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의 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Sep 17. 2021

아름다움, 균형, 그리고 진실

소크라테스

“선(善)을 한 가지 형태로만 포착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다음의 세 가지 것들과 연계하여 이해해야 다: 아름다움, 균형 그리고 진리.”     


흔히 소크라테스의 세 가지 ‘황금 어휘’(golden words)라 불리는 것은 아름다움, 균형, 진리입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이 세 가지는 삶의 방향을 정하는 원리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서양의 사고 체계에 이항대립(二項對立, binary oppositio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19세기 스위스의 언어학자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는 언어가 서로 대립하는 의미 구조를 통해 형성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선’이라는 낱말은 ‘악’이라는 낱말을 통해 그 의미가 뚜렷해진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그는 이 두 개 항(낱말)의 대립을 ‘이항대립’이라 불렀습니다. 언어학의 이 이론은 이후 프랑스의 문화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에 의해 문화 구조의 이해에 적용되었습니다. 신호등의 붉은색과 파란색은 정지와 직진을 상징하고 이러한 대립의 구조가 문화 전반에 깔려있다는 설명이죠. 모든 민족의 신화나 설화도 대립의 구조를 지닙니다. 우리의 단군신화에 나오는 호랑이와 곰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호랑이의 실패가 있었기에 ‘웅녀’의 탄생이 더욱 선명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니까요.     


이런 측면에서 소크라테스의 세 원리는 ‘아름다움과 추함’, ‘균형과 혼란’, ‘진실과 거짓’의 대립 체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말과 행동, 사랑의 베풂, 이해와 용서는 삶의 아름다움입니다. 미워하고 질시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많은 행동들은 얼마나 추한 모습인지요. 한편 균형은 질서의 또 다른 말입니다. 모든 것이 알맞게 균형을 이루는 세상은 아름답고 안전합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균형을 깨고 내가 남보다 더 강해지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는 데서 불안과 위험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서양인들이 얘기하는 ‘균형 감각’(a sense of proportion)은 동양에서 말하는 ‘중용’과 흡사한 개념이지요. 극단으로 치우침이 없는 말과 행동, 그것은 시대와 장소를 넘어서 인간의 가장 중요한 미덕이 되었던 것입니다.     


고대의 예술 속에도 이러한 질서와 균형은 가장 기본적인 원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고전주의’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질서와 균형이었어요. 사람의 조각은 가장 완전한 인체의 균형을 이루도록 제작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가장 완벽한 균형을 지닌 건축물로 여겨지고 있지요. 고전적 원칙을 나타내는 용어에 ‘데코럼’(Decorum)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원래 고전 시대의 수사법이나 시 이론에서 나오는 용어인데 모든 글의 문체는 그 주제에 적합하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서사시(epic), 비극(tragedy), 희극(comedy) 등은 모두 각자의 문체를 지녀야 했습니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말을 빌자면 “희극적 주제는 비극의 문체로는 제대로 다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었죠. 우리말로 ‘적정성’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이 ‘데코럼’은 이후 사회적 행위의 적절함으로까지 그 의미가 확장됩니다. 귀족은 귀족다워야 하고, 노인은 노인다워야 하며, 젊은이는 젊은이다워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말로 ‘예의’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예의는 각자의 상황에 맞추어 그에 적합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적절함이 균형과 질서를 이룹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균형은 결국 진리로 이어진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믿음이었죠. 거짓 속에는 추함과 혼란만이 있을 뿐입니다. 세상의 가치 기준이 아무리 변한다고 해도 진리는 하나이어야 합니다. 라틴어로 진리를 뜻하는 단어는 ‘베리타스’(veritas)입니다. 베리타스는 ‘올바름’, ‘참’, ‘정확히 맞음’을 의미합니다. 철학적 의미에서 ‘진리’에 대한 개념은 여전히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지만 삶은 관념적인 것이 아닌 구체성 위에 존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리의 구체성은 상식에 의해 판단되는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있는 것을 있다고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진리이고, 있는 것을 없다고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시대를 초월해 진리에 대해 가장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Veritas lux mea’(진리는 나의 빛), Veritas vos liberabit.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흔히 인용되는 라틴어 모토들은 결국 소크라테스의 삶에 대한 명징한 원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크라테스, ‘있는 일을 밝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