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숲이 말없이 안아준 날

사소한 분노가 가르쳐 준 나의 진심

by 마음키퍼


사람은 종종 사소한 순간에서 무너지고, 또 거기서 다시 시작된다.

어묵 두 개 앞에서 흔들린 마음이 자작나무 숲에서 회복되는 이야기.

결국, 삶은 우리를 조용히 성장시키는 숲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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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꿈을 가진 청년


한 청년이 있었다.
어릴 적 깊은 상처를 껴안은 채 자라서인지
누군가를 돕고, 아픈 이들에게 사랑을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꿈은 작지만 단단했고,
그 단단함은 언제나 조용히 가슴 안에서 불꽃처럼 타올랐다.


그는 강인한 몸과 남다른 정신력을 인정받아
군 복무 중 특수부대로 차출되었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훈련 속에서도
그의 꿈은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깜깜한 밤, 헬기에서 뛰어내리며 그는 생각했다.
‘이제 뭐가 무섭겠어. 세상으로 돌아가면, 정말 아픈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지.’

그 믿음은 순결했고, 그 다짐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때만 해도.


어묵 두 개의 진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거창한 포부가 아닌 사소한 일상 속에서

우리의 진심을 확인하곤 한다.


어느 날, 복학 후 동료들과 합숙 중에 일어난 일이다.
늦은 밤 출출함을 달래줄 어묵이 준비되어 있었다.
한 사람당 다섯 개씩.
그런데 그의 접시엔 세 개밖에 없었다.

의아한 마음에 주변을 돌아보던 그는
동료 한 명이 슬그머니 두 개를 가져간 것을 보고 말았다.

순간, 그의 가슴속에서 무언가 벌겋게 끓어올랐다.


이건 단순한 어묵 두 개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살아온 시간, 그가 품었던 정의감,
그 모든 것이 조롱당한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주먹을 들었다.
말보다는 주먹이 익숙했던 시절이었다.
아... 순식간에 난장판이 벌어졌다

.......


그렇게 그는 어묵 두 개를 되찾았다.

하지만, 그는 묘하게도 웃지 못했다.
어묵은 식어가고, 마음은 그보다 더 빠르게 식어갔다.


“어묵 두 개가 뭐라고!”
“내가 꿈꿔온 세상은 이게 아닌데... 아!”


그토록 단단했던 이타심과 인류애는 그 순간, 흔적 없이 무너져버렸다.
그 자그마한 분노를 웃으며 넘기지 못했던
미성숙한 나만 커져버린 순간이었다.

사소한 분노가 가르쳐 준 나의 진심

그날 이후, 그는 가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가!”


삶이란 그런 것 같다.
처음 마음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가끔 너무 깊이 묻히는 것이어서
자신이 얼마나 간절하게 누군가를 돕고 싶었는지를
잊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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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말없이 안아준 날


그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는 울창한 은빛의 세상을 만난다.
강원도 인제의 원대리 자작나무숲.

숨 가쁘게 살아오느라 무장하고 애썼던 순간들이
내 안의 맑은 속삭임으로 다가와
숲은 조용히 나를 끌어안아 주며 말한다.


“괜찮아, 그 시간들은 결코 헛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속삭인다.


“이제는 온전히, 지금의 너를 살아봐.”


달려오느라 지쳤던 나, 웃는 척해야 했던 날들,

‘다시 또’를 다짐하며 버텨온 시간들.

그 모든 순간들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은 오롯이 이 숲처럼,
조용하고 따뜻한 나로 머물러도 된다고.


그 말 앞에서,
나는 오늘도 조금 회복되고 있음을 느낀다.


에필로그 | 껍질을 벗으며 자라는 사람


우리는 모두, 어딘가 부족하고 엉뚱했던 날을 안고 살아간다.
그날의 사소한 사건이
시간이 지나면 뜻밖의 깨달음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삶은 그렇게,
사람 하나를 자작나무처럼 키워낸다.
겹겹이 껍질을 벗겨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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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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