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공연 연습
0110 인물분석
선규는 이번 리딩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만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전보다 전체적으로 나아지고 있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캐릭터들도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엔 선규가 들어옴으로써 연출과 연기가 분리된 게 좋았고 선규가 바꾼 캐스팅이 나름 주효했던 것 같다. 선규는 주중에 아르코 예술기록원을 들려 청우 극단의 공연 동영상을 보고 왔다. 당연한 얘기지만 프로들의 연기가 매끄러워 훨씬 재밌었지만 캐릭터 설정과 관련해서 약간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다고 했다. 리딩을 마무리하고 나서는 조련사 역할을 발전시킬 방안이랑 연극의 마무리에 대해서 다시 의견을 나눴다. 결국 반복적이고 소모적이기도 하지만 공연에 올라가기 전까지 이 논의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마무리는 이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되고 조련사 역은 그만큼 중요하고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일요일 아침 여지없이 은하의 장문의 톡이 올라왔는데 그 중 한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왜 의사가 첫 장면에 등장했냐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실 소설가 김영하의 창작강의에서 들은 얘기다, 플롯이란 근본적으로는 ‘정보의 배치’이다. 예전에 조련사 역의 윤상화 배우가 밝힌 것처럼 이 연극은 조련사와 형사의 장면을 위주로 짜여진 40분 남짓의 소극이었다. 거기에 의사와 어머니 분량을 늘여서 한 시간이 넘는 연극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그럼 당연히 주요 인물인 형사가 의사보다 먼저 나와야 할 것 같지만 작가는 굳이 의사만을 첫 장면에 등장시켰다. 이건 여러 가지를 의미하는데 하나는 형사보다는 의사가 ‘조련사’라는 인물을 드러내는데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조련사의 침묵, 동어반복, 단조로운 어조, ‘달려간다’와 ‘뛰어간다’가 다르다는 특이한 언어 감각, 비정상적인 어머니와의 애착관계. 형사가 등장하기 전 짧은 순간 동안 이 모든 것들이 관객들에게 보여지고 암시되고 전달된다. 새삼 이 짧은 순간에 침묵과 동어반복 속에서 조련사라는 인물을 보여줘야 하는 어려움이 느껴진다. 희곡 역시 영화처럼(엄밀히 말하면 소설도 그렇다) 첫 장면에서 주요 인물들의 특징들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제시돼야 한다. 어쩌면 영화보다 훨씬 더 경제적인 방식으로.
이후에는 형사를 등장시켜 조련사가 취조실에 불려 온 사건의 ‘전모’가 그려진다. 관객들은 이 지점에서 조련사가 진짜 고의로 풀어준 건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지만 의사와 이어지는 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서 이 연극이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소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은하의 질문을 들은 뒤 다시 작품을 읽어보니,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작가가 굉장히 신중하게 장면을 배치했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연기가 연기자의 몫이듯 연극은 연출가의 몫이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지만 그게 전부일 순 없다. 연극은 새로운 연출에 의해서 매번 새롭게 만들어지고 연출만의 것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좀 더 바란다면, 2026년 <그게 아닌데>는 우리만의 <그게 아닌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