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은 인간이 맞이하는 비극적 사고를 의미한다. 사실 지구의 역사는 빙하기라는 자연의 재해 이후 인류라는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과 새로운 진화의 과정을 겪어왔다. 자연재해는 종종 신의 분노라고 불리기도 한다. 종교적 측면에서 재난은 언제나 신의 뜻에 반하는 인간에 대한 처벌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의 재해에 더해 스스로 재난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전쟁, 화재, 선박 및 비행기 사고, 핵폭발 등 수없는 인재(人災)들이 사람의 생명을 위협해왔다. 재난은 갑작스럽게 찾아와 집단이나 사회의 기능을 파괴하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극복하지 못할 만큼의 개인적, 물질적, 경제적, 환경적 손실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해양 사고는 많은 문학 작품 속에 묘사되어 왔는데 지진이나 쓰나미, 화산 폭발이나 눈사태 등의 재해와는 달리 다소라도 생존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작가 호메로스의 대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항해 중에 여섯 차례에 걸쳐 바다에서의 재난에 직면한다. 12척의 배가 이타카를 향하고 있었지만 항해의 중간쯤에 이르러서는 오디세이만이 유일한 생존자가 된다. 그의 배들은 키코네(Cicones) 부근에서 폭풍우를 만나 항로를 이탈하고, 이후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잔혹한 자연의 힘에 굴복한 채 암초에 부딪혀 좌초하고 만다. 바닷길이 긴 여행의 유일한 수단이었던 시대에 거대한 폭풍으로 인한 재난은 필연과도 같은 것이었다.
폭풍우에 의한 재난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여러 희곡에서도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한다. 그의 ‘폭풍우’(The Tempest)에서 밀라노의 공작이었던 프로스페로는 동생 안토니오의 계략에 빠져 공작의 지위를 잃고 딸 미란다와 함께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무인도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마법의 힘을 이용해 거대한 폭풍우를 일으킨다. 그에 휩쓸려 배 한 척이 난파되고 그 배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파도에 휩쓸려 섬에 오게 된다. 그들은 프로스페로의 동생 안토니오와 그를 도와 프로스페로를 내쫓았던 나폴리의 왕 그리고 그의 아들 페르디난드 일행이었다. 비록 마법에 의한 것이었지만 재난은 강한 자와 약한 자, 왕과 평민을 구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법에 의해 모든 이들을 신의 섭리에 의해 용서하고 화해를 이끌어낸다. 마법에 의한 바다의 분노는 인간이 자연 앞에서, 신의 섭리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셰익스피어의 또 다른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선박의 난파가 극 전체의 구성을 이끌고 있다. 베니스의 부유한 상인 안토니오는 기독교인으로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경멸하고 비난하였다. 하지만 그의 친구 바사니오가 그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하자 친구를 위해 샤일록을 찾아간다. 그리고 친구의 보증인이 된다. 안토니오는 부자였지만 공교롭게도 그 당시 자신의 전 재산을 외국의 상품에 투자했었던 것이다. 그 상품들을 실은 배가 돌아오게 되면 그는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장에 친구를 도울 수 없었던 그는 샤일록의 이상한 제안을 수락하고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샤일록은 안토니오에게 제 날짜에 돈을 갚지 못할 경우 그의 몸에서 일 파운드의 살을 취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던 것이다. 불안한 가운데 돈을 빌렸지만 안토니오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배만 들어오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배만! 그러나 기다리던 배는 오지 않고 결국 상품을 싣고 오던 배들이 폭풍우를 만나 모두 침몰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이 재난의 순간 모든 것은 변화된다. 부유했던 안토니오는 빚을 갚지 못하는 가난뱅이로 전락하고 그가 경멸했던 유대인에게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입장이 되고 만 것이었다.
재난은 사람들의 삶 전체를 바꾸어놓는다. 재난을 당한 당사자들은 물론 그들의 가족과 그들이 속한 조직과 사회 전체를 혼돈으로 이끌기 마련이다. 바다에서의 재난을 다룬 문학 작품들은 긴 문학의 역사에 무수히 존재해왔다. 그중에는 작가 자신이 재난에 연루된 경우도 많다. 18세기 영국 시인 윌리엄 팔코너(William Falconer)의 장시(長時) ‘난파’(The Shipwreck)는 시인의 개인적 경험을 다루고 있는 자전적 작품이었다. 실제로 그는 한 때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니스로 향하던 배의 선원이었으며 그 자신이 탄 배가 좌초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세 사람의 생존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1769년 그가 승객으로 타고 있던 여객선이 인도를 향하던 중 난파되어 팔코너는 결국 해양 재난으로 사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바다에서의 재난에 관한 테마로 여러 편의 시를 남긴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P. B. 셀리 역시 1882년 자신의 요트를 타고 항해하던 중 폭풍우를 만나 죽음을 맞이했으며 19세기 미국의 비평가이자 여성운동가였던 마가렛 풀러(Margaret Fuller) 역시 여행 중 폭풍우에 의한 선박의 침몰로 인해 가족들과 함께 사망하였다. 한편 폴란드 출신의 영국 소설가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는 자신의 오랜 항해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해양 소설을 남겼는데 그중 ‘로드 짐’이라는 작품은 순례의 길을 떠난 이슬람교도들을 태운 여객선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짐은 바로 그 여객선의 항해사였다. 배는 낡았고 허용치 이상의 승객에다가 화물까지도 싣고 있었다. 마침내 항해 도중 배로 물이 스며들고 침몰은 시간문제였을 뿐이었다. 위험을 감지한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들에게 상황을 알리지 않고 자신들만 구조용 보트를 내려 탈출한다. 마지막까지 양심의 가책으로 망설이던 짐도 결국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구조 보트에 올라탄다. 하지만 침몰할 것으로 여겼던 여객선의 승객들은 때 마침 근처를 지나던 선박의 도움으로 모두 구출될 수 있게 된다. 소설은 이후 짐의 가책과 불행한 최후를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은 실화에 기초한 것으로 작가 콘래드는 작품 속 여객선 승객들을 구출했던 배의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목격한 재난의 현장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저열함을 고발했던 작품이었다.
20세기 가장 알려진 해양 재난 사건은 RMS 타이타닉 호의 침몰이었다. 1912년 4월 15일 북대서양에서 빙하와 부딪혀 좌초된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은 영국의 사우스햄튼에서 미국의 뉴욕으로 향하고 있었다. 약 2,224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이 여객선의 침몰로 1,500명 이상이 사망함으로써 단일 선박의 사고로는 최대 규모의 해양 재난이었다. 이 사건은 1974년에 이르러 선박의 구조, 구명 설비, 무선 전신 등의 설비 기준과 항해의 안전을 위한 원조 등을 규정한 솔라스(SOLAS) 국제 조약의 탄생을 낳았다. 또한 타이타닉의 침몰은 수많은 영화와 문학의 소재가 되었다. 사고 29일 만에 미국에서 ‘타이타닉의 생존자들’(Saved from the Titanic)이라는 제목의 짧은 무성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하였으며 1955년 미국 작가 월터 로드(Walter Lord)가 쓴 논픽션 ‘기억할 밤’(A Night to Remeber) 역시 이후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1997년 미국의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의 잘 알려진 영화 ‘타이타닉’이 제작되었다.
문학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적인 삶이거나 혹은 있어야 한다고 믿는 이상적인 삶을 그려내고 있다. 문학은 삶의 모방인 까닭에 우리가 직면하는 재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당연하다. 전쟁과 같은 인위적인 재난은 피할 수도 있지만 자연의 재난은 멈추지도 피하지도 못하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그저 겪고 난 뒤 우리에게 약간의 교훈을 줄 수 있을 뿐이다. 문학은 자연적, 인위적 재난이 인간에게 가르쳐주는 삶의 방식을 얘기하고 있다. 특히 인간에게 수많은 자원을 제공하고 육지와 육지를 연결시키는 항로를 제공한 바다는 그 혜택만큼이나 거칠고 잔혹한 재난의 온상이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