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아닌데(21)

졸업생 공연일지

by 생각의 변화

0207 연기의 신


수요일 줌 리딩은 은하가 목 컨디션이 안 좋다는 얘기로 시작했다. 조짐이 안 좋다. 아니나 다를까 첫 장면부터 꼬인다. 조련사 목소리는 안 들리고 지나치게 가라앉아 있다. 지난 주와 전혀 다른 조련사가 등장한 느낌이다. 나 또한 은하가 이후에 단톡방에 올렸던 것처럼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전까지 만들었던 조련사 캐릭터에 대한 저항(반항이란 단어를 좀 순화시켜서)이거나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조련사를 만드는 과도기이거나. 후자와 비슷한 얘기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의 지적 사항과 본인이 만드는 게 뒤죽박죽이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선규도 첫 장면이 끝나고 컨디션에 문제가 있는지 물었고 줌 리딩이 끝나서 마자 낙근과 나는 여러 가지 원인을 염두에 두고 걱정스런 통화를 했다. 결국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날의 리딩을 듣고 걱정했던 것이다. 결국 성복에게 전화를 했다. 정리하면 은하가 말한 뚝딱거림을 위한 새로운 시도로 단조로운 톤으로 대사하기를 시도했는데 연습이 덜 된 상태인 데다가 마이크 상태도 안 좋아서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리딩이 됐다는 것이다.


은하는 마이크를 바꿔보라고 했고, 그러고 보니 그날 은하는 목 컨디션이 안 좋았음에도 유난히 또랑또랑하게 잘 들렸다. 나는 연기를 만들 때 지적 사항을 개선하는 건 좋지만 기존에 만들었던 걸 완전히 부숴서 새로운 걸 만들기 보다는 차근차근 조심스럽게 하나씩 쌓아 올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실 나는 지적 사항 외에는 모두 괜찮다는 걸 전제로 연기를 수정하는 편이다. 너무 많은 걸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복은 만들어 놓은 캐릭터랄 게 없다고 했지만 배역이란 게 음악이나 미술처럼 어떤 완성품이 짜잔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라 무대 밖에 있는 ‘자연인’이 아닌 무대 안에 있는 ‘누군가’가 되는 순간 그게 바로 캐릭터가 되는 것이다. 비록 완성된 게 아니라 할지라도.


의사: 꿈은 선생님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거울이니까요.


선규는 자신의 예지몽 때문에 소름 돋을 때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 더. 무대에 올라가서 대사를 잊어버리는 꿈을 많이 꾸는데 깨고 일어나면 여지없이 이상한 자세로 찌그러져 자고 있다고. 아무래도 자신의 꿈은 ‘마음’이 아니라 ‘몸’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고.

연습 하루 전날인 금요일에 은하가 단톡방에 자신의 꿈 얘기를 올렸다.

“꿈속에서 제가 ‘연기의 신’처럼 추앙받았고, 다른 사람들을 연기 지도도 하고 잘난 척을 잔뜩 했죠. 그런데 막상 무대에 올라갔는데 목소리가 잔뜩 쉬어서 소리가 안 나오는 거예요. 저는 당황해서 대사도 까먹고, 그렇게 완전 망.했.죠. 무대에서 내려왔는데 너무너무 창피한 거죠. 사람들의 어정쩡하고 실망한 듯한 시선이 막 느껴지면서 괴로웠는데, 저 혼자서 ‘괜찮아, 실수를 통해서 배우면 돼’ 이러면서 정신 승리를 하는 중에 깨어났어요”


아무래도 의사의 말과는 달리 꿈은 마음이 아닌 몸의 상태를 대변해 주는 거울인가 보다. 은하는 현재의 목 상태로는 토요일 연습을 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낙근은 당직이어서 못 오고 은하는 목 상태가 좋지 않아서 못하니 결국 남는 건 넷이다. 아뿔싸, 토요일 당일 준용이 눈을 나뭇가지에 찔려서 연습에 참가하지 못한다고 연락이 왔다. 결국 남은 건 연출, 조련사, 형사. 우리가 해야 할 장면이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의사가 퇴장한 후에 형사가 조련사를 취조하는 장면을 연습한다. 선규는 조련사의 표정과 동작들을 꼼꼼하게 제시하고 수정한다. 리딩할 때는 대사를 다 외운 것 같았는데 막상 블로킹을 그으면서 중간중간에 끊고 움직이면서 하니까 나도 대사를 버벅거린다. 성복은 윤상화 배우보다 훨씬 체격이 크기 때문에 좀 다른 동선으로 접근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선규가 제시한 동선들은 청우극에서 보았던 재빠르고 민첩한 동선은 아니지만 성복에게 비교적 잘 맞는 것 같다. 성복하고 통화를 하고 난 후에도 조금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막상 장면연습을 하면서 보니 그날 성복이 내게 해준 얘기가 전부였던 것 같다. 리딩할 때보다 훨씬 좋아졌고 덩달아 형사도 조금 좋아진 느낌이다. 조련사-형사 장면을 한 번 다 긋고 나니 세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다시 장면 처음부터 끝까지 돌린다. 중간에 동선이 기억이 안 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오늘의 분량을 끝낸다.


밖으로 나와 지하철 역을 향해 걷다가 우린 토요일 연습의 하이라이트를 수다로 마무리하기 위해 치킨집에 들어간다. 생맥주 세 잔과 반반 치킨 한 마리 그리고 소주 한 병. 그리고 한 병 더 추가.

“나는 사실 대사를 잊어버리는 꿈을 꾼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 최근에야 그 이유를 알았어. 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대사를 너무 잘 외우기 때문인가 봐.” 내가 말한다. 반만 남은 생맥주잔에 소주를 조금 섞는다.

“형은 작업 기억력이 좋은가 봐요.” 성복이 말한다.

내가 반복적으로 꾸는 꿈에 대해서 얘기해줬다. 디테일이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기본적인 패턴은 비슷하다. 하나를 예로 들자면, 가족들과 여행을 간다. 저녁이 돼서 밥을 먹으러 방을 나왔는데 로비에서 지갑을 두고 나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시 방으로 돌아간다. 근데 웬걸. 방을 찾지 못한다. 이 복도 저 복도를 헤매다가 내가 방 열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시 열쇠를 받기 위해 로비로 가는데 또다시 헤매고. 결국 계속 헤매다가 깬다.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어딘가로 가려고 하지만 카프카의 <성>의 주인공 K처럼 밑도 끝도 없이 헤매다가 결국엔 그곳에 도달하지 못한다.

선규는 당분간 오늘처럼 ICU(집중 지도라는 의미에서) 프로그램으로 연습을 진행할 거라고 했다. 연출과 조련사를 제외한 모든 배우들이 조금씩 쉴 수 있고 자신이 나오는 장면을 집중적으로 연습하니 효율면에서도 좋을 것 같았다.


일요일에는 몇 가지 개인적인 일정이 있었다. 공모전에 낸 수필이 장려상을 받게 돼 시상식에 참석했다. 행사 시간이 두 시간 정도였는데 사회자가 수상자 한 명씩 무대로 불러 개인 인터뷰를 했다. 원래도 무대 울렁증(연기를 하는 것과 그냥 자연인으로 얘기하는 건 완전히 다르다)이 있어서 많이 떠는 편인데 단상에 올라가 사회자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내가 질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조금 쉬었다가 외박 나온 큰아이를 부대에 데려다주기 위해 다시 운전을 했다. 가는 동안 차 안에서 큰 아이는 전역 후의 진로에 대해서 재잘재잘 얘기를 많이 했다. 의사라는 진로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던 나도 늘 불안했으니 전혀 다른 길을 가야 하는 큰 아이는 훨씬 더 불안할 것이다. 길을 몰라도 목적지를 알 수 없어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니까. 한 시간 정도 걸려서 부대 근처에 도착했고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가는 길에 동기 두 명을 태워서 부대 정문 앞에 내려줬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오늘 시상식에서 인터뷰하면서 횡설수설한 얘기를 하다가 문득 묘하게도 당시의 아쉬움과 혼란스러움이 내가 시도 때도 없이 꾸는 꿈속에서의 느낌과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조차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내용을 횡설수설하고 있는 내 모습이 길을 잃고 호텔 복도를 헤매고 있는 꿈속의 내 모습이라는 걸. 말 속에서도 삶 속에서도 길을 잃을 수 있구나. 중의적인 의미군. 요즘은 그런 꿈을 잘 꾸진 않는데 그건 길을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뜻일까.


선규는 향후 연습계획을 발표했다. 은하는 두 주 연속으로 연습을 쉬게 됐다. 갑자기 ‘연기의 신’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은하의 꿈의 결말은 표면적으로는 무대에서 대사를 까먹으면서 공연을 망치는 당황스러운 내용이었지만 결국 공연을 할 수 없었다는 게 결론이다. 그러니 연기의 신의 ‘연기(演技)’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다음으로 연기(延期) 될 수밖에. 어라, 그 ‘연기’가 그 ‘연기’였어? 꿈은 선생님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거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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