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종말의 변증법

by 최용훈

인류의 발명품 가운데 인쇄술은 지식의 확산에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지식은 더 이상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손으로 베껴 써야 했던 고가(高價)의 책들은 싼 값으로 서민들에 의해 읽힐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지식의 대중화, 일반화, 민주화가 이루어진다.


컴퓨터가 우리의 일상이 된 후 우리의 삶은 짧은 시간 안에 급속한 변화를 겪게 된다. 이른바 디지털 혁명이다. 본래 혁명이란 하나의 체제, 패러다임의 전복을 수반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디지털 혁명은 과거의 일상을 뒤엎고 그것의 속도와 범위를 무한으로 확장시킴으로써 인간의 삶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끌고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인공지능(AI)이라는 디지털 신(神)의 새로운 창조물들을 목도하기에 이르렀다.


2022년 오픈 AI의 챗GPT가 등장하면서 AI는 오늘날 일상의 용어가 된다. 인간을 대신해 글을 쓰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며, 수많은 서비스들을 제공한다. 그것은 AI 능력에 대한 대중의 접근을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확산시키고 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전문적인 지식을 우리의 두뇌 속에 저장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며 마치 올림포스 산에서 이루어지던 신탁(神託)처럼 모든 것을 AI에게 묻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AI가 인간을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 찬란한 기대와 동시에 깊은 두려움 속에서 말이다.


AI는 이미 사람들의 감정이나 기호를 분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 온라인에서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검색하면 AI는 비슷한 종류의 다양한 제품들을 그에게 제시한다. 유튜브에서 특정 주제의 영상을 잠시라도 보았다면 AI는 가차 없이 동일 주제의 무수한 영상들을 전송한다. 이는 기업의 소비자 행동 분석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감정에 따라 특정 콘텐츠를 AI 자신의 판단으로 제공할 가능성도 크다. 예를 들어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움직일만한 누군가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그것도 대체현실 속에서 실재하지는 않으나 체온과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완벽한 상대를 재화(財貨)처럼 찍어내는 것이다. 포스트모던의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는 우주시대에 땅 위를 기어가는 달구지 같은 개념일 뿐이다. AI가 창조하는 환상 속에서 우리는 007의 숀 코넬리도, 세계 지배를 꿈꾸는 망상가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인공일반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이라는 것은 인간처럼 학습하고, 지식을 적용하고, 다양한 영역의 일들을 해결하는 능력을 가진 AI를 뜻한다. 다시 말해 또 다른 인간인 것이다. 그것도 상상할 수 없는 절대적 능력을 갖게 될 신 같은 존재. 그것의 힘은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무한으로 증폭된다. 결국 인간은 프랑켄슈타인의 후예를 넘어서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는 존재를 만들어내고 그것에 복속되려 하는 것이다.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s) 또한 다르지 않다. 전문가가 지닌 전문적인 지식, 경험, 노하우 등을 컴퓨터에 축적하여 전문가와 동일한 혹은 그 이상의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이제 전문가의 시대는 사라질 것이다. 의사도 변호사도 컴퓨터 전문가까지도 시스템에 함몰되어 몰락의 위기를 맞고 있다. 모든 것에 능숙하다는 르네상스형 인간이 AI에 의해 구현되는 것이다.


생성형 AI(Generative AI)는 입력된 훈련용 데이터의 패턴과 구조를 학습한 다음 유사 특징이 있는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어낸다. 인간의 응용능력 따위는 AI의 생성능력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인간은 그러한 AI를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에 빠져 그것이 놀라울 정도로 자신을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휴브리스(hubris) 즉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하마르티아(hamartia)인 자만심이 AI라는 현대의 괴물을 창조하고 있다. 인간은 아주 단순한 데이터를 입력했을 뿐인데 AI는 그것을 열 배, 백 배 아니 무한대로 그 활용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AI를 구현하는 대표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이다. 컴퓨터를 인간처럼 학습시킴으로써 컴퓨터가 새로운 규칙을 생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시도에서 시작되어,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알고리즘이나 기술을 개발하는 분야를 말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 확산된 머신러닝은 빅데이터를 스스로 분석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결론을 도출한다. 이러한 머신러닝의 한 방법이 인공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의 한 종류인 딥러닝(deep learning)이다. 심지어 역사를 분석하여 미래를 예측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과연 컴퓨터 과학의 미래는 어찌 될 것인가. 인류의 미래는?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은 AI를 이용해 점쟁이처럼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게 되는 것인가?


인간은 기계와의 대화를 오랫동안 추구해 왔다. 이제 인간의 언어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 상호 소통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자연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는 머신러닝을 사용하여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소통하도록 돕는 인공지능(AI)의 하위 분야이다. 인간은 여전히 자신들이 기계에게 명령을 내리고 기계는 그것에 부응하는 존재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 기계들이 스스로를 인식하고 인간의 판단 위에 자신의 판단을 놓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또한 인간이다. 너무도 자명한 결과를 우리는 성공에 대한 헛된 기대와 영광을 위해 눈을 감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내 모습과 똑같은 모습을 만들고 그에게 내 목소리를 입히고 나의 영혼을 불어넣어 우리는 영생(永生)을 구하고 있는가? AI는 현대의 불로초인가?


인간만이 학습을 통해 문명과 문화를 유지 발전시켜 온 존재이다. 그것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능력이었다. 이제 그것을 대신할 존재가 인간의 자만심으로 새로이 창조되고 있다. AI를 통해 시를 짓고, 음악을 만들고, 사랑을 얻고 욕망을 충족시킨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수 천 년 전의 인류는 오늘의 세상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류의 미래는 결코 인간의 상상력만으로는 알 수 없는 영역이다. AI 역시 그렇다. 하지만 예측 가능한 한 가지는 인간은 지극히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존재라는 점이다. 과학이 인간을 대신하고 현실의 고통을 과학이 주는 쾌락으로 대신할 수 있다고 믿는 한 인류는 원시의 암흑 속으로 또다시 환원되고 말 것이다. 인쇄술은 지식의 민주화를 이루어냈지만 AI는 기계에 의한 종말의 변증법을 확인시켜 줄 것임을 알아야 한다. AI가 약속하는 신기루 같은 미래를 바라보는 많은 이들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먼저 얻어야 할 것이다.


나의 물음에 반응하는 기계의 음성이 들린다. “그것은 아직 제가 대답할 수 없는 것 같네요.” 하지만 언젠가는 이런 섬뜩한 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 “그 질문에 내가 대답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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