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더 나은 전문가가 될 것인가
사망
재작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향년 98세. 당신의 이름은 ‘대운’이었다. 당신이 태어나던 당시에는 여자도 남자 이름처럼 지었기 때문에 친구분들도 남자 이름이 많았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 중에 조선의 소녀들을 강제로 차출해서 무슨 짓을 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아마도 경훈, 무남, 동척과 같은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하면 혹여나 일제의 강제 동원을 피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을 것이다.
대전으로 내려가 대학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았다. 국군대전병원에서 군의관을 하던 시절 큰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에 할머니는 돌잔치 때 증손자를 보셨지만 아마 오래전에 잊었을 것이다. 반 년 전부터는 외삼촌 내외 말고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기억은 사라지는 법이다. 나는 가끔 기억이 영혼에서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가는 건 아닐까,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큰아이가 학교 수업을 빠지고 왔기 때문에 결석계를 내면서 시체검안서를 학교에 제출했다. 사오 년 전 만 해도 의사소통이 됐지만 석 달 전부터 식사량이 줄면서 활동이 줄었고 한 달 전부터는 거의 누워지내다가 돌아가셨다. 사인은 노환. 인간은 모두 다르게 태어나지만 자연사의 과정은 모두 엇비슷하다. 외할머니 역시 그랬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아마도 법의학자를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시신을 보는 사람일 것이다. 시체검안서 때문이다. 사이렌 등을 번쩍이면서 도착한 구급차 뒷문이 열리고 구조사가 하얀 시트에 싸인 시신을 이동카트에 싣고 소생실로 들어온다. 눈을 꼭 감은 창백한 얼굴. 기계적으로 엄지와 검지로 눈꺼풀을 벌려 동공을 확인하고 경동맥을 손가락으로 눌러 맥박을 확인한다. 심전도를 붙여 무수축 리듬이 나오는 걸 확인한 후에 따라온 보호자에게 사망했음을 설명하고 기록을 위해서 몇 가지를 물어본다.
1년차가 되면 윗년차가 반드시 가르쳐 주는 것 중에 하나가 임상적 죽음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서양의학이 보편화되기 전 한국의 마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동네 어르신 너덧 명이 공동으로 사망을 확인해 주는 것으로 임상적 죽음을 확인하는 절차를 갈음했다고 한다.
유럽도 그리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적어도 베살리우스가 1543년에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를 발표하기 전에는 인체의 실제 해부학적 구조에 관하여 아는 바가 없었으니 혈관을 촉지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게다가 베살리우스가 저지른 끔찍한 사고를 생각해 보면 더더욱 그렇다. 베살리우스는 가족들의 요청으로 사망한 스페인 귀족을 부검하다가 심장이 뛰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살아 있는 사람을 부검한 것이다. 인류역사상 가장 유명한 해부학자도 사망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몰랐던 것이다. 분노한 가족들이 재판에 넘겼지만 정상이 참작돼 사형을 당하지는 않았다. 베살리우스는 죄를 씻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생을 마감했다. 그 누구라도 그의 입장이었다면 도저히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