나가지 못할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아이들과 그렇게 집에서만 생활하게 되었고, 배달 간편식에 길들여지고, 하루종일 아이들과 지내며 나의 건강에는 빨간 신호등이 켜지게 되었다.

걷는 양이 현저히 줄고, 움직임도 현저하게 줄기 시작했지만, 육아를 하다 보니 체력은 점점 더 고갈로 이어졌다.


동네 산부인과에서 근종이 다시 한 번 더 치료해야 된다라는 답변을 듣고, 대학병원으로 옮겨 진료를 봤다. 그때까지도 점점 빈혈증상과 출혈기간이 길어져서 힘든 시간이 지속되고 있었다.


폴립제거도 했고, 미레나를 했는데도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대학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자궁적출이라는 대답을 나에게 남기셨고, 수술날을 어쩔 수 없이 잡고 와야 했다.

빈혈 증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출혈도 점점 더 기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빈혈이 점점 더 심해지니, 철분제와, 지혈제를 먹어야 하루를 버틸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 진료 봤던 대학병원과 달리 , 다시 찾아간 곳은 분당 서울대였는데, 거기 의사 선생님의 의견은 달랐다.

복강경으로 근종만 제거하겠다는 소견을 주셨다.


나에겐 한 가지 희망 같은 꿈이었다. 자궁적출이 아닌 근종만 제거하겠다는 소식은 희소식이었다.

수술날까지 두 달이 남았다. 그 당시 상태로라면, 언제 기절해서 응급으로 실려서 수술을 하게 될지도 무르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니,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제는 나는 나 혼자가 아니었기에, 슬퍼할 수도 없었다. 내 옆에는 아직도 나의 손을 너무 필요로 하는 6살, 7살 두 딸들이 내 옆에 있었다.


다시금 마음을 정리하고 굳게 마음을 먹으며 수술을 기다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갔다.

병원질료를 보고 오며 봄날이었기에 지나오며 꽃을 보게 되었다. 끝이 없는 출혈과 어지러움, 빈혈로 사람이 죽을 수 도 있겠다 싶었지만, 그 속에서 나의 일상에 대한 감사가 시작되었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만큼 나는 아프지만, 걸을 수 있음에 감사했고, 예쁜 꽃들을 볼 수 있음에 감사했고, 내가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을 만지고 그 아이들의 손을 잡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내 손을 잡고 있는 아이들의 두 손을 잡고, 내가 아이들 옆에서 오래오래 함께 해주고 싶다는 누군가에게 일상이 나에겐 소원이 되기도 했다.


수술날을 기다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식단과, 걷기 뿐이었다.

그 무렵 코로나도 조금씩 잠잠해져 갔고, 아이들이 일상도 더디지만 회복이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수술날을 기다리며 해야만 했던 식단관리는 저염식, 저당질식이었다.

평소 나의 식습관을 완전히 바꾸어야 했고, 하루 만보씩 걷게 되었다.


그렇게 수술 2달을 남겨 놓고, 식단과 걷기를 하며 출혈과 싸움은 계속되었지만, 조금씩 나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계단도 힘들어서 1층이상도 걷지 못했던 나의 삶이 계단을 조금씩 오를 수 있었고 ,

의지적으로 물을 많이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잡생각이 들 때마다 많이 걸었다.


그렇게 두 달을 잘 버티고, 응급 수술이 아니라 정확한 날짜에 맞게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달을 불필요한 나트륨을 줄이고, 물을 많이 먹고, 야채를 많이 먹으려고 애써 노력하였더니 , 매번 갈 때마다 빈혈수치가 너무 낮아서 수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으로 걱정이 앞섰는데, 수술날 최종 검사했을 때, 12 정도로 수술해도 괜찮을 정도가 나왔다.


정말 감사하게도 , 복강경으로 수술을 진행하려고 했지만, 자궁근종 안에서 작은 혹이 있었다고 한다. 작은 혹과 근종 모두 제거하기 위해서 복강경과, 자궁경을 함께 시행했다. 자궁근종은 6cm로 거의 자궁을 덮은 상태였지만, 자궁경으로 작은 혹을 제거하려고 했는데, 정말 기적적으로 근종까지 따라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보다 가볍게 수술을 하게 되었고, 2박 3일 이는 일정으로 수술이 마무리되었다.


결국 수술날을 잡고 시작했던 나의 식습관들과, 만보 걷기를 하면서 나의 컨디션은 수술을 할 수 있는 최적화가 되기 시작했고, 수술 후에도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체력과 식단덕에 수술은 물론이고 회복까지 순차적으로 잘 이루어졌다.


내가 삶의 바닥으로 갔을 때, 처음으로 저염식 식단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제는 나뿐만 아니라, 질병으로 인해 고생하는 많은 분들에게 희망적이 나의 이야기와 식단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게 되었다. 영양사로 근무했던 나에게 자기소개서에 입사 후 포부에 대해서 항상 음식으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다는 글을 많이 쓰곤 했었는데, 내가 아프고 보니, 정말 사람들에게 음식으로 회복과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되고,

내가 하고자 하는 저염식, 저당질 식단이 가치롭고 필요한 사람에게 꼭 쓰이길 바라는 마음에 , 저염식을 해야만 했던 이유에서 이제는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고, 속까지 편한 식단을 계획하고 먹게 될까를 고민하게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