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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의 유아 살해

by 최용훈

언론에 의해 빈번히 보도되고 있는 유아에 대한 학대, 살인 행위는 법을 떠나 인륜과 천륜에 반하는 끔찍한 죄악이다. 자신이 잉태해 낳은 아이를 부모가 되어 어찌 거리에 버리고, 제 손으로 죽일 수 있는가. 하지만 인간 사회에는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수많은 행위들이 저질러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과연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 희곡작가 에우리피데스가 쓴 ‘메데이아’(Medeia)에서는 자신을 배신한 남편에 대한 복수로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이를 죽여 남편에게 보내는 엽기적인 살인이 저질러지고 있다. 그 이래 유아 살해라는 끔찍하고 자극적인 주제가 후대의 문학에 반복되어 온 것이다. 영미 문학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중 잘 알려진 몇 편을 소개한다.


1. 조지 엘리엇-아담 비드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이다. 그녀는 당대의 여성 작가들에 대한 편견을 피하기 위해 ‘조지’라는 남성의 이름을 필명으로 선택한 하였다. 그녀의 두 번째 장편소설 ‘아담 비드’(Adam Bede, 1859)는 18세기 말, 신분의 상승과 부를 추구했던 한 젊은 여성의 원치 않는 임신과 그로 인해 태어난 아이에 대한 유기(遺棄)를 다루고 있다. 순진하고 어리석은 시골 소녀 헤티 소렐(Hetty Sorrel)은 자신의 외모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에 사로 잡혀 있었고 결국 귀족 남성의 유혹에 빠져 아이를 임신하지만 곧 그에 의해 버려진다. 사회의 비난과 조롱에 두려움을 느낀 그녀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숲에 버려 죽게 한다. 방종하고 기만적인 삶의 결과로 인한 임신과 사회적 비난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말라버린 모성에 의해 초래되는 아이의 죽음은 시대를 격해 오늘날에도 흔히 벌어지고 있는 사악하고 어리석은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 유진 오닐-느릅나무 밑의 욕망


20세기 미국의 희곡 작가이자 노벨상 수상자였던 유진 오닐의 ‘느릅나무 밑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 1924)에서도 어머니에 의한 신생아 살인이 벌어진다. 1850년 뉴잉글랜드의 한 농장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는 인색하고 잔인한 아버지 이프라임 캐보트(Ephraim Cabot)가 등장한다. 두 번의 상처로 인해 홀로 된 그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하지만 첫째와 둘째는 농장 생활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자 금광을 캐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캐보트가 셋째 부인으로 젊은 여인 애비(Abbie)를 집으로 데려온 직후였다. 셋째 아들 에벤은 형들이 떠난 농장을 물려받을 욕심으로 집에 남는다. 하지만 그의 계획이 새어머니의 등장으로 틀어지자 그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사랑을 배신한 아버지에게 복수할 계획을 꾸민다. 그리고 마침내 새어머니 애비를 유혹해 그녀를 임신시킨다. 아이를 통해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을 속셈이었다. 한편 애비도 역시 에벤을 유혹해 아이를 갖게 되면 그 아이가 캐보트의 정식 상속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에벤은 애비와의 관계 속에서 연인의 정염과 어머니의 사랑 그리고 물질적인 탐욕을 모두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에벤은 애비의 자신에 대한 사랑이 유산을 노린 거짓임을 깨닫게 된다. 반면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남편의 아들 에벤을 사랑하게 된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진실한 것이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이 갓난쟁이를 베개로 눌러 질식시키고 만다. 빗나간 사랑과 탐욕이 초래한 유아 살해의 한 전형이다.


3. 에드워드 올비-아메리칸드림


미국의 극작가인 에드워드 올비(Edward Albee)는 흔히 ‘부조리 극작가’라 불린다. 그의 연극은 대다수 부조리 문학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불확실한 세상을 표류하는 인간의 불안을 묘사한다. 올비는 한 때 그 불안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살아가는 동안 어느 정도의 실존적 불안을 겪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멍청한 야만인이거나 전혀 느낌을 지니지 못한 무감각한 사람이다.”


그의 첫 단막극이었던 ‘아메리칸드림’(American Dream, 1961)은 뉴욕에서 초연되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부부 ‘마미’(Mommy)와 ‘대디’(Daddy)는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으나 그들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어떤 애정이나 관심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 번째 등장인물은 ‘그랜마’(Grandma)로 부부와 함께 살고 있다. 그녀는 부부 중 어느 한 사람의 어머니이지만 자신의 밥값을 하기 위해 하인처럼 집안일을 돌보아야 했다. 작품의 후반부 대부분은 부부가 아이를 입양하는 문제에 할애되고 있다.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그랜마’가 입양 단체의 대표 바커 부인(Mrs Barker)에게 말하는 형식으로 전달되는데 결국 부부는 입양한 아이가 자신들의 아들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이를 학대하고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한다. 입양아에 대한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후 한 아름다운 젊은이가 부부의 아파트를 방문하는데 ‘그랜마’는 그를 ‘아메리칸드림’이라고 부른다. 블랙코미디 형식의 이 극은 유아 살해의 또 다른 전형을 보여줌으로써 물질과 탐욕에 빠져 사랑과 배려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모습, 미국 사회의 가치였던 ‘아메리칸드림’의 허상과 그 허망함을 드러내고 있다.


4. 샘 셰퍼드 : 매장된 아이


미국의 전위 연극의 기수였던 샘 셰퍼드(Sam Shepard)는 미국의 옛 서부와 로큰롤, 마약, TV로 대표되는 대중문화 그리고 기이한 가족문제들을 결합시킨 독특한 연극 장르를 개척한 작가이다. 그는 미국 사회의 도덕적 정신적 황폐함을 그려내어 미국의 관객들을 충격에 빠뜨리곤 하였다. 그의 희곡 ‘매장된 아이’(Buried Child, 1978)는 셰퍼드의 극 가운데 가장 강력한 파급력을 가졌던 작품이었다. 인간의 모든 법과 규범을 파괴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희곡은 다지(Dodge), 할리(Halie), 틸덴(Tilden), 브래들리(Bradley)라는 가족 구성원들의 심리와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한 살인의 희생자이거나 공모자들이었다.


무기력해진 가장(家長)의 전형인 ‘다지’는 자신의 아내가 아들인 ‘틸덴’과의 근친상간을 통해 임신을 하게 됨으로써 남성성을 상실한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에 의해 가족 내에서의 모든 권위와 위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좌절한 ‘다지‘는 가족 관계의 파괴를 상징하는 아이를 살해한다. 하지만 장남인 ’틸덴‘의 행위와 아내의 성적 욕구를 억제할 수 없는 자신의 무기력을 깨닫게 되자 스스로를 집이라는 감옥에 가두고 만다. 다른 아들인 ’브래들리‘는 원래 ’다지‘의 관심 밖 존재였고 실제로는 그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한 아이, 이미 죽어버린 그 아이를 ’매장된 아이‘라 부른다.


어떤 의미에서는 병적이고 동시에 관념적이기도 한 이러한 가족 관계는 현대의 파괴된 가정에 대한 우화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무너진 가족이 품고 있는 그 은밀한 비밀은 가족이라는 테두리와 바깥의 세계 사이에 완강하게 세워진 불통(不通)의 벽이 된다. 이 작품 속 아이의 죽음은 현대적 의미에서의 ‘범죄’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로 일어나는 수많은 패륜의 범죄들이 바로 가정 내부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5. 토니 모리슨 : 비러브드


미국의 흑인 여성 작가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은 여성 인물들을 그려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왔다. 그녀의 소설들은 여성들 간의 유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흑인 문학의 흐름에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비러브드’(Beloved, 1987)는 모리슨의 가장 감각적인 소설로 알려져 있다. 노예시대의 잊힌 과거와 흑인들의 페이소스가 진하게 담긴 이 소설 에서는 ‘세데’(Sethe)라는 이름의 여성 흑인 노예의 슬픈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녀는 노예제도의 공포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딸을 죽인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그녀는 한 농장에 노예로 끌려간 뒤 그곳에서 할레 석스(Halle Suggs)라는 흑인 노예와 결혼해 네 명의 자녀를 둔다. 하지만 그녀는 농장에서 백인들에 의해 지극히 비인간적인 취급을 당한다. 그녀는 잔인하게 채찍질을 당하고 심지어 백인들은 마치 젖소처럼 그녀의 가슴을 빨아대기도 하였다. 결국 농장을 탈출해 시어머니의 집으로 도망한 그녀는 집요한 백인 추적대에게 발각되고 그녀는 저항의 표시로 그녀의 딸을 살해한다. 그것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상황과 노예로서 그녀가 겪어야 했던 잔인성의 결과였던 것이다. 결국 백인들에게 붙잡힌 그녀는 7년 형을 선고받아 투옥되고 형기를 마친 뒤에도 사회로부터 격리된다. 이 소설은 도주 후 다시 노예로 끌려가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두 살 난 딸을 살해한 마가렛 가너(Margaret Garner)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기초로 한 것이었다. 아이를 양육하지 못할 만큼의 가난과 어려움에 닥쳐 어린 자식들을 죽이고 자기 스스로도 목숨을 끊는 현대의 가장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언제나 우리의 삶이 인륜을 저버린 죄악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의 생명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천부의 권리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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