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플랫폼 (1)

현실을 견디게 하는 환상

by 최용훈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영어시간에 선생님께서 느닷없이 칠판에 영어단어 두 개를 적으셨다. ‘illusion'(환상)과 ’disillusion.'(환멸) 분명 중학교 교과서에는 없는 단어들이었다. 아마도 선생님은 나이 어린 중학생들과의 영어수업이 따분했을지도 모르겠다. 의욕 없이 앉아있는 우리를 보고 답답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나가는 말처럼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놈들아, 환상 속에 사는 인간은 환멸로 죽는다고 했어!” 어린 나이였지만 선생님의 그 말씀이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아있다. 그리고 나도 간혹 강의실에 그 말을 한다. 환상과 환멸. 환상 속에 살다가 눈을 뜨면 현실은 언제나 환멸뿐인가. 그렇다고 언제까지 현실을 외면하고 환상만을 쫒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참 인생은 그 두 극단 사이를 오가는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같다.

아일랜드 극작가 싱(J. M. Synge)의 희곡에 ‘성자의 우물’이라는 작품이 있다. 가난하지만 금슬 좋은 장님 부부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한 성자가 그들에게 소원을 묻는다. 그들은 눈을 떠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있기를 원했다. 그리고 성자가 알려준 우물에 가서 눈을 씻고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보게 된 현실은 환상 속의 그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아름다운 아내는 흉측한 노파에 불과했고, 남편은 아내에 대한 사랑을 잃고 일탈의 삶을 바라본다. 세상은 그들이 꿈꾸던 그런 곳이 아니었다. 환멸 속에서 그들은 다시 앞 못 보던 과거로 돌아가길 원한다.

나는 가끔 환상에 빠진다. 내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환상. 내 강연을 들은 청중들이 감동에 젖어 눈물을 흘리는 환상, 내가 쓴 논문이 세계적인 학술지에 게재되는 환상. 그런데 그런 환상은 깨어져도 그다지 환멸이 남지 않는다. 몇몇이라도 내 책을 읽은 독자가 보내주는 격려, 몇 명의 청중들과 가까워져 강연 후 소주 한 잔을 기울이는 즐거움, 유명한 학술지는 아니더라도 내 생각을 담은 논문을 끝낸 후의 만족감. 그런 것들이 환상에서 깨어나도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그렇게 작은 만족에 감사한다면 굳이 환상 속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난 환상에 빠지는 즐거움과 그것에서 빠져나와 느끼는 즐거움을 함께 누려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영어사전 속의 ‘disillusion’에는 또 다른 뜻이 있다. ‘자각’ : 환상이 깨어지면서 오는 새로운 깨달음이 나에 대한, 삶에 대한, 세상에 대한 각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아더 쾨슬러(Arthur Koestler)는 헝가리 출신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였다. 젊은 시절의 투옥, 영국으로의 망명 등을 거치며 그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70대에 파킨슨병에 걸리고 이어 불치의 백혈병에 시달렸다. 그런 그가 이런 말을 했다. “환상이 죽는 것보다 더 슬픈 것은 없다.” 그는 환상의 끝에서 느끼게 될 환멸과 결코 만나고 싶지 않았었던 모양이다. 78세의 나이에 그는 아내와 동반 자살을 택함으로써 삶을 마감했다. 고통 속에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용기가 그에게 없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가 평생 환상 속에서 빠져 살았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그에게 환상은 어쩌면 그가 간절히 원하는 현실의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환상의 죽음을 슬퍼했을 것이라 믿는다.

‘셜리 밸런타인’이라는 모노드라마가 처음 공연된 것은 1994년이었다. 후배의 부탁으로 번역한 그 작품은 실험극장 김동훈 대표의 유작 연출이 되었다. 배우 손숙의 연기가 돋보였던 그 작품은 몇 년 후 극단 로뎀의 하상길 대표의 연출, 배우 김혜자의 명연기로 다시 한번 무대에 올랐다. 육아와 살림으로 젊음을 소비한 한 중년 여성의 자기 찾기가 주제인 작품이었다. 그 작품 속 셜리는 그리스로의 여행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남편의 반대와 불만을 무릅쓰고 친구와 함께 그리스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남자와 짧은 사랑에 빠진다. 그녀의 환상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한 순간 그녀는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자신으로 돌아온다. 환상의 길에서 현실의 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지만 그녀는 이미 예전의 그녀가 아니다. 그녀를 찾아 그리스로 오고 있는 남편을 기다리며 그녀는 아름다운 그리스 해변의 의자에 앉아 이렇게 중얼거린다. “안녕하세요? 전 셜리예요. 한 잔 하시겠어요?”

환상에서 깨어나면 현실이 된다. 그 현실을 깨닫고 작은 만족을 할 수 있다면 환상은 결코 환멸로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난 새로운 환상에 빠진다. 새로운 삶을 찾을 환상. 가보지 못한 길을 떠나는 환상. 누구도 미워하지 않을 환상. 모든 것을 용서하고 돌아서는 환상. 그런 환상 속에서 깨어나면 조금은 답답한 현실마저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