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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ul 12. 2021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

(‘입속의 검은 잎‘ 시작 노트)     


“For the time being, I wrote my poems on the street, warned of the irresponsible analogy of Nature. The street imagination was a suffering, which I loved. But I still believe that the greatest words are in Nature. One day that belief will call me. I will be glad to follow it. It is likely to snow.”

(From a note for ‘The black Leaves in the Mouth)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The Black leaves in the Mouth

                         Ki, Hyung-do     


The taxi driver put his head out of the window in darkness

And occasionally shouted, when the birds flew away.

I am a stranger in this field and the twilight.

I think of the man I have never seen before.      


When that happened, I was in a distant countryside.

I was reading a book in a dusty room.

Opening the door, I found mist hung over the field.

That summer, soils dragged books and black leaves.

Whenever I opened the folded clothes, I saw white smoke pop out.

He once wrote ‘silence becomes a servant.’

I have seen his face only once

From a newspaper. He drooped his head a little.

Then, that happened. Soon he died.    


His funeral was slippery with a strong wind and rain.

The car carrying his body inched forward impatiently slowly.

The crowd desperately hanged on the funeral procession

And black leaves fluttered in that white car.

My tongue grew hard slowly. His little son,

Besieged by the leaves, fell crying.

That summer many people disappeared in a mass

And unexpectedly bulged out here and there before the silence of the frightened.

The tongues of the dead flowed over the street.

The taxi driver sometimes turned back.

I didn’t believe in that driver. In fear,

I mumbled. He was a dead man.

Because of that, how many funerals hushed?

Then, who is he? Where am I going?

I am no longer allowed to delay the answer. Where

that will happen, nobody knows. Wherever it is,

I have to go to a not-too-distant countryside.

I am an utter stranger here in this field and twilight.

I am afraid of the black leaves stubbornly stuck in my mouth.     


스물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시인 기형도. 파고다 극장 안에서 소주병을 든 채 숨을 거두었다는 젊은 시인의 마지막 순간,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검은 잎을 입에 물고 그는 떠올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의 깨어진 꿈과 새로이 꾸어야 할 꿈에 대하여... 하지만 그의 삶은 자연이 아닌 여전히 도시의 거리 위에 있었고, 그곳에서 두려움 속에 중얼거리다, 자연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낯선 땅과 황혼 속에 홀로 남겨진 시인의 고독은 죽은 자의 장례식과 짙은 안개와 흙 그리고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대중의 아우성 속에 함께 있었다. 굳은 혀로 외쳐보는 그의 갈망은 거리의 모든 죽은 이들의 혀와 합쳐지고 이제 또다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의 죽음이 애도되는 동안 다른 모든 죽음은 침묵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시인은 떨어져 검게 물든 잎 하나를 입에 물고 두려움에 떤다. 하지만 그가 기억하는 그 낯선 이의 죽음 안에서, 모든 것을 품은 자연과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 저 택시 운전사도 그 만남만은 어쩌지 못하리. 그가 쫓아버린 새들도 자연 속으로 다시 돌아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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