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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살리기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by 최용훈

증오 범죄(hate crime)는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알 수 없는 무언가로 인해 상대에 대한 증오심이 끓어올라 폭력과 박해를 가하는 행위이다. 유엔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가장 상위에 있는 것이 성 정체성과 관련된 범죄이다. 동성애자에 대한 막연한 분노와 혐오의 감정이 폭력적인 범죄로 이어지는 것이다. 두 번째는 종교. 사실 서양의 역사는 기독교와 이교(異敎), 특히 이슬람교와의 갈등의 역사이다. 십자군 원정에서 현대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의한 테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쟁을 치러왔고,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세 번째가 인종의 차이이다. 오늘날 가장 민주적인 국가로 알려진 미국에서 조차 여전히 백인들에 의한 유색인종들에 대한 차별과 박해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 역사의 초기에 흑인들에 대해 ‘린치’(lynch)라 불리던 사형(私刑)이 가해졌다. 범죄 혐의도 없이 개인적인 감정에 좌우되었던 타 인종에 대한 분노와 경멸, 그것은 가장 반 인간적 행위였다. 린치가 있는 날에는 사람들이 피크닉을 가듯 먹을 것을 준비해 구경을 가고 죽은 자의 신체 일부를 기념품처럼 나눠 갖기도 했다 하니 과연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히틀러에 의해 ‘인종 청소’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유대인들에 대한 극악한 범죄 역시 마찬가지이다. 피부색에 의해, 다른 문화와 전통에 대한 반감에 의해 저질러진 반 인륜적 행태는 현대에 와서 달라진 점이 있는가?


서양의 문학은 백인 중심의 사고방식이 강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교와 다른 민족에 대한 경시와 조롱이 그 바탕에 깔려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였다. 의심과 질투로 아내를 죽인 ‘오셀로’는 흑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학적 태도는 문학 스스로의 정화 작용에 의해 인종 차별에 대한 문학적, 사회적 비판으로 이어진다. 미국 사회에서 벌어진 흑인에 대한 차별에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했던 작품이 미국의 여성 소설가 하퍼 리(Harper Lee, 1926~2016)가 쓴 ‘앵무새 죽이기’(Killing a Mockingbird, 1960)였다. 1961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던 이 작품은 미국의 남부에서 벌어지던 인종주의와 편견에 대한 한 소녀의 각성(覺性)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품의 배경은 대공황 시절 앨라배마 주 메이콤(Maycomb)이라는 가상의 마을이다. 어린 소녀 스카우트(Scout)는 홀아버지 애티커스 핀치(Atticus Finch) 밑에서 오빠 젬(Jem)과 함께 자라난다. 아버지는 뛰어난 변호사로 늘 아이들에게 동정심과 공정함을 잃지 않도록 가르쳤다. 그는 ‘앵무새를 죽이는 일은 죄‘라고 말한다. 무고하고 해가 되지 않는 대상에 대한 폭력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임을 암시하는 말이었다. 핀치 변호사는 마을에서 톰 로빈슨이라는 흑인이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자 마을 주민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를 변호하기로 결정한다. 폭도들로 변한 백인들이 톰을 린치 하려 할 때 핀치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지켜내기도 한다. 핀치 변호사는 합리적인 변론을 통해 피해자의 아버지가 그녀를 강간했다는 사실을 주장하지만 결국 톰은 유죄 판결을 받는다. 그리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죽임을 당한다. 작품 속의 한 인물은 그의 죽음을 ’노래하는 새를 무참히 죽이는 일‘과 비교한다. 작품의 제목인 ’앵무새 죽이기‘에 비유된 표현이다.


한편 핀치의 두 아이는 이웃에 살며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부 래들리(Boo Radley)라는 남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어른들의 비인간적인 행태를 보며 그 수상한 이웃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된다. 하지만 핀치는 그러한 아이들을 꾸짖고 보다 공정한 태도를 가질 것을 가르친다. 부 래들리는 사실 드러나지 않게 선행을 베풀던 인물이었고, 강간 피해자의 아버지인 밥 이웰(Bob Ewell)이 핀치 변호사에 대한 반감으로 그의 아이들을 공격하자 그들을 지키려다 결국 이웰을 살해하게 된다. 하지만 보안관 헥크 테이트(Heck Tate)는 이웰이 자신의 칼에 넘어져 죽은 것으로 증언함으로써 래들리의 살인을 감춘다. 스카우트는 그런 모습을 보며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앵무새를 쏘아 죽이는 일’ 일 것이라 말한다. 아이의 눈에도 부 래들리의 행위는 옳은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증오는 모든 가치를 소멸시키는 감정이다. 증오심 앞에서는 사랑도 우정도 가족 간의 유대도 빛을 잃기 때문이다. 인종에 관한 편견과 차별을 넘어 우리는 이유 없는, 혹은 자기중심적인 증오심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주변에 힘없이 쓰러져 가는 앵무새들을 더 이상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증오는 옳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위험한 칼이고 총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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