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일지
0321 꿈의 서막
낮 기온이 영상 15도를 넘으며 산수유, 개나리, 목련이 피었다. 이제 진짜 봄인가 보다. 토요일은 첫 장면부터 돌리기로 했다. 저번 주에 적당한 크기의 책상을 주문해서 교회에 보관했다. 교회의 소예배실의 크기를 쟀더니 실제 무대보다는 조금 작았다. 준용이 아파트 안에 음악연습실을 사용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책상과 의자를 보관하는 것이 불편하고 딱히 넓은 장소도 아니었다. 연습장소가 두 곳인 것까지는 괜찮지만 세 곳을 돌아다니면서 연습을 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책상을 들고 다니면서. 비록 교회 소예배실이 무대보다는 조금 작지만 여러 면에서 괜찮은 편이었다. 일찍 도착한 사람들이 소예배실의 테이블과 의자를 정리해서 적당한 크기의 면적을 확보하고 가운데에 테이블을 위치시켰다. 낙근은 삼각대를 가지고 와서 폰으로 녹화를 했다. 낙근은 전체적으로 톤이 안정적이고 동작이 안정되고 딱딱 맞춘 느낌이 들었다. 연출은 성복이 감정이 조금 과하고 동작이 커서 조금씩 줄이는 게 좋겠다고 했다. 형사는 전체적으로 피치가 조금 높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은하가 얘기했던 ‘아줌마쪼’가 아무래도 높은 피치때문인 듯) 이상하게도 조정이 잘 되지 않았다. 소품이 많아서 장면이 진행될수록 테이블 위에 형사의 소품들만 점점 쌓여가는 기분이 들었다. 신문, 종이컵, 담배, 라이터, 노트북, 밧줄, 서류봉투까지. 소품이 너무 쌓여간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면서 높은 피치가 조정이 안 되면서 점점 더 집중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피로가.
동료가 등장한 장면에서 조련사의 바지가 벗겨지는 장면은 여러 번 연습했지만 자연스럽게 만들기 어려웠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봤지만 모두 어색하거나 실패했다. <마트로시카>에서는 어떻게 벗겼더라? 너무 억지로 벗기는 티가 나는 것보다는 차라리 없는 게 나은데…… 문제는 코미디를 만들기로 했으면 웃음 포인트를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 어쨌거나 살려보는 쪽으로 해야 하지만 정확한 타이밍은 다음 기회로. 동료 장면 즈음에 꽃무늬 찬합통을 넣은 큰 에코백을 멘 은하가 도착했다. 마스크를 쓰고 목이 잔뜩 쉰 상태로. 감기도 걸리고 진료도 보느라 목이 쉰 거라고 했다. 오늘 엄마 조련사 장면은 자연스럽게 휴점. 동료 장면에 이어서 의사 김남근(배역의 이름)과 조련사 송우빈(성복이 만든 이름)의 해괴한 브로맨스. 코끼리에게 멍든 상처와 코끼리에 대한 사랑을 마조히즘과 트라우마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김남근의 희한한 뇌구조가 만들어낸 마조히즘 장면은 오늘 연습의 하이라이트였다. 보고 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니 낙근과 성복은 더 신이 나서 장면을 잘 살렸다. 코미디에서는 확실히 관객의 반응이 중요하다. 그러니 어떻게든 바지 벗기는 장면도 살려봐야 한다. 7시 30분 정도가 됐을 즈음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야 했지만 은하의 목상태 때문에 어머니-조련사 장면은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연습 종료.
기획인 세광을 포함한 7명의 처음으로 모인 날이어서 우린 기념 촬영을 한 후에 근처에서 뒷풀이를 하기로 했다. 원래는 뒷풀이를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다른 연극반 사람들에게 홍보를 하고 후원을 받을까와 같은 실무적인 이야기들을 해보려고 했지만 그러기엔 장소가 시끄러웠다. 준용은 교회 주차장에서 은하가 그만둬도 괜찮겠냐고 말한 게 못내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전에 대학로 극장을 보고 내려오던 길에도 할 일이 너무 많다며 지금 그만두면 안 될까, 라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두 번 정도 같은 내용을 얘기한 걸 보면 백퍼센트 농담은 아닌 것 같다. 성복이 일주일에 한 번 연습하는 걸 기준으로 28번 정도의 연습이 남았다고 했다. 그중 한 번이 끝났다. 남은 27번의 연습 동안 만족할 만한 수준에 오를 수 있을까. 괜히 덩달아 불안하다. 그래도 여기서 그만두면 안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