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함은 두 가지 감정에 의해 지배된다. 그중 하나는 ‘두려움’이다. 어떤 강력한 대상이나 압도적인 상황에 처해 두려움 속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다. 메리 셸리(Mary shelley)의 1818년도 소설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자신이 창조한 괴물 같은 생명체 앞에서 공포에 사로잡힌 채 달아나고 만다. 다른 하나는 ‘비열함’으로 이기심이나 탐욕, 증오심으로 야기되는 수치스러운 감정이다.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의 ‘로드 짐’(Lord Jim, 1899)에 등장하는 여객선 패트나(Patna)의 선장과 선원들은 침몰 직전의 선박에서 승객들 몰래 배를 탈출한다. 두려움과 함께 자신의 생명을 우선하는 비인간적인 ‘비열함’이다.
문학 속에는 ‘용기’라는 미덕과 함께 비겁한 겁쟁이들의 다양한 모습들이 그려지고 있다. 미국 자연주의 소설 가운데 대표작인 스티븐 크레인(Stephen Crane)의 ‘붉은 훈장’(The Red Badge of Courage, 1895)에서는 남북전쟁에 자원한 10대 소년 헨리 플레밍(Henry Flemming)이 등장한다. 그 소년병은 첫 번째 전투에서 두려움 속에 부대를 이탈한다. 숲으로 숨어든 그는 퇴각하던 아군에 의해 총으로 머리를 가격 당해 부상을 입는다. 하지만 부대로 복귀한 그는 다른 병사들로부터 그의 용맹함에 대한 찬사를 듣게 된다. 결국 그는 마지막 전투에서 부대의 깃발을 들고 용감하게 돌진한다. 헨리는 비겁한 병사였지만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감정 즉 무모한 공명심으로 무장한 또 다른 인간이 된다.
영국 작가 리 차일드(Lee Child)의 범죄 스릴러 시리즈인 ‘잭 리처’(Jack Reacher, 2022년 1월 현재 26권의 책과 단편 모음집이 출간되었으며 그중 몇 편은 영화화되기도 하였다)에는 거칠고 잔혹한 악당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한 때 군의 헌병 소령이었던 잭 리처에 의해 그들의 죄상이 드러났을 때 그들의 대부분은 무기력한 겁쟁이가 되어 처벌을 두려워한다. 사악한 인간일수록 자신들에게 가해질 고통스러운 대가에 대한 공포가 큰 것은 자신들이 용기와 원칙의 미덕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몬테크리스토 백작’(The Count of Monte Cristo, 1884)에서 죄 없는 에드몽 당테스를 무고했던 그의 친구들 역시 복수의 위협이 가해지자 공포에 사로잡힌다. ‘로빈 후드’(Robin Hood) 이야기에 나오는 ‘노팅엄의 보안관’(Sheriff of Nottingham)은 힘없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는 난폭한 권력자로 등장하지만 로빈 후드가 그의 재물을 훔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일련의 과정에서 나약한 비겁자의 모습을 보일 뿐이다.
영국의 여성 작가 조안 롤링(J. K. Rowling)의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Harry Porter and the Chamber of Secrets, 1998)에 등장하는 길더로이 록하트(Gilderoy Lockhart) 교수는 자신의 마법의 힘을 떠들고 다니지만 실상은 제대로 된 마법을 하나도 보여주지 못하는 위선자였다. 하지만 그는 ‘기억 소각’이라는 마법은 부릴 수 있어서 이름 없는 마법사들의 재능을 마치 자기의 것인 양 훔치고 그들의 기억을 사라지게 만들곤 하였다. 오늘날 타인의 창작물과 재능을 훔치는 많은 비열한들이 떠오른다. 또한 자신도 모르게 공공의 지식을 사용해 자신의 것인 양 자랑삼는 지식인들에게는 일종의 경종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았던 록하트는 해리 포터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인기란 건 물거품과도 같은 거란다. 한순간의 실수로 인기가 사라질 수 있어, 꼭 기억해 둬라." 그의 이 말은 비겁한 자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소설 속의 인물은 실제의 위험이 없는 상황에서도 비겁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여성 소설가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의 소설 ‘사일러스 매너’(Silas Marner, 1861)에 나오는 고드프리 카스(Godfrey Cass)는 천한 신분으로 태어난 아내 몰리 파렌(Molly Farren)과 자신의 딸 에피(Eppie)를 인정하지 않는 비열함을 보인다. 그 사실이 자신의 삶에 그 어떠한 위험도 초래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단지 자신의 체면만을 생각하여 비겁자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그는 자신의 편협함을 깨닫고 변화된다.
미국 작가 너세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주홍 글씨’(Scarlet Letter, 1850)에 나오는 딤즈데일(Arthur Dimmesdale) 목사도 사랑했던 여인 헤스터 프린(Hester Prynne)이 ‘간통’의 멍에를 쓰고 살아가는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끝내 그녀와의 관계를 밝히지 못하는 비겁함을 보인다. 또한 미국의 여성 소설가 이디스 워튼(Edith Wharton)의 ‘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 1920)에 등장하는 뉴랜드 아처(Newland Archer)는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엘렌 올렌스카(Ellen Olenska) 백작부인과의 새로운 삶보다는 무미건조한 메이 웰랜드(May Welland)와의 결혼 생활을 마지못해 유지한다. 그러한 그의 태도는 비겁함 보다는 가정에 대한 충실함으로 보아야 할까?
문학 속 비겁자들의 행태는 두려움이나 비열한 이기심 등으로 스스로 고통이나 파국을 초래하지만 새로운 깨달음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 비겁함은 우리의 내면에 자리한 나약함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동화작가 라이먼 프랭크 바움(L. Frank baum)의 소설 ‘오즈의 마법사’(The Wonderful Wizard of OZ, 1900)에 나오는 비겁한 사자처럼 우리는 자신의 강인함을 잊은 채 소심한 자기 보호의 본능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닐지. 그래서 문학 속 비겁자들의 모습에서 가끔은 작은 연민의 정을 느끼기도 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