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공연일지
0131 ‘선’(규) 없는 날
되도록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려고 한다. 아침 저녁으로 왕복 두 시간 동안 운전하는 것도 지겹고 운전 중에는 딴 생각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지하철을 타면 앞에 앉은 사람의 모습을 노트에 묘사해 보곤 했다. 어떻게 생겼고 어떤 옷을 입었고 어떤 가방을 메고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를 묘사하면서 적절한 단어를 찾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시간도 잘 가고 나중에 글쓰는 데 도움도 되니 일석이조였다.
혹한의 날씨가 계속되면서 2주일 내내 운전해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전에는 클래식 라디오 채널을 듣거나 오디오북(최근에는 <그게 아닌데> 대본리딩 파일)을 들었는데 요즘은 다른 걸 하고 있다. 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을 넣어서 해보는 것이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욕도 하고 미친 사람처럼 웃어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대사를 완벽하게 외운 것 아니어서 중간에 빼먹는 부분도 있고 더듬거리는 부분도 있지만 거의 도착할 즈음이 되면 한 편의 연극이 끝난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은 약간 배우가 된 기분이다.
수요일 줌 리딩을 위해서 모였다. 준용은 임윤찬 연주회-엄밀히 말하면 정명훈이 지휘하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연주하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협연자이다-를 보러 가야 해서 들어오지 못했다. 꼭 필요한 지문만 몇 개 읽고 중간에 거의 끊지 않고 대본 리딩을 마쳤다. 청우극이 한 시간이 조금 넘는데 리딩만으로 한 시간이 넘으니 속도가 상당히 느린 편이다. 일단 대사 숙지가 안 돼 있고 배우들 간의 티키타카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선규는 비록 여전히 부족하지만 처음에 대본리딩을 했을 때 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다른 배역들도 좋아져야 하지만 조련사가 앞으로 좀 더 많이 향상이 돼야 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보기에도 성복은 처음 시작할 때보다 많이 나아졌고 훨씬 가벼워졌지만 조련사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 중 무언가가 빠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들 었다. 선규는 조련사라는 인물이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말로 표현하는 게 서툰 사람이어서 몸을 많이 사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고, 낙근은 윤상화 배우가 연기한 조련사를 참고해 보면 아이처럼 단순하고 즉각적이고 솔직하게 감정표현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거의 끝날 무렵 은하는 어떤 영감을 받은 표정으로 “이게 말이 되는 얘긴지는 모르겠는데요” 라는 말을 시작했다. “너무 플루언트(fluent)해. 그럼 안 될 것 같아. 너무 똑똑해 보인단 말야.” 우리가 처음에 분석했던 것처럼 조련사는 의사소통에 어느 정도 장애가 있는 사람이고 작가는 ‘데’라는 어미로 끝내며 독특한 말투를 표현하려고 했고 윤상화 배우도 단조로운 어조와 말이 중간에 뚝 끊기는 듯한 느낌을 잘 살려 캐릭터를 표현했다. 그러니 조련사는 음치이며 박치이고 음량 조절도 안 되기 때문에 말이 물 흘러가듯 들리면 안 되고 뚝딱거리는 것처럼 들려야 한다는 것이다. 뚝딱거림, 그게 아마도 내가 느꼈던 무언가가 빠져 있는 요소가 아니었을까.
토요일은 연출없이 연습을 하기로 했다. 먼저 도착해있던 성복이 오늘은 누군가가 쉬자고 얘기할 줄 알았다고 했다. 차마 막내인 자신이 그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며. 전직 조련사로서 성복의 마음이 이해된다. 사실 조련사는 연습하는 동안 거의 내내 무대 위에 있기 때문에 다른 역에 비해서 더 피로하다. 게다가 요즘은 수요일마다 줌리딩도 하고 있으니.
낙근이 4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했다. 은하는 조금 늦는다고 했기 때문에 앞부분을 연습했다. 낙근은 장면연습을 시작 하기에 앞서 우리가 연기를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더 이상 학생 때처럼 연출이 뭔가를 만들어줄 것을 바라지 말고 연기자가 능동적으로 하나씩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차에서 혼자 대사 연습을 할 때는 몰랐는데 무대에서 리딩을 해보니 단조로운 느낌이 들었다. 낙근은 그 원인이 조련사와 같이 나오는 장면에서 거의 형사가 대사를 하는데 목소리 크기가 거의 비슷한 것과 조련사를 강하게만 몰아붙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후반부에서 조련사가 하는 긴 대사에서는 감정의 변화가 잘 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중간에 참고하기 위해 청우극을 녹음한 음원을 들었다.
예전에 어떤 유투브 채널에서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가 타레가의 ‘라그리마(lagrima)’라는 곡을-참고로 아주 쉬운 곡이다- 초보, 아마추어(경력 2-3년), 프로 연주자가 치는 걸로 나눠 단계별로 흉내를 내듯 연주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박규희가 연주하는 ‘라그리마’는 내가 연주하는 곡과 완전히 다른 곡이었다. 핵심은 레가토와 프레이징. 아마추어들은 음을 제대로 된 박자에 튕기는 것에만 급급하지만 프로 연주자들은 문장과 문단을 나누듯 한 곡 안에서도 노래하듯이 자연스럽게 음들이 이어지고 감정이 연결되도록 연주한다. 이걸 프레이징이라고 하는데 윤상화 배우의 대사 처리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배우의 대사가 노래이고 단어가 음표라면 극의 전체적인 흐름, 문장의 시작과 끝, 음량의 변화, 고음과 저음과 같은 것들이 매끄러운 레가토와 정교한 프레이징으로 연결돼야 한다. 청우극을 녹음한 음원을 들으니 윤상화 배우의 대사 속에서는 박규희가 연주했던(준용은 임윤찬의 연주를 들으며 느꼈겠지? 아이고, 부러워라) 정교한 프레이징 같은 것이 느껴졌다. 당연히 내가 하는 대사 속에서는 또박 또박 음만 연주하는 아마추어의 ‘삘’이. 아이고, 부‘끄’러워라.
은하는 한 시간 정도 늦게 왔고 어머니가 나오는 장면을 연습했다. 낙근은 대본을 읽으면서 장면 내에서 전체적인 감정의 변화를 설명하고 은하와 성복에게 의견을 물었다. 성복과 은하의 리액션은 좋아졌지만 여전히 둘이 만들어내야 하는 감정의 알맹이는 여전히 잘 보이지 않았다. 단순한 모자간의 대화가 아니라 장애가 있는 아들과 아들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어머니 사이에 만들어지는 답답한 불통의 벽.
토요일 연습의 장점은 다음 날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것. 저녁을 먹고 가자는 은하의 제안으로 근처에서 뒷풀이를 하기로 했다. 학생 때는 매번 연습이 끝나고 나서 밥 먹고 술을 마셨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꽤 오랫동안 연극반의 아지트는 일성식당이었다. 내가 신입생이었던 시절에 일성식당이 잠깐 없던 시기가 있었는데, 소문-정확하게 말하면, 청실홍실 식당 사장님의 말-에 따르면 장소를 옮겨 개업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했다고 했다.
80년대 학번들이 연극을 하던 시절에도 그리고 뉴밀레니엄의 신입생들이 연극을 하던 시절에도 연습이 끝나면 우린 ‘일단’ 일성식당으로 갔다. 일성 식당은 열 평 정도로 부엌이 훤히 보이는 구조였고, 식탁 네댓 개와 책상 다리로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밥상 두 개가 있는, 시멘트로 만든 무릎높이의 툇마루 같은 공간이 있는 곳이었다. 열댓 명 나오는 연극에 스탭과 선배 몇 명이라도 오면 식당은 앉을 자리가 없이 빽빽해지고 금방 왁자지껄해지면서 담배연기로 자욱해졌다. 겨울엔 식당 유리벽에 뿌옇게 김이 서려서 거대한 스노우볼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우린 매일 이모가 만들어준 부대찌개에 밥을 먹고 술을 마셨고, 찌개에 건더기가 사라지고 국물만 간당간당해지면 이모는 어묵이랑 햄 같은 것들을 넣고 다시 한 번 안주용 찌개를 끓여 주셨다. 2차로 옮길 때 즈음에는 우린 일종의 의식처럼 바닥에 내려놓은 소주병을 식탁 위로 올려놨는데 그건 이모가 식탁 위에 놓인 술병들만 눈으로 휘리릭 보고 대충 계산을 하셨기 때문이다. 여름엔 복날이 되면 기획단의 특별주문으로 삼십 그릇 넘는 삼계탕을 끓여주셨다. 원래 혼자서 장사를 하시지만 그날엔 연합통신 기자였던 아들 내외와 두 딸이 일손을 보탰다.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이모가 그토록 80년대 초반에 들어온 연극반 선배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대한 이유 중에 하나는 동년배의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가끔 아내랑 같이 일성식당에 밥을 먹으러도 갔기 때문에 이모는 아내를 알았고 내 결혼식에도 축하해주러 오셨다. 신혼 때 잠깐 일산에 살 때 당신이 다니던 교회로 우리 부부를 전도하셨다. 어쩌면 진짜 이모는 아니었지만 내겐 그 보다 더한 이모, 어쩌면 그 시절의 연극반 사람들에겐 모두 그랬는 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연극반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이모로 각인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일성식당 이모.
삼십 년도 더 지난 지금 우린 고작 네 명이서 저녁을 먹으며 술을 마시고 있다, 이모가 끓여준 부대찌개가 아니라 직화 쭈꾸미 비빔밥과 수육을 안주로. 그나마 낙근과 성복은 원래 술을 잘 마시도 않고 은하는 맥주만 마셨기 때문에 소주는 고스란히 내 차지가 됐다. 그래도 그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우리의 밑도 끝도 없는 수다 속에 여전히 연극과 연기가 있다는 것. 그걸 잘 하고 싶어한다는 것, 왜 그러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