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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각의 밥

우정의 세 얼굴

돈키호테, 햄릿, 길가메시

by 최용훈

살다 보면 행운처럼 단짝을 이루는 친구나 동료를 만나게 된다. 물론 그러한 만남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학교 동창은 졸업 후 각자 진로가 정해지면 서로의 삶에 집중하느라 거리가 멀어지고, 직장 동료의 경우에는 퇴사나 퇴직으로 공유하는 일과 상황이 사라지면 자연히 소원해진다. 어린 시절의 친구도 마찬가지다. 만나면 한없이 편하고 반갑지만 번잡한 일상 속에서 만날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평생을 늘 같이 어울리고, 격려하고, 응원하는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축복이다.


문학 작품들은 인간과 인간의 삶을 그려낸다. 따라서 삶의 중요한 가치인 진정한 우정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근대 소설의 선구자라 불리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에는 주인공 돈키호테와 그의 친구이자 하인인 산초가 등장한다. 돈키호테는 기사의 삶을 흠모하여 ‘로망스’(중세에 인기 있던 기사 이야기)에 심취하고, 현실과 환상 속을 오가며 스스로 기사를 자처한다. 그래서 풍차를 거대한 괴물로 착각하고는 말에 올라 창을 휘두르며 풍차를 향해 달려든다. 그렇게 돈키호테는 있지도 않은 가상의 적을 향해 덤벼드는 무모함의 아이콘이 된다. 반면에 산초는 현실적인 인물이지만 환상의 문턱에서 서성거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돈키호테를 주인으로 섬기면서 그의 환상에 동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과 망상을 구분하라는 친구로서의 충고도 잊지 않는다. 두 사람은 파란만장한 긴 여행을 마치고 고향인 라만차로 돌아온다. 그리고 돈키호테의 환상 속 갈망은 산초의 현실적인 삶에 스며들어 두 사람은 영혼을 나누는 솔메이트가 된다. 산초는 돈키호테와의 모험을 회상하며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거야. 우리가 또다시 모험을 떠나면, 그때는 큰 섬이나 어떤 나라의 영주가 되어있을지도 모르지...” 소설 ‘돈키호테’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현실을 넘어 환상 속의 간절한 희망까지도 함께 나누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친 영혼을 서로 어루만져주고, 서로에게 스며들어 다름을 극복하는 우정의 한 가지 유형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속 햄릿은 아버지를 독살하고 왕위를 찬탈한 숙부에 대한 복수를 꿈꾼다. 하지만 그는 복수의 실행을 망설인다.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순간, 그는 자신의 원수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자 이렇게 말한다. “기도 할 때 죽이면 천국에 갈 것이 아닌가?” 복수와 살인에 대한 가책 사이에서 번민하던 햄릿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시작되는 유명한 독백을 읊조린다. 그것은 인생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태도를 보여준다. 하나는 “무도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견디어 낼 것인가?” 다른 하나는 “고통의 바다에 항거해 무기를 들고 그것에 대항해 끝장을 낼 것인가?” 큰 틀에서 볼 때 햄릿은 운명에 순응하는 전자의 모습을 보인다. 반면 돈키호테는 운명에 항거하는 후자에 가깝다. 이런 이유로 두 인물은 운명의 수용과 도전이라는 상이한 인간상의 전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돈키호테에게 산초가 있었듯이 햄릿에게도 호레이쇼가 있었다. 그는 덴마크의 왕자였던 햄릿의 신하이자 친구였다. 그는 햄릿이 죽는 순간 그와 함께 죽기를 결심하지만 햄릿은 그를 만류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증언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호레이쇼는 햄릿의 이야기를 전할 메신저가 된다. 햄릿이 죽은 뒤 친구의 모든 이야기를 눈물로 전하는 호레이쇼의 모습에서 우리는 내가 친구의 이야기가 되고 친구가 나의 이야기가 되는 또 다른 영혼의 결합을 발견한다.


기원전 2100년경에 고대 수메르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류 최초의 신화이자 문학이었다. 난폭한 군주였던 길가메시가 백성들을 향해 무수한 악행을 저지르자 이에 분노한 신들은 그를 응징할 목적으로 강력한 힘을 지닌 엔키두라는 인간을 창조한다. 마침내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치열한 혈투를 벌인다.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는 싸움 속에서 길가메시는 자신과 동등한 힘을 가진 엔키두를 보며 처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엔키두 역시 길가메시의 놀라운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서로에 대한 존경과 교감 속에서 두 사람은 싸움을 멈추고 서로를 얼싸안는다. 그리고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된다. 길가메시는 엔키두를 통해 겸허함을 배우고, 백성들을 보살피는 선하고 용맹한 군주로 탈바꿈한다. 자아의 발견과 그로 인한 변화, 그것은 또 다른 우정의 징표가 된다.


위의 세 작품을 통해 우리는 우정의 세 가지 모습을 찾는다. 돈키호테와 산초는 다름을 극복하고 서로를 맞추어 한 마음으로 융화한다. 호레이쇼는 햄릿과 고통을 나누고 비극적인 그의 삶의 증인이 된다. 그리고 길가메시는 친구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그것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문학 속의 인물들을 통해 보는 우정의 모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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