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공연연습
0125 내 어머니
서울이 아니, 한반도가 완전히 냉동고가 됐다. 화요일이었던 대한(大寒)을 기점으로 눈도 한차례 내리고 영하 10도 아래의 맹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급기야 병원에서는 물난리가 한 번 났다. 보일러가 터진 건 아닌가 했는데 다행히도 싱크대 배수관이 기름때로 좁아지면서 생긴 문제여서 쉽게 해결하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글을 쓰고 있는 중에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으악!) 월요일엔 성복이와 줌리딩을 했다. 연습이 거듭될수록 나아지고 있고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이전에 좋지 않았던 것들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기 때문에 희망적이다. 부분적으로만 리딩을 하고 얘기를 조금 나누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수요일 줌 리딩엔 준용이 참가했고 동료가 나오는 부분부터 끝까지 읽었다. 현 연출과 전 연출이 매번 의견이 크게 갈리는 부분이 바로 어머니의 캐릭터이다. 의사 형사 조련사 역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비슷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어머니에 대해서는 여전히 평행선이다. 선규는 자신의 의견이 낙근의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완전히 다르다. 선규는 조련사의 어머니가 여느 어머니들처럼 수다스럽고 호들갑스러우며 따스함과 인간적인 면을 갖추고 있지만 애정이 과하거나 부적절한 인물로 보여지기를 원하고, 낙근은 절제된 감정표현과 고상한 척하고 아들에 대해서 모든 걸 아는 척하지만 사실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인물로 보여지길 바란다. 이 둘이 어떻게 같은 인물일 수 있겠는가. 어머니 캐릭터에 대한 열띤 토론은 다음 날까지도 단톡방에서 식을 줄 몰랐는데 결국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하긴 이런 문제가 쉽게 결론이 나겠는가. 그나마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건 토론 말미에 은하가 사진과 함께 올린 톡 내용 그대로다. 북한산 우이령길 트래킹 중, 제가 잘할게요. 연기는 결국 연기자가 하는 것이다.
내 개인적인 의견은 낙근이 그리는 어머니가 극적으로 더 재밌을 것 같았다. 선규는 흔히 볼 수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어야지 관객들에게 공감을 쉽게 얻고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엔 ‘흔한’ 어머니의 모습이라는 것이 상당히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몇 달 전에 이수지가 연기한 제이미맘 영상이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던 이유를 생각해 보자.
“왜 사람들은 그 영상을 그토록 많이 봤을까요?” 언젠가 연습을 끝내고 저녁을 먹으면서 은하가 묻는다.
“사람들이 그런 비슷한 사람을 많이 봤는데 마침 이수지가 그걸 똑같이 연기하니까 ‘맞아, 맞아’ 하면서 공감하는 거지” 선규가 대답한다.
선규의 말처럼-그러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어머니가 연출의 방향과 맞지 않을 순 있지만 흔하지 않은 건 아니다- 수많은 이들은 제이미맘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 더 생각해 봐야 하는 건 그 영상의 어마어마한 조회수에는 현실에 대한 미묘한 비틀기와 신랄함도 한몫하고 있다는 것. 제이미맘이 일상적인 패션처럼 장착한 몽클레어 패딩과 샤넬 가브리엘 호보백과 에르메스 목걸이뿐만 아니라 네 살짜리를 하루 종일 학원 뺑뺑이를 돌리면서 그게 자식의 미래를 위한 거라고 착각하는-사실은 어느 정도는 자기만족을 위해서인데- 대치동맘에 대한 은근하고 통렬한 조롱말이다. 이거야말로 완벽한 블랙코미디 아닌가.
“긴메르(1차 대전의 전설적 전쟁영웅인 프랑스의 공군비행사)! 넌 제 2의 긴메르가 될 거다! 두고 봐라. 네 엄마는 늘 틀림이 없지!” 나는 피가 얼굴에 몰려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등 뒤에서 웃음소리들이 들려왔다.
로맹가리의 소설 <새벽의 약속>의 도입부이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맘 약한 택시기사 리날디를 협박해 낡아빠진 르노 택시를 타고 항공학교 교관을 하고 있는 주인공을 찾아온다. 남초 세계에 어머니가 찾아오는 걸 반기는 아들은 별로 없다. 주인공은 너무 창피한 나머지 어머니를 차 뒤쪽으로 밀려고 한다. 그 순간 어머니는 오래전에 고전이 된 참을 수 없는 문구를 들려준다. “그래, 넌 네 늙은 에미가 부끄럽단 말이지?”
내가 이 장면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부분이 첫 장면에서 보여줘야 할 요소들을 효과적이고 밀도있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의 모든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란 주인공, 억지도 잘 쓰고 낯간지러운 애정을 시간과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거침없이 보여주는 좀 과하지만 헌신적인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부끄러움과 애정의 교차.
단톡방에서 어머니 캐릭터에 대한 공방이 한참 이어지던 중에 나는 내 어머니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 어머니는 어느 쪽일까. 초등학생 때 있었던 일이다. 당시에 아파트 단지 안에서 펩시콜라 시음회(두 가지 콜라를 마셔보고 어떤 게 더 맛있는지 얘기해 주는 방식이었다)를 했는데 동네 꼬마들은 공짜로 콜라를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너도나도 근처에서 알짱거렸다.
내 기억에 나도 몇 번 마셨던 것 같다. 어느 날인가 동생이 울면서 집으로 들어왔다. 어머니는 이유를 물었고 동생의 얘기인즉슨 너무 어려서 (아마도 보호자 동의 없이는) 안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초딩이었던 동생에게 보호자 동의가 필요한 게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으면서 그럼 왜 나는 필요가 없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조금 이해가 안 되기도 한다. 결국 문제는 ‘키’였다. 당시 동생의 키가 너무 작았던 것이다. 참고로 초등학교 입학 당시 동생의 키는 109센티미터였다(너무 작아서 지금도 기억이 난다). 어머니가 화가 났던 지점은 그거였다. 키가 작다고 동생을 차별했다는 것. 어머니는 한달음에 내려가 시음회 부스를 뒤엎다시피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 펩시 형과 누나들은 쩔쩔매면서 어쩔 줄 몰라했고 어머니는 사자후를 뿜으며 천둥같은 분노와 저주를 퍼부으셨다. 따라 내려갔던 나와 동생은 약간 통쾌해했던 것 같기도 하다. 뭐 우리가 쥐구멍 드나들 듯 시음부스를 배회하며 여러 번 시음을 했으니 펩시 형과 누나들이 조금 싫은 소리도 했으리라.
하지만 어머니는 때때로 화가 너무 과했고 별거 아닌 일에도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해서 분노와 저주를 일갈하시곤 했다. 그 대상이 나와 아내일 때도 있었지만, 식당의 직원이거나 백화점의 점원일 때도 있었다. 부끄러움과 애정, 때로는 분노까지. 더 이상 어린 시절의 펩시 사건처럼 킬킬거리며 넘길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는 얘기다.
의사 그만하십시오! 제발 그만 하세요! 당신 같은 어머님 때문에 아들이 얼마나 괴로운 줄 아세요? 얼마나 답답하게 사는지 아시냐고요? 우리 어머니도 당신 같았어요. 절 마치 모형비행기처럼 조종했죠. 친구도 연애도 그 흔한 여행도 없는 청춘을 선물해줬어요. 오로지 의대를 보내기 위해서.
선규의 어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낙근의 어머니는 혈액암과 치매로 고생하시다가 작년에 돌아가셨다. 낙근이 위의 대사를 칠 때마다 게이지 만땅의 ‘진짜’ 분노와 울분이 느껴지는 건 어쩌면 예전에 낙근으로부터 들은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낙근은 의사의 저 대사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장난스럽게 얘기하곤 한다.
선규와 낙근의 의견 차이가 두 사람의 어머니에 대한 경험의 차이 때문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의 어머니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혹 안다고 한들 그게 연극에서 캐릭터를 정하는데 영향을 주었다고 어떻게 함부로 애기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적어도 내 어머니는 밭 갈고 소 키워서 아들 대학 보내고 헌신적인 애정으로 또 아들 걱정으로 노심초사하며 보내는 어머니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부모가 돼서 보고 들었던 주위의 수많은 어머니들 또한 그랬다. 이게 아마도 내가 선규의 ‘어머니’(조련사의)보다 낙근의 ‘어머니’에 더 공감하는 이유일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