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석창 Dec 06. 2016

잔치국수

아직도 엄마랑 싸운다. 서른이나 처먹어서 엄마랑 싸울 일이 뭐 있냐 싶지만, 있다. 어머니는 성당에 다닌다. 엄마는 반평생을 성당에 다녔다. 엄마가 할아버지와 대판 싸우고 외가를 출가할 때도, 아버지를 처음 만날 때도, 내가 뱃속에 있었을 때도 엄마는 성당에 다녔다. 나도 다녔다. 지금은 내가 안 다녀서 싸운다.

성당에 관한 나쁜 기억은 없다. 시골에 조그만 성당에 다녔는데 다들 가족 같고, 다들 모난 구석이 없었다. 속사정이 파헤치면 세상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렇게 왕래가 잦을 정도로 친하지도 않았다. 여러모로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하느님, 예수님이 없다는 것도 충분히 잘 알고 있고, 설령 있다고 해도 성당을 다니지 않아 나를 내팽게 칠만큼 속좁은 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 안 다닌다. 

성당은 주말에 간다. 일요일 아침 미사에 가면 간혹 결혼식을 한다. 그때 결혼하는 사람들은 썩 형편이 좋지 못한 남녀다. 성당은 부부가 되는 가장 저렴한 방법이다. 미사에 참여하는 교인들이 하객을 대신하고, 신부가 주례를 대신한다. 축가는 성가대가 불러준다. 축하는 사람들을 위한 점심은 잔치국수로 대신한다. 제법 구색을 갖춘 결혼식이라고 볼 수 있다.

미사가 끝나고 조그만 성당 옆에 더 조그만 회관에 모여 배추김치 몇 조각과 잔치국수를 먹는다. 그날 회관에서 밥일을 도와주는 교인들은 미사가 끝나자마자 밀려드는 사람을 차곡차곡 자리에 앉힌다. 순서대로 앉힌다. 모두가 가족 같은 교인이니까 누구와 앉든 자리 따위는 중요치 않다. 

초록색에 하얀 점이 무작위로 찍혀있는, 포장 마치에서 즐겨 쓰는, 누구의 머릿속에나 있는 그 그릇에 면과 국물, 고명을 던지듯 담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적당히 식은 채로 나온 국수가 고맙다. 그릇을 받아 들어 테이블이 놓기도 전에 입으로 가져간다. 호박과 양파를 적당히 볶아 올린 고명이 국수의 식감에 재미를 더한다. 호박은 면에 딸려 올라올 만큼 적당히 흐물거리지만, 씹으면 미미한 아삭함이 있다. 실 뭉텅이 같은 계란 지단이 소박한 국수에 멋을 더한다. 꼴에 육고기라고 없으면 또 섭섭하다. 

욕심껏 면을 집어 올리면 물방울 모양이 된다. 입에 가득 찰 때까지 빨라 올리고, 적당히 볼에 찼을 때 깨문다. 면이 후두두 그릇으로 떨어진다. 식은 국물을 다시 들이켠다. 짭짤한 멸치 국물로 입 속에 면 사이사이를 채운다. 마지막 한 젓가락에 김치를 올려 마무리한다. 몇 발자국 몸을 옮기면 배가 꺼질 것을 알면서도 다 비운 그릇을 보면 배부르다. 입구에서 넉살 좋게 인사하는 신랑에게 사람들은 '오래 살아, 잘 살아. 그래. 그래.' 

국수를 비운 사람들 축의금을 대신해 한 마디씩 하고 자리를 비운다. 


작가의 이전글 평양냉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