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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전자 May 12. 2024

마음의 효율성 따지기

효율성은 최소의 인풋으로 어떻게 최대의 아웃풋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할 때 쓰는 말이다. 자원이나 재원이 한정된 사회에서 높은 효율성은 꽤나 가치 있는 무언가이다.


약 육 년간 경영학과라는 집단에 발 담그고 자본시장에서 나를 홍보하고 팔며 아무래도 이 메커니즘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나는 모든 것을 효율 렌즈를 통해 바라볼 때가 많다. 효율적으로 일하는 법부터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연소할 수 있는 운동 루틴, 최소 시간 최단 거리로 약속 장소에 도착하는 경로, 무슨 일을 하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일상의 모든 걸 효율 렌즈를 통해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가 옹졸하게 느껴지나 대부분은 그 느낌을 무시하는 편이고 그럼에도 이따금 이런 내가 지긋지긋하다고 느낀다.




글을 쓸 때에도 효율 렌즈는 작동한다. 이 문장이나 단락 좋은데... 어디에 끼워 넣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에너지 모아서 이따가 한 번에 써야지.


막상 그 한 번이 되면 글을 원하는 대로 쓰는 때도 있지만 아닌 경우가 많다. 원래 글 쓰는 작업은 술술 쓰이면 무언가가 잘못되어 가는 것이기에 애초에 매일 꾸준히 쓰는 게 정도이고 그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동시에 효율성을 따지는 유한 인간이다 보니 두 생각이 충돌하는 것이다.


이렇게 어디선가 튀어나오는 효율 렌즈는 더 이상 쓸 수 없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안다. 더 이상 쓸 수 없으면... 쓰고 싶은 것이 없거나 쓰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인데 두 경우 상상할 수 있는 뉘앙스에는 차이가 있지만 지금의 내가 그런 나를 본다면 초라하다고. 결국 작가는 되지 못하는 고작 평범한 사람이었냐고 깊이 실망할 것 같다. 작가가 되는 날까지 스스로가 작가 되기를 기대하는 모습을 들춰보고 싶지 않다...


언제보다도 나의 평범성을 인지하고 직시하고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때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참 모순적이구나. 그리고 그 생각에 쫓기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진다.




오늘은 나도 모르게 효율 렌즈를 마음에 비추었다. 사실 어떤 행위를 했다기보다 혼자 상상한 것에 그치긴 했지만 정직함이 최고의 가치인 나에게 이 상상은 약간의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마음을 효율적으로 쓴다는 건 무엇일까. 최소한의 마음으로 상대를 기대 이상으로 기쁘게 하는 것? 최소한의 마음으로 실제 마음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것? 최저 가격으로 같은 물건을 사는 게 효율적인 소비라면, 짧은 시간 동안 명품 가방을 사서 선물하는 것이 효율적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이지 않나. 더 비싼 물건을 선물하면 나의 마음이 더 크다는 논리인데 그럼 마음은 한정된 자원이어야 한다.


경험상 에너지는 한정된 것 같은데 마음도 한정된 것일까. 마음은 끝이 없다는 어떤 사람의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나에게 마음은 한정된 쪽인  같다. 인정하기 싫지만 마음을 다해 글을 쓰면 소진된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 나는 진심이기 때문에 어떤 글이든 글을 쓰면 조금은 소진되었다고 느낀다. (그래서 아무 글이나 쓰기 망설여지는  같다. 어차피 소진된다면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소진되고 싶다고 열렬히 바라는 마음.)


어떤 이유로든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모든 진심을 내어주면 허탈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의 마음이 닳아서 납작해지면 어떡하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어떡하지. 내가 깎여서 더 이상 뾰족함을 찾을 수도 느낄 수도 없게 되면 어쩌지. 소진되는 것이 불안하다. 그럼 마음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애초에 무한한 것이 있을까. 무한한 우주에서 무한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모두가 사라지고 있는 시간을 걸어갈 때에 멸망하지 않을 무언가일 테다.


유한한 시간을 사는 어떤 인간이 갈망하는 무한한 무언가. 그것이 나에게는 사랑과 글이다. 친구들과 보내는 편안한 시간, 호탕한 웃음, 반려견과 누워있는 , 함께 산책하며 햇빛을 받는 .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가족과 함께하는 웃음, 서로의 말에  기울이고 새로운 목소리로 받아들이는 . 내장을 찌르는  같은  속의 문장과 눈물이 흐르는 문장.  삶의 파동을 일으키는 문장들.


이 짧은 삶에서 순간을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함이자 무한한 영원을 느끼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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