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영혼을 위하여

by 최용훈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1948~1991)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For the Wounded Soul

Koh, Jeong-hee


Under the sky, even the wounded reeds

Can be shaken all through the season.

If their roots are deep,

A bud comes up

Even though they are cut down at the base.

Then, let us be fully shaken,

And fully shaken, let us go to the suffering.


Even a duckweed, shaken without roots,

Makes flowers where water is collected.

A brook runs everywhere in the world,

A lamp is lit everywhere in the world.

So, the suffering, let’s embrace each other, and go together.

Willing to be lonely, where can’t we go?

Risking a life to go, who cares about the setting sun?


Flying across the land of suffering and sorrow,

Let us stand firm on the field with deep roots.

As the wind, warded off with two arms, still blows

So there will be no perpetual tears,

And there will be no eternal sorrow.

Under the sky even at midnight

There comes a hand to tightly hold.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부러진 갈대도 바람 불면 흔들리듯 상처 입은 우리네 영혼도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러니 움직이지 않으려고, 구부러지지 않으려고, 꼿꼿이 서 있으려 애쓸 것 없다. 아프면 아픈 대로,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그저 흔들리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조금 아픈들 뭐 어떠랴. 몇 가닥 남은 뿌리조차 힘껏 물기를 머물어 새순을 틔우고 꽃을 피워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개울의 물소리, 등잔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만 있다면 아픔쯤이야 부둥켜안고 함께 갈 수 있으려니 외로운 발길이 닿지 못할 곳이 없으며, 지는 해인들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는가. 깊이 박힌 뿌리를 의지해 아픔과 슬픔의 질곡을 넘어 굳건히 서자. 부는 바람 막을 수야 없지만 눈물도 서러움도 영원하지는 않을 것, 캄캄한 밤 나를 비쳐줄 별빛 같은 손길이 상처 입은 영혼, 상한 마음을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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