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맞은 뒤통수의 타격감이란

by 아점

스스로에게 맞은 뒤통수의 타격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팠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나의 삶이 단편소설이라면 이쯤에서 해피엔딩이 나지 않았을까? '원하던 고등학교에 당당히 입학한 OO이는 이후 훌륭한 요리사가 되었답니다' 정도의 문장으로 마무리되면 좋겠지만 삶이란 그렇게 쉽지 않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아무것도 모르던 초중등 시절, 주변 사람들의 칭찬 몇 번에 내가 요리에 재능 있다고 착각했고, 딱 착각한 마음의 크기만큼만 요리를 좋아했던 거 같다. 하지만 이걸 깨달은 것은 아주 나중의 일이다.


소소한 요리들과 작은 칭찬에 우쭐했던 내가 조리고를 간 후, 제일 처음 마주한 것은 정말로 요리를 사랑하고, 열정적이며 심지어 재능까지 갖춘 아이들이었다. 그때의 나는 딱 이렇게 생각했었다. '나도 요리 좋아해. 저 친구들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괜찮아' 그래서 남들 다 진로 고민할 고등학교 시절에 진로에 대해서 만큼은 고민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3년의 시간은 흘러갔고 나는 졸업을 맞이했다. 모두가 다음 스텝을 결정해야 할 때, 내가 선택한 것은 유학이었다. 미국에서 공부 중이던 언니가 내게 유학을 권하면서 '세상이 진짜 넓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조리고를 입학하며 대구에서 서울 경기로 이미 한차례 넓혀진 나의 세상이 얼마나 더 넓어질까 하는 기대감에 나는 영국유학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정말로 나는 넓은 세상만큼 나의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넓혀진 시야는 내게 새로운 가치관을 선물했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다수가 걷는 길을 정답으로 여겼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를 나와 좋은 직장을 다녀 성공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인생길' 그 길은 많은 사람이 걷는 만큼 안전해보였고 보장된 행복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행복하지 않을 때는 내가 걷는 길을 의심했다. 하지만 영국에서 깨달은 것은 그런 길은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자기가 개척한 길을 걸어가고 내가 걷는 길이 남들과 다르더라도 불안해하지 않는다. 묵묵히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나아갈 뿐이다. 나는 거기서 용기를 얻어 나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다.


'내가 요리를 생각보다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나에게 금기어와 같았다. 그래서 '나도 좋아하긴 해. 싫어하는 건 아니니까 좋아하는 거지.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어' 이런 말들로 애써 외면하며 버텨왔다. 왜냐하면 두려우니까.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까웠고 중학교 때 나의 말에 책임져야만 할거 같았다. 하지만 영국에 가서야 알았다. 나는 아직 너무 어리고 뭐든 할 수 있다. 그렇게 사춘기 시절에도 안 했던 진로 고민을 20살 넘어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진 느낌이었다. 평생을 한 길만 걸어왔는 데 이제 와서 다른 길을 찾으려니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애써 낸 용기가 완전히 사라지는 날도 있었고 그럴 때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엉엉 울기도 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요리를 그만둘 거라는 나의 말에 어느 누구도 걱정이나 염려와 같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혼날 각오를 하고 부모님께 고민을 꺼냈을 때 아빠는 의연한 태도로 내 이야기를 들어줬고, 아빠의 말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네가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데, 앞으로의 행복을 위해서 전공 바꿀 수 있지. 그래도 되지.'


그렇게 나는 계속 쥐고 있던 요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왔고 처음에 계획했던 영국 워홀 준비가 아닌 나의 고민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결정했다. 앞으로가 막막했지만 그래도 후련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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