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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un 03. 2022

플라톤의 ‘국가’-제3권

폴리테이아 (Politeia)

제3권 요약


소크라테스는 수호자들에게 가르칠 교훈을 설명하다가 그들 가운데 등장하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러한 범주에 속한 이야기들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젊은 수호자들로 하여금 죽음의 공포에 대해 면역력을 갖게 해주는 것이었다. 영웅들은 결코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노예로 살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은 자들의 혼이 있는 하데스(Hades, 황천)는 결코 공포의 장소가 아니다. 영웅은 위대한 인물들의 죽음을 불행이라 여겨 슬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영웅은 폭력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하나의 폭력적 감정은 늘 또 다른 폭력적 감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신들과 마찬가지로 영웅들은 언제나 정직한 존재이어야 한다.


글라우콘은 유한한 생명의 보통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만 소크라테스는 그에 대한 답을 미룬다. 그는 시인들이 말하는 바 흔히 정의롭지 못한 자들이 성공을 거두고 정의로운 자들이 몰락한다고 지적한다. 시인들은 전자를 현명한 이들로 찬양하며 몰락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의롭지 않은 것이 좋다고 선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주장들을 반박하는 것이 현재의 소임이므로 그런 이야기들이 그르다는 것을 입증해야 해야 하고 그래야만 그것들이 진리를 나타내지 않음으로 무효임을 주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이야기의 형식에 관해서도 언급한다. 그는 가장 적절한 운율을 제시하고 그것을 극적 혹은 서정적 형식 가운데 어떤 것으로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그는 그림이나 건축 같은 다른 예술 분야로 옮겨간다. 시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다른 예술에서도 예술가들은 사악하고, 제멋대로이며, 천박하고 품위 없는 것들을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즉 수호자들이 배워야 할 것 이외의 것들은 모두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소크라테스는 교육에 관한 놀라운 주제를 제시한다. 즉 소년과 성인 남자 사이의 올바른 사랑이라는 주제였다.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관계가 소년의 교육에 지극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는 성적인 교접으로써 이러한 관계를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즉 그들 사이의 사랑에서 성적인 요소는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주제는 수호자들에 대한 육체적 훈련이다. 이러한 훈련은 체육선수들이 받는 훈련이 아니라 전쟁을 위한 훈련에 가까운 것이어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육체적 훈련이 음악이나 시와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나친 육체적 훈련은 수호자들을 거칠게 만들고 음악이나 시에만 몰두한다면 너무 유약해진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정의로운 사회에서 제공되어야 하는 의학적 훈련에 관해서도 말한다. 의사들은 치료 가능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만을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만성적인 질병을 다루도록 훈련되어서는 안 된다. 불치의 육체적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죽을 수 있도록 두어야 하며 불치의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죽음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3권 분석


성인 남자와 소년 사이의 사랑에 관한 문구는 사랑이 교육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진정한 사랑이랄 수 있는 에로스는 우리로 하여금 지식의 정상에 오르게 한다. 이후에 얘기되겠지만 진정한 지식은 우리 주변의 관찰 가능한 세상에 속해있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지식은 오로지 우리의 마음만이 접근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영원한 지식인 ‘형식’(Forms)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를 통해 이 높은 영역으로 지적 도약을 이룰 수는 있지만, 공부를 하고자 하는 감정적인 동기는 에로스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플라톤에게 있어 모든 행위는 어떤 욕망 혹은 감정에 의해 촉발되는 것이었다. 우리로 하여금 ‘형식’을 찾게 하는 감정적 동기는 바로 에로틱한 사랑인 것이다. 에로스는 물리적인 세계와 지적인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이며 철학자의 탐구를 위한 동기가 되는 것이다.


플라톤의 대화편 ‘향연’(Symposium)에 따르면 에로틱한 사랑은 여러 가지 단계로 우리를 지식으로 안내한다. 처음에 우리는 하나의 물리적 육체를 사랑한다. 그리고 이어 두 개의 육체를 사랑하게 되고 다음 단계로 모든 물리적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계속하여 전통과 제도에 대한 사랑, 그리고 최종적으로 최고의 학문인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한 지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일단 아름다움 그 자체 즉 아름다움의 ‘형식’에 이르게 되면 그 학문의 여정은 완성된다. 그러므로 에로틱한 사랑이라는 주제는 교육에 대한 논의에 완벽하게 들어맞게 되는 것이다. 에로틱한 사랑은 철학자의 교육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플라톤은 이러한 관계에 성적 교접이 끼어드는 것을 금지한다. ‘형식’에 대한 지식으로 이끄는 가장 높은 수준의 사랑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진실과 선에 대한 지식으로 이끄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개선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왜 사랑이 육체적인 쾌락에 초점을 두지 말아야 하는 지를 설명한다.


플라톤은 성적 교접이 아무런 유용성을 갖지 못한다고 보았다. 이성애적 교접은 생식을 위해 필요한 것이므로 용인되어야 한다. 하지만 동성애적 교접은 육체적 쾌락 이외에 어떤 목적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동성애적 교접은 유용한 것이 아니므로 좋은 것이거나 아름다운 것일 수 없는 것이다. 좋지 않거나 아름답지 않은 것은 어떤 것이라도 피해야 한다. 이후 ‘국가’에서 플라톤이 명백히 한 것처럼 한 인간이 지니는 영혼의 건강함은 그가 충족코자 하는 욕망에 의해 결정된다. 좋은 사람도, 철학적인 사람도 젊은이에게 육체적 욕망을 느낄 수 있지만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것이 그의 미덕에 합당한 일이다. 플라톤은 그러한 성적 욕망을 진실과 선에 대한 욕망, 즉 자신의 연인과 함께 진실과 선을 발견코자 하는 갈망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수호자들을 위한 교육에 대해 얘기를 마친 뒤 소크라테스는 정의로운 사회의 세 번째 마지막 계급인 ‘지배자들’에 관해 설명한다. 지금까지 수호자들이라고 불리었던 계층이 분리된다. 그 계층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자들이 지배자들로 선택되고 마침내 그들만이 수호자들이라 불리게 된다. 반면 나머지들은 전사로 남게 되거나 ‘보조자들’이라고 명명된다. 그들의 역할은 지배자들의 결정을 수행하고 강화함으로써 그들의 보조적인 역할을 할 뿐이기 때문이다.


지배자들을 올바로 선택하기 위해 훈련 중인 모든 젊은이들은 면밀히 관찰된다. 그들 가운데 누가 국가에 대한 충성이 굳건한지를 결정하기 위해 그들에게 다양한 시험이 주어진다. 그들은 자신의 확신을 꺾기 위한 위협과 쾌락에 노출되고 그러한 시험을 통과한 이들은 통치를 위해 필요한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이 제공된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나머지는 교육을 끝내고 전사가 된다. 지배자들을 위한 교육은 이후 제7권에서 이어진다.


누가 지배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마감하기 위해 소크라테스는 ‘금속의 신화’(the myth of the metals)라는 이야기를 인용한다. 이 이야기는 국가의 모든 시민들은 흙에서 태났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시민들은 그들이 태어난 땅과 그곳의 사람들에게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땅은 곧 어머니이고 그곳의 사람들은 형제자매이다. 또한 신화에 따르면 사람의 영혼이 어떤 금속과 섞여있다고 말한다. 지배에 가장 적합한 사람들의 영혼에는 금(金)이 있으며 ‘보조자들’에게는 은(銀)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생산자들’의 영혼에는 동(銅)이나 철이 섞여있는 것이다. 국가는 잘못된 금속과 섞인 사람들에 의해 통치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국가는 몰락할 것이라는 것이 신탁의 가르침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금과 은과 동의 혈통은 대를 이어 세습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언제나 그렇지는 않다. 다음 세대들이 스스로 영혼의 계급을 찾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생산자 계급에서 태어났지만 수호자나 보조자의 본성을 지닌 사람들은 그 계급의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양육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수호자나 보조자의 계급에 속하는 자들도 생산자에 맞는 경우에는 자신이 속한 계급에서 제거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계급 간의 이동성이 비록 경직되어 있더라도, 태생적 계급이 반드시 세습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수호자들에게 제공되는 주거에 관한 짧은 논의로 끝을 맺는다. 수호자들은 모두 국가에서 제공한 주거지에서 함께 산다. 수호자들은 임금을 받지 않으며 개인적인 부와 재산을 소유하지 못한다. 그들은 생산 계급의 납세를 통해 국가로부터 전적으로 지원을 받는다. 수호자들이 듣게 되는 마지막 이야기는 그들이 재화(財貨)를 취급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즉 그들이 세속적인 금과 은을 영혼의 금은과 섞는 것은 불경한 일이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분명하다. 만일 지배자들이 개인적인 재산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면 그들은 필연적으로 그들의 권력을 남용할 것이고 결국 국가 전체를 위해서가 아니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통치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상적 국가가 권위주의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금속의 신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국가 주도의 계급화를 지적한다. 진리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었음에도 플라톤은 광범위한 국가적 기만을 쉽사리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의 이익이 진리의 중요성을 포함한 모든 것에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듯 권위주의적인 유토피아를 두려움 속에 회피하기 전에 당분간은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국가’를 읽어가는 동안 우리는 왜 우리가 개인의 자유를 높이 평가해야 하는지, 자유에 대해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함으로써 우리가 희생시키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자문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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