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플랫폼 (2)

꽃이 된 그리움

by 최용훈

우리는 늘 무언가를,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그래서 외롭다. 그리워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아직도 사랑을 목말라하고 있다는 증거다. 애인이 있어서 결혼을 해서 그 그리움이, 외로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리움은 현실보다 더 깊은 곳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과거를 그리워하고,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얼굴을 간질이는 봄의 햇살 속에서도, 얼핏 속살을 파고드는 가을의 서늘한 바람 속에서도 우리는 외롭고 또 그립다. 그 그리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그 질긴 고독감,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도 여전히 그립고 외로운 까닭은 무엇일까?


이제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남녀 간의 사랑만은 아니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더 큰 그리움의 대상이 있다. 나도 모르게 닮아가는 어머니, 아버지. 이제 더 이상 그분들에게 자랑도, 투정도 할 수 없는 순간, 우리는 치솟는 그리움을 느낀다. 그분이 걷던 길, 그분이 쓰던 물건, 그분의 말, 그분이 자주 짖던 표정들, 그 하나하나가 다 마음에 깊이 박혀 사라지지 않는다. 평소에 한 번도 그리워한 적 없던 그분이 가슴 저리게 보고 싶은 날, 미어지는 그리움을 어떻게 해야 할까. 세상에서 가장 큰 그리움, 그것은 누구보다 날 사랑했던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다. 아! 왜 난 그것을 이제야 깨달을까. 왜 이제야 그분의 사랑, 헌신 그리고 그로 인해 겪었을 수많은 아픔들을 그 긴 시간 동안 외면하다가 이제야 보게 되는 것일까.

그리움은 후회일지도 모른다. 그 소중했던 사람, 소중했던 순간, 소중했던 감정을 소홀히 했던 것에 대한 후회. 그래서 더 그리워하는 것이겠지. 어머니,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 그것이 우리를 영원히 그리움에서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이제 어른이 되어 되돌아보면 그 사랑보다 큰 것은 없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지금 내 마음속에 있는 작은 사랑, 그나마도 이기심과 욕심에 초라해진 그 사랑이 너무 보잘것 없이 느껴진다. 그리고 또다시 그 따뜻했던 사랑을 그리워한다. 문득 주방 쪽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들을 향해 던지는 우리의 목소리임을 깨닫고는 놀라고 만다. 그렇게 우리는 그리운 사람을 닮아가는 모양이다. 그리움은 목마름이다. 그리운 대상에 대한 갈망, 그 진한 그리움은 이제 혼자 남겨졌음을 절실히 아파하는 것일지 모른다.



젊은 시절의 사랑은 언제나 아쉬운 추억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날 왜 그렇게 그의 손을 잡는 것을 망설였을까.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 두근거리던 그의 손길, 그의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그 숨결. 그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리움으로 남는 법이다. 왜 어린 시절의 사랑은 그렇듯 서툴렀을까. 그 지나간 사랑의 아쉬움들이 모여서 이제 그리움이 된다. 아파트 입구의 작은 찻집, 그 겨울 하얗게 빛나던 거리, 아련히 기억나는 슬픈 노래들, 그리고 기억조차 흐려진 그 얼굴. 그 기억의 조각들이 긴 추억의 그림자로 당신의 뒤를 쫓아온다. 그리고 그 걸음걸음에 찍히는 그리움.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리움을 이젠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그리움에 익숙해지는 거다.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유치환 ‘그리움 1’ 중에서)


사랑을 잃고, 함께 걷던 거리를 혼자 걸으며, 그 시리고 시린 초겨울의 바람 속에서 떠난 사람의 이름을 새삼 떠올린다. 라일락 향기 날리던 날, 우리는 문득 혼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게 깊어진 그리움은 외로움이다. 그리움과 사랑은 딱 한 걸음 차이란다. 계속해서 걷지 않으면 그리움만 남게 된다고. 그 그리움과 사랑의 길을 걷다가 주변을 돌아보면 나의 사랑을 기다리는 것들이 너무도 많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발견한 순간 그리움은 꽃이 된다. 꽃으로 다가온 그것을 가만히 안아주기를! 우리는 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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