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만 멜빌 : 모비 딕
19세기 미국의 소설가 허만 멜빌(Herman Melville)의 ‘모비 딕’(Moby Dick)은 1851년 출간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 흰 고래를 뜻하는 ‘백경’(白鯨)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기도 하였다. 작가의 생애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20세기에 들어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나 D. H. 로렌스(D. H. Lawrence) 등의 찬사를 받으며 위대한 미국 소설 가운데 하나로 알려지게 된다.
소설은 포경선 피쿼드 호(號)의 선원인 이스마엘(Ishmael)의 회상으로 서술된다. 배의 선장 에이허브(Ahab)는 여러 해 전 고래잡이에 나섰다가 흰 고래(모비 딕)에 의해 다리가 절단되는 불운을 겪고 모비 딕을 잡고자 하는 강박적인 심리에 빠지게 된다. 그는 모비딕을 찾아 바다를 헤매다가 마침내 거대한 그 고래와 마주친다. 대서양에서 희망봉을 돌아 태평양까지 이어지는 항해 끝에 마침내 등에 수많은 작살이 꽂힌 거대한 고래 모비 딕이 마치 인간들의 욕망과 증오를 비웃기라도 하듯 수면 위로 등장한 것이다. 3일간의 대 격투. 에이허브와 모비 딕의 대결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과 집착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잔인한 바다는 에이허브의 증오와 강박을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아들이고 만다. 결국 마지막 싸움에서 에이허브는 모비 딕에게 던진 작살의 밧줄이 목에 감기며 검푸른 바다의 심연으로 추락한다. 이어 성난 모비 딕이 배를 들이받아 박살을 내고 화자인 이스마엘만이 기적적으로 구조되어 그 모든 비극을 기록한다.
에이허브는 모비 딕을 향해 이렇게 증오에 찬 외침을 던진다.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되지 않는 흰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 한 복판에서 너를 찔러 죽이고, 증오에 가득한 내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뱉어주마.”
문학 속에 드러나는 다양한 갈등의 양상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자연과의 갈등이다. 가공할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은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한낱 갈대에 지나지 않는 것.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자연에 대한 끝없는 도전의 역사였다. 그리고 문학은 그러한 인간의 정신을 때론 무의미한 것으로, 때론 고귀한 용기로 담아내고 있다. 가장 오래된 영시 ‘베오울프’(Beowulf)와 괴물 그렌델(Grendel). 에이허브와 모비 딕 그리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의 산티아고(Santiago) 노인과 거친 바다... 문학은 인간의 도전과 그 비극적인 결말을 끊임없이 그려낸다.
영문학 사가(史家) 윌리엄 J. 롱(William J. Long)은 자신의 영문학사 서문에서 문학은 결코 헛된 사변(思辨)이 아니라 지극히 실용적인(practical)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문학 속에 그려진 자연과의 투쟁, 그것이 과학정신의 원천이며 오늘의 문명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문학은 픽션(허구)을 통해 현실을 그려내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 허구의 세상은 관념에 의한 것이 아니고 오랜 인간의 경험을 통해 구축된 것이다. 따라서 문학이 그려내는 구체적인 사실들은 삶과 인간에 대한 보편적 서술이며, 또한 현재와 미래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다.
인간은 가늠할 수 없는 자연의 재앙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하나에도 공포에 떨지만 인간은 또다시 살아남을 것이다. 이길 수 없는 힘과 대적해 죽음으로써 도전과 생존의 가치를 입증한 문학 속 무수한 인물들에 의해 고취된 정신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에이허브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확고한 목적을 향한 길에는 쇠로 만든 레일이 깔려있지. 그 레일을 타고 내 영혼이 달려가는 것이라네.“
“흉내 내는 것에 성공하느니 새로운 것에 실패하는 것이 낫다. 실패해보지 않은 사람은 위대해질 수 없다.“(허만 멜빌)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인간은 자연을 마주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자 노력해왔다. 그것이 어떤 모습의 결과로 남을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문학이 인간의 끝없는 도전을 중단 없이 기록해왔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