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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Mar 03. 2024

천원짜리 물건을 사러 50km 운전했다.

아빠는 이렇게 너를 사랑한단다.

 어제 오랜만에 가족끼리 주말 외출을 했다. 의견 충돌도 많고 서로 의견이 달라서 집 근처를 맴맴 도는 그런 생활을 주로 하는 우리 가족이다. 항상 그게 마음에 걸렸다. 부부사이 문제가 자녀의 삶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말로 표현이 불가능하다.


어느덧 딸아이도 초등학교 2학년 입학을 앞두고 있고 가끔 불쑥 자라 버린 딸을 보면서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가족 비위를 맞췄다. 어린 시절 추억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경험한 나로서는 딸아이가 이렇게 성장하면 지금처럼 자신감 없는 태도와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에 대한 표현이 늘어날 것이 우려되었다. 


가족의 육아방침은 '모든 사람은 다르다. 그러니까 모든 게 괜찮다'인데 일부 인정은 하지만 그것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딸아이의 자존감을 바닥으로 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냥 나란 사람은 몰라도 괜찮은 그런 사람이라고, 무시당해도 된다는 태도로 생활한다는 것을 학원선생님에게 듣고 며 칠 동안 잠을 못 잤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는 타협하고 타협하여 스케이트장을 가기로 했다. 가족은 동의했고 딸에게 말하면 무조건 가기 싫다고 할 것이 뻔해서 우리는 거짓말을 하고 딸아이를 차에 태웠다. 아이는 궁금해했지만 큰 관심이 없었고 실내체육관에 도착하자 우리가 스케이트를 타로 온 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표를 끊으러 들어갔는데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을 받고 주차장으로 가서 이야기했더니 가족이 불끈했다. 

결론은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괜히 싸움만 될까 봐 잠시 자리를 피하고 심호흡을 했다. 그 사이 가족은 링크 하나를 보내왔다. 실내 롤러스케이트장이었다. 아이를 생각해서 꾹 참고 그곳으로 향했다. 뭐가 되었든 목적 달성은 가능하니까 말이다.


롤러스케이트장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가족을 제외하고 딸과 나는 처음으로 타보는 롤러스케이트였다. 아기 걸음마 배우듯이 벽에 붙어서 종종걸음으로 서로 웃고 응원하며 열심히 탔다. 억지로 만들고 연출했다고 하기에는 나름 괜찮은 가족의 모습이었다. 딸아이도 나름 기쁜 내색을 보이기도 했다. 


엉덩이가 고생 좀 했지만 간식까지 다 같이 먹고 1시간 조금 넘도록 그곳에 머물다가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3층짜리 큰 건물에 다이소가 눈에 들어왔다. 딸아이는 다이소를 보고 가고 싶다고 말했다. 가족 눈치를 살짝 보니 가도 될 거 같았다. 다행히 주차장이 넓었다.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회피하려는 가족의 성향 때문에 이런저런 것들이 모두 장애물이 된 대한민국이었다. 


다이소에 들어가는 길에 가족은 딸에게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절대 사면 안 돼! 눈으로만 보는 거야!"


그 말을 듣고 딸은 내 눈을 바라봤다. 마치 아빠는 괜찮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동네 다이소보다 2배나 컸다. 물건도 많다고 딸은 신이 나서 이곳저곳 내손을 붙잡고 끌고 다녔다. 그러다가 하얀색 곰돌이 키링 앞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딸아이 얼굴이 저거 너무 갖고 싶다고 써져 있었다. 나는 딸에게 뭐 때문에 그러냐고 하니 귓속말로 내게 말했다. 


"아빠. 저거 가방에 달면 너무 이쁠 거 같은데...." 


고작 천 원짜리 인형이었다. 딸아이를 위해서 수천 개라도 당장 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것들을 맨날 사준다고 버릇이 든다며 항상 불만을 표현하던 가족 얼굴이 떠올랐고, 딸도 엄마 눈치를 보며 차마 사달라는 말을 못 하고 계속 주의만 맴돌았다. 


물론 내가 그냥 사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며 칠 전에 새 학기 물건이라고 갖고 싶은 것들을 몽땅 사준 터라 가족 말을 무시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했다. 그렇게 딸은 천 원짜리 곰인형을 포기한 채 풀이 죽어 차에 탔다.

그 모습을 지켜보자니 가슴이 아팠다. 열심히 일하고 사는 것이 무엇 때문인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만의 행복을 위해서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데 천 원짜리 물건도 사주지 못하는 아빠가 된 것 같아서 나 자신한테 그리고 딸한테 미안했다. 


계속 마음이 쓰였지만 그렇게 하루는 마감되었다. 


다음날 아침 가족이 갑자기 주말 과외 일정이 잡혔다며 딸과 나를 두고 집을 나갔다. 나는 간식을 만들어주고 딸아이에게 뭐 하고 싶냐고 물었다. 


"아빠.. 동네 다이소 가면 안 돼?"

"다이소? 왜? 곰인형 때문에?"

"응. 내가 청소 지금 다 하고 신발정리도 할게."


평소 착한 일하면 오백 원씩 용돈을 주었는데 아쉬울 때만 청소를 하곤 했다. 내게 협상을 하자고 제시한 청소 웃으며 받아들였다.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방과 책상을 깔끔히 치워져 있었다. 정리에 대한 기본개념이 부족한 게 딸이었다. 내가 아무리 깔끔을 떨어도 집안에 더 머물고 있는 엄마의 역할은 중요했다. 이미 지저분한 집에 대해 포기했지만 이런 습관을 딸이 배우게 될까 봐 싫었다(직장생활에도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 아무튼 업무 효율도 좋고 계획성 있는 삶을 사는 것을 많이 봤기에 나는 정리에 민감한 편이다).


그렇게 우리는 기분 좋게 동네 다이소로 출발했다. 한 곳, 두 곳, 세 곳을 갔지만 그 곰인형이 없었다. 딸은 고개를 숙이고 어제 사지 못한 그 곰인형을 떠올리며 슬퍼했다. 그런 딸에게 나는 간식을 사주면 말했다.


"우리 어제 갔던 다이소 지금 갈까?"


너무 멀어서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던 딸이 내가 말하니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멀어서 그래? 금방 가. 우리 가서 그 곰인형을 구출하자!"


내가 밝게 말하니 웃으면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천 원짜리 곰인형을 사로 50km를 운전해서 그곳으로 향했다. 분명 가족이 알면 지랄지랄 할 것이 뻔했다. 그런데 꼭 이렇게 해야만 했다. 나는 이게 부모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다 줄 수 없다. 현실이 그렇다. 근데 곰인형은 줄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웃으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도착한 다이소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딸아이 손을 잡고 뛰었다. 아이는 오는 길에 걱정을 하고 있었다. 어제 두 개 남았는데... 그래서 뛰었다. 


자동문이 열리고 우리는 약속한 듯이 인형 코너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환호하는 딸아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곰인형은 한 개 남아 있었다.


인형을 계산하고 좋아하는 딸아이를 보니 마음이 뭉클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50km는 더 행복했다. 물론 뒷자리에서 엄마가 어떤 식으로 말할지 걱정하는 딸을 보면서 조금 염려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내일 2학년 첫 등교를 하는 딸아이 가방에 달려 있을 곰인형을 생각하니 10점 만점에 10점 아빠가 된 것 같아서 보람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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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관련 이야기는 블로그를 통해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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