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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창 Aug 10. 2016

불확정성의 원리

불확실할수록 확실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과를 나와서 자연과학을 전공했다.

이과라고 말하면 으레 수학을 열심히 했겠거니.... 생각한다. 맞다. 지겹도록 많은 수학 문제를 풀었고, 틀렸고, 맞췄다. 다른 이야긴데 이과생 중에서도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많다. 수학을 잘해서 이과생이 되는 건 아니다. 수학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학문이다. 수학은 통달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니까. 난제는 늘 있다.


이공계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이공계 생들이 기피하는 분야가 '역학'이다. 움직임에 대해 배운다. 역학은 고체 역학, 유체 역학, 기체 역학, 동역학.... 그 안에서도 수많은 분야로 나뉜다. 기계과는 역학을 가장 세세하게 배우는 과다. 공돌이 중에서도 상 공돌이 녀석들이 기계과에 모여 있다. 그들은 학부 4년동안 역학만 배운다. 그들은 가장 어려운 학문을 배우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다른 이야기지만, 기계과 출신에 해병대들이 많다. 그들의 아집과 자부심은 역할 정도로 단단하다. 기계과 쌍마초들도 회피하는 역학 분야가 있다. '양자 역학'이다. '양자 역학'을 역학의 꽃이라고 부른다. 양자 역학과 다른 역학의 차이점은 양자역학은 미시적 세계에서의 움직임을 다루고, 다른 학문들은 거시적인 세계의 움직임을 다룬다. 미시적인 세계는 우리가 보는 세계와는 조금 다른 이론이 존재한다.


그 이론을 이해하는 건 어렵다. 아주 어렵다.


나는 양자 역학을 배웠다. 일평생 배워도 모자란 학문을 3개월, 한 학기 동안 배웠다.

학부에서 배우는 양자 역학은 수소 원자에서 출발한다. 수소는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1번 화학원소이며, 1개의 양성자와 1개의 전자로 이뤄졌다. 양상자 주위를 1개의 전자가 무질서하게 움직인다. 아주 빠르게 움직인다.

웃긴 건 원자의 부피는 대부분 전자가 차지하고, 원자 질량의 대부분은 양성자가 차지한다. 모든 원자가 이렇다. 이 이론을 근거로 많은 SF 영화의 시나리오가 완성됐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텅 빈 공간이나 다름없으니 사람이 벽을 뚫고 지나다니거나 외형을 지마음대로 바꾸는 능력은 충분히 과학적인 것이다. 여기에 관객의 상상력으로 조금만 양념을 치면 그럴싸한 영화 한 편이 된다.


그러나 벽을 통과하는 사람은 없다. 그 이유는 아직도 인류가 수소 전자의 움직임을 파악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개의 전자와 한 개의 양성자. 이 둘의 관계는 미지수다. 하물며 전자 두 개와 양성자 두 개(원자 번호 2번은 헬륨이다.)의 움직임은 알 수 없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어렵다. 전자가 늘어나면 그 전자가 움직이는 궤도를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미지수가 갑절로 늘어난다.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선생님이 했던 말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미지수가 1개면 한 개의 식이 필요하고, 2개면 2개의 식이 필요하다. 삼차원에서 움직이는 걸 고려하면 미지수는 세제곱으로 늘어난다.  


이 난제를 풀면서 과학자들은 하나 깨달음을 얻었다. 철학자들은 깨달음을 얻으면 문장으로 정의하지만, 과학자들은 공식으로 정의한다. 그게 바로 '불확정성의 원리'다.

이 이론을 숫자 하나 없이 누구나 알기 쉽게 설명하는 방법을 난 모른다. 내가 아는 만큼만 적으면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전자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려  할수록 전자가 이곳에 있을 확률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가장 쉽게 이야기를 풀어내자면, 원자의 크기가 1cm라고 가정한다. 원자 1cm 안에 전자가 있을 확률은 100%다. 그럼 양성자를 중심으로 지름 5mm 안에 있을 확률은 80%정도 되겠다.  3mm 안에 있을 확률은 50%.... 전자가 점유하는 공간의 범위를 좁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지만 그곳에 있을 확률은 감소한다는 것이다.



풀어 말하니까 너무도 당연한 말 같다. 이 당연한 말을 수백명의 과학자들이 수백년동안 연구하고 말했다. '답이 없다(다만 확률로 존재한다)'

저 이론을 발표한지가 적어도 한세기가 지났는데(독일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1926년에 발표했다), 지금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답을 요구한다. 여전히 흑백 논리, 선과 악, 슬픔과 기쁨.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길 요구한다. 객관식 문제를 만든다.

확실할수록 답이 아니다. 하늘 바라보면 '무슨 색이니?' 묻는다면 고민없이 파란색이라고 대답할 수 있나? 당신 기분에 대해 묻는다면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 명징할수록 답아 아니다.

불확정성은 과학 이야기가 아니다. 삶에 대한 이야기다.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과도 맞닿아 있다. 불확정성은 민주적인 단어다.

이 사회에 부조리하고, 화나는 일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이유는 편을 가르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이 없는데, 억지로 선을 긋는다. 선을 중심으로 우리는 너와 내가 된다. 우리 중에 일부가 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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