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아닌데(28-1)

연습일지

by 생각의 변화

0328 첫 런쓰루


구상하고 있는 글에 참고가 될까 해서 마리아 칼라스 평전을 읽고 있는 중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디바 마리아 칼라스는 어린 시절 두 가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비만과 지독한 근시. 마리아는 1953년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을 본 후로 매력적인 몸매를 갖기 위해 30킬로그람을 감량했다. 그녀는 천부적인 목소리를 가진 소프라노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연습 벌레이기도 했는데 지독한 근시로 안경을 쓰지 않은 상태에서는 무대 위에서는 장님에 가까웠다고 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콘택트렌즈의 기술 수준이 낮아서 장시간 끼고 있으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다. 마리아는 연기하는 중에 무대장치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피나는 연습을 통해서 발걸음 수를 외웠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오페라 가수의 연습 과정도 배우와 비슷하다.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성격을 분석하고 가사를 외우고 동선을 몸에 익힌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런 과정이 없이는 다른 인물의 삶을 산다는 건, 그리고 관객들을 감동시킨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연극반 졸업생 단톡방에 OB공연에 관한 공지가 오면서 우리의 공연은 이제 완전한 현실이 됐다. 불안한 사람이 은하만은 아닌 것 같다. 불안이 전염병인가? 준용은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바빠서 공연에 도움이 안 될 것 같다면서 늦기 전에 새로운 배우를 뽑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여러 사람의 설득과 만류로 준용의 탈퇴 선언은 일단락됐다. 어쨌거나 공연이 공식화되면서 즐겁고 설레는 동시에 부담스럽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은하와 준용도 낙근과 성복도 그리고 물론 나도. 낙근은 원래 계획은 이렇게 시끌벅적하게 하는 건 아니었다는 얘기를 한다. 약속은 깨지라고 계획은 바뀌라고 그리고 진실은 왜곡되라고 존재하는 것. 다시 얘기하지만 계획은 계획일뿐. 계획대로 되지 않을 거라는 계획만이 지금까지 지켜진 우리 연극의 유일한 계획이다.


저번 주 블로킹 이후로 느낀 바가 있어서 매일 연습 루틴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무대에서 형사-조련사 장면을 하고 있는 어떤 순간부터 “아! 이 장면 무지 기네” 하는 생각(일종의 메타인지?)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대에 올라가 있는 배우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이니 만약 실제 공연이라면 관객들은 ‘대체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그날 형-조 장면이 만들어낸 지루함의 가장 큰 원인은 ‘거리’였다. 형사와 조련사 사이에 의자를 하나 둔 채 말만 주고 받으니 형사가 조련사를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마치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미친 듯이 짖기만 하는 개들처럼 전혀 긴장감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유리벽을 사이에 둔 상태에서는 아무리 미친 듯이 짖어대고 으르렁거려도 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배우도 연출도 관객도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긴장이란 게 있을 리 만무하다. 형사와 조련사 사이에 있는 유리벽은 바로 의자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단순하다. 유리벽을 제거하는 것. 결국 형사가 위협적으로 취조하기 위해서는 ‘옆 옆’의 의자가 아닌 바로 ‘옆’ 의자에서 손가락으로 찌르고 헤드락을 하고 등짝 스매싱을 날려야 하는 것이다.


일요일 집에서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식탁 의자에 베개를 세워놓고 조련사라고 상상하면서 블로킹을 짰다. 그나마 다행인 건 조련사와 형사 둘만의 장면이고 조련사는 형사의 움직임에 의해서 동선이 결정되기 때문에 같이 상의하고 짜야 할 부분이 그리 많지 않다. 일요일 낮에 짰던 블로킹을 월요일 점심 시간에 진료실에서 다시 해 본다. 가물가물. 다시 화요일도 반복. 목요일 정도 됐을 때는 어느 정도 블로킹이 몸에 익는다. 몇 군데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왠지 전보다 나아진 것 같다. 금요일에 성복에게 몇 가지 고친 동선을 알려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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