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저어 가는 목란 배

고정희 : 강가에서

by 최용훈

강가에서

고정희


할 말이 차츰 없어지고

다시는 편지도 쓸 수 없는 날이 왔습니다

유유히 내 생을 가로질러 흐르는

유년의 푸른 풀밭 강둑에 나와

물이 흐르는 쪽으로

오매불망 그대에게 주고 싶은 마음 한쪽 뚝 떼어

가거라, 가거라 실어 보내니

그 위에 홀연히 햇빛 부서지는 모습

그 위에 남서풍이 입맞춤하는 모습

바라보는 일로도 해 저물었습니다.


불현듯 강 건너 빈집에 불이 켜지고

사람에 그대 영혼 같은 노을이 걸리니

바위틈에 매어 놓은 목란배 한 척

황혼을 따라

그대 사는 쪽으로 노를 저었습니다.


By the Riverside

Koh, Jeong-hee


The day has come

When I have little words to say,

And no letter to write.

Coming to the green-grass bankside

Which streams through my childhood,

I sharply cut a part of my heart only for you

And let it float on water

And send it to you, saying ‘go, go.’

While watching it crashed suddenly by the sun,

And kissed by the south-western wind,

I found the day already drawing to a close.


When a light goes on abruptly in an empty house across the river

And a sunset glow resembling your soul is hang on people,

A peony ship between the rocks,

Along the twilight,

Is rowing toward the place you live.


세월이 지나고 홀로 남겨져 어린 시절 뛰놀던 둑방길을 걷는다. 지워지지 않는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흐르는 물 위에 애틋한 마음을 띄워 보낸다. 물 위에 부서지는 햇살, 감미로운 바람의 애무에 몸을 맡기고 어느새 어둑해진 하루와 마주한다. 강 건너 빈집에 불이 켜지고 어스름이 짙어질 때, 바위틈에 숨어있던 목란꽃잎 하나 작은 배 되어 그대에게 노 저어 간다.


남겨진 사람의 서정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가슴에 맺힌다. 애달픈 마음 한 조각 떼어내 가버린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처연함은 부서지는 햇살과 미풍의 초연함으로 치환된다. 만남과 헤어짐의 역설이다. 그리고 어둑해진 강 건너의 외로운 풍경은 흘러나오는 작은 불빛과 노을빛의 따사로움에 젖어든다. 그때 문득 바위틈에 떨어진 목란꽃잎 하나가 물길을 따라 흐른다. 외로운 내게서 사랑하는 이에게로 흘러간다.



매거진의 이전글존 스타인벡의 글쓰기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