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과 손잡고 걷는 교황을 주시기를

영화 <콘클라베>

by 읽는 인간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죄는 확신(certainty)입니다. 확신은 통합과 포용의 강력한 적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살아있는 것은 의심과 손을 잡고 걷기 때문입니다.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앙도 필요 없습니다. 의심하는 교황을 보내 주십사 기도했습니다.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하고 나아가는 교황을 주시기를.”


교황이 선종한 후 콘클라베의 단장을 맡은 로렌스 추기경은 첫 번째 투표를 앞두고 다소 파격적인 내용의 연설을 해서 투표를 위해 모인 추기경들을 놀라게 한다. 그리고 콘클라베가 진행되는 내내 추기경들과 관련된 의혹을 조사하고 고독한 결단을 내리면서 무거운 책임감과 인간적인 의심, 회의, 갈등으로 괴로워한다. 영화에서 로렌스 추기경 역을 맡은 노배우(랄프 파인즈)의 표정 연기는 압도적이다. 고뇌의 화신이다. 영화에서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마다 복잡하고 예리한 그 눈에서 깊고 날 선 고뇌가 뿜어져 나온다.

네 명의 유력한 후보가 등장한다. 첫 번째로 선대 교황의 뒤를 이어 진보적인 교회를 지향하는 자유주의자 그룹의 벨리니 추기경이 있다, 두 번째로는 인종, 동성애, 여성, 낙태, 타 종교에 대한 관용 등의 문제와 관련해서 선임 교황의 포용적 정책을 원점으로 되돌리고 싶어 하는 보수성향의 테데스코, 그리고 첫 번째 투표에서 최다 득표를 한 흑인 추기경 아데예미와 권력지향적인 야심가 트랑블레가 있다. 투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모든 사피엔스들의 집단과 속세의 정치판에서 볼 수 있는 온갖 일들이 벌어진다. 아데예미는 가톨릭 교회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성추문으로, 트랑블레는 성직매매 혐의로 제외된다.

이제 보수주의자 테데스코가 강력한 후보로 부상하고 이에 위협을 느낀 로렌스 추기경은 고심 끝에 대의를 위해 자신이 교황직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그 순간 로마 시내에서 테러로 인한 폭발이 일어나고 콘클라베를 위해 외부로부터 완벽히 폐쇄되고 격리되었던 시스티나성당의 창문이 깨진다. 이 폭발 사건은 무슬림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까지 콘클라베의 과정을 지켜보던 관객에게는 역설적으로 신의 개입으로 보인다. 폭발 사건 직후 추기경들이 모인 자리에서 테데스코 추기경은 무슬림에 대한 노골적인 분노와 혐오를 드러낸다.


마지막 두 후보 테데스코와 로렌스의 낙선은 다름 아닌 ,‘확신’ 때문이다. 테데스코는 가톨릭이 무슬림보다 선하다는 확신, 그리고 로렌스는 보수보다 진보가 우월하다는 확신에 사로잡혀 있다. 반면에 교황으로 선출된 베니데스 추기경은 그 존재 자체가 불확실함인 동시에 자신의 불확실함을 그대로 수용하는 겸손함을 보여준다. 베니데스 추기경은 어떻게 보면 가장 교황직과 어울리지 않는 의외의 인물이다. 그는 멕시코 출신이고 전쟁 중인 무슬림 국가에서 주로 사역했으며 현재는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대주교를 맡고 있다. 다른 추기경들은 심지어 지금까지 그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그의 신변상 안전을 위해 작고한 교황이 그의 존재를 비밀로 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나타난 그의 정체를 의심하는 시선이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게다가 그의 몸에는 기형적으로 여성의 생식기가 존재한다.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 그가 선대 교황에게 사임 의사를 밝혔지만 교황은 사임을 허락하지 않고 자궁제거수술을 권한다. 그러나 베니데스는 고심 끝에 수술을 포기하고 신이 주신 불확실함(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닌)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자신의 존재는 신의 실수가 아니므로.


어떤 사안을 놓고 개인이나 집단이 대립할 때, 특히 정치판에서, 우리는 무서우리만치 확신에 찬 차별과 혐오의 발언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곤 한다. 한 치 앞을 모르고 결코 동시에 두 방향을 볼 수 없는 인간에게, 확신이란 어쩌면 무모함이거나, 다양성과 복잡한 이면에 대한 무지이거나, 불확실함을 인정할 용기의 부족이거나 또는 편의나 이익을 위한 비겁한 타협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교만과 독선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연일 드러나는 추문과 폭틴테러로 혼란에 빠진 추기경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확신과는 거리가 먼 베니데스의 다음과 같은 고백이었다.


“교회는 과거가 아닙니다.

교회는 전통이 아닙니다.

교회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입니다”


로렌스 추기경이 콘클라베 과정에서 그랬듯이 강한 확신이 있어서 선택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상태를 인정하면서 상대를 포용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 <콘클라베>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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