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은 인간의 속성인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이브의 거역은 창조주에 대한 배신의 행위였다.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이 그랬고, 새벽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배신한 베드로, 은화 세 닢에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나서는 예수를 향해 금빛 도포를 휘날리며 그를 끌어안고 퍼붓던 키스, 유다의 키스는 배신의 영원한 징표가 되었다.
그렇게 배신은 문학 작품 속에 묘사된 수많은 비극과 몰락의 원인이 된다. 영국의 여성 작가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의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에 나오는 복수심에 불타는 잔혹한 히스클리프(Heathcliff)는 사랑했던 여인 캐서린(Catherine)의 오만과 배신에 의해 탄생한다.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의 주인공 개츠비 역시 가난하다는 이유로 자신을 버린 데이지(Daisy)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비극적인 몰락에 이른다. 조지 오웰(George Owell)의 ‘1984’에 등장하는 윈스턴(Winston)은 독재자의 위협과 폭력에 굴복해 사랑하는 여인 줄리아를 배신한다. 상선의 선원이었던 에드몽 당테스(Edmond Dantès)는 믿었던 친구들의 배신으로 부당하게 옥에 갇히고 갖은 고초 끝에 탈옥한 뒤 몬테크리스토 섬에 숨겨진 한 신부의 유산을 가로채 거부가 된다. 그리고 복수를 위해 알렉산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몬테크리스토 백작’(The Count of Monte Christo)으로 부활한다.
사실 문학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갈등’이다. 신과 인간,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나와 나 사이의 갈등이 없이는 어떠한 픽션도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 갈등의 핵심에는 늘 배신의 행위가 따르기 마련이다. 세상의 온갖 불의에 눈감는 신의 존재, 나약한 인간들에게 가해지는 잔인한 자연의 습격, 사회 속에서 빚어지는 수많은 배신의 관계들, 그리고 겉의 나와 속의 내가 벌이는 마음의 전쟁... 갈등은 어쩌면 배신의 또 다른 표현일지 모른다.
미국의 여류 소설가 폴라 맥클레인(Paula McLain)은 20세기 미국 문단을 대표한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사랑, 결혼, 이혼을 그린 ‘파리의 아내’(Paris Wife)에서 헤밍웨이와 그의 첫 아내 해들리 리처드슨(Hadley Richardson)의 빗나간 관계를 다큐멘터리처럼 풀어나간다. 해들리는 28세 때 여덟 살 연하인 20세의 헤밍웨이를 만난다. 그녀는 헤밍웨이의 자유분방한 이성 교제로 고통을 받고 있었고 특히 사교계의 명사였던 더프 트위스덴(Duff Twysden) 부인과 남편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를 의심한다. 그리고 마침내 더프가 헤밍웨이 첫 번째 베스트셀러 소설인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브렛 애쉴리(Brett Ashley)의 모델이었음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의 결혼은 헤밍웨이가 부인 해들리의 친구인 폴린 파이퍼(Pauline Pfeiffer)와 열애를 시작함으로써 파국을 맞는다. 60을 갓 넘긴 나이에 엽총을 입에 물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헤밍웨이의 젊은 날은 그렇듯 방종과 배신으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여성 시인이자 소설가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는 배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 비운의 작가이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영국 유학 시절 무명의 영국 시인 테드 휴즈(Ted Hughes)를 만난다. 그리고 만난 지 몇 달 만에 두 사람은 결혼한다. 1956년의 일이었다. 결혼 후 그녀는 영국의 신예 시인에 불과했던 남편을 미국 문단에 데뷔시키고, 남편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그녀는 생계와 자녀의 양육, 집안일까지 모두 도맡을 수 밖에 없었고, 작가로서의 자신의 세계는 점점 닫혀가는 것을 느끼고 갈등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남편이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그와 별거에 들어간 얼마 후 그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부엌에 있던 오븐 속에 머리를 집어넣은 채 가스를 틀고,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 서른 살의 젊은 시인이자 두 아이의 엄마는 짧은 인생을 불꽃처럼 살다가 꺼져갔다. 그리고 파경이 원인이 되었던 남편 테드의 연인 아씨아 베빌 역시 그의 네 살 된 딸을 수면제로 재우고 실비아와 같은 방법으로 세상을 뜬다. 그녀는 실비아의 죽음에 따른 세간의 비난을 감수하며 살아야 했고, 심지어 실비아의 환영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테드가 또 다른 여자를 찾아가자 결국 더 이상 살아갈 힘을 잃고만 것이었다.
배신은 문학 작품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문학을 창조하는 작가들의 삶에도 배신은 어김없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디 작가들의 세상뿐이겠는가. 우리의 삶을 돌아보아도 배신의 그림자는 늘 우리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배신은 어쩌면 인간의 오랜 속성일지 모른다. 그래서 배신을 그리는 문학이 우리의 시선을 끄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