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용환 Dec 18. 2023

부캐 0순위를 본캐로 만들어야지!

퇴사를 앞에 두고 요동치는 마음

요즘은 동생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물론 서로 자극을 주며 가장 이상적인 형제 사이로 성장하고 있는 우리지만 가끔 내게 이런 말을 해주는 동생이 있다는 게 고맙다.


사직서를 작성해 두고 제출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마음이 요동치고 있다. 다른 사람들 삶이 가볍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어머니의 치매, 한국인과 다르게 나를 응원해주지 못하는 외국인 아내, 한 아이의 아버지 등 여러 가지 상황들이 나를 나약하게 만들었다.


물론 현명한 결정을 하기 위해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는 것은 참 힘들다. 왜냐하면 현실은 그냥 지금 이 자리에 주저앉아서 남은 시간을 안정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불확실성 속에 몸은 억지로 던져야 할 이유를 억지로 만들지만 지금이 가장 고요한 순간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거침없이 파도가 몰아쳐도 꾸역꾸역 물속에서 나와서 살아남기를 한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이제 조금 몸이 마르고 따뜻한 햇살을 가끔 즐기는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지금 내 결정에 신중함을 더하고 있지만 신중함이라는 단어도 결국은 비겁한 겁쟁이를 포장하고 있음을 스스로 부정할 수 없다.


그런 나는 이런 고민을 남들에게 털어놓기도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은 철저하게 남이기에 그리고 모든 결정은 내가 하고 감당해야 함을 알기에 그저 침묵을 지키며 답답한 시간을 보냈다.

가끔 흔들리는 말을 비추면 친한 동료들 조차 실없는 사람이 될 거면 왜 나간다는 말을 흘리고 다녔냐고 나를 비난했다. 맞는 말이다.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그런데 일부로 말을 흘리고 다녔다. 약해져서 또 도망치고 그냥 멈춰버릴까 봐 일부르 그렇게 말을 했다. 분명 그냥 그래야 후회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이 불안함을 동생에게 말했다. 엄마 간호 때문에 올라와서 늦은 밤 맥주를 마시며 어쩌면 나를 의지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동생에게 나약함을 말하니 동생은 단호하게 내게 말했다.


"지금 형이 어려운 여건 속에 하고 있는 여러 가지 부캐 중에 0순위 부캐가 본캐가 되는 게 형한테 가장 행복한 삶 아니야?"


나는 그 말을 듣고 순간 멍하네 동생을 바라봤다.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다시 불안정한 곳으로 뛰어들고 싶어서 몸부림쳤던 이유를 다시 상기시켜 줬기 때문이다. 많은 제약이 있는 이 조직을 벗어나서 조금이라도 더 자유롭고 싶었던 그 갈증이 다시 찾아왔다.


글을 쓰고, 그동안 자격증을 따고, 박사과정을 다니고 있는 그 순간들은 조금 더 내가 갈망하는 내 모습으로 가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금전적인 것보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힘들어도 퇴근하고 매일 조금씩 걸어가고 있던 것들이 바로 나의 부캐였다.


동생이 말한 부캐는 0순위는 바로 작가였다. 언젠가는 그 솔직함이 날개를 달 수 있다고 믿는 듯했다.  글로 인정받으면 형이 행복하게 미친 듯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어쩌면 나도 막연하게 상상했는지도 모른다. 무명에서 베스트세럴 작가가 되어 활동하는 작가분들을 보면서 부러워하면서 언젠가 꾸준히 글을 쓴다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거라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이 사십에 이 방황은 어쩌면 잘 살고 있음에 증명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브런치 글을 읽고 슬프다고, 안타깝다고, 힘내라고 나와 동생을 응원해 주시는 브런치 독자분들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용기를 얻고 너무나 감사함을 느낀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부캐가 본캐가 되기를 희망하는지도 모른다. 사실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저 상황과 당시의 여건이 그런 식으로 우리를 이끌고 가곤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청춘을 보내며 마음속에 묻어 둔 그 무언가를 마음에 두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인생은 빛이 날까? 스스로 질문해 본다.


그래서 2024년은 더 용기를 내야겠다. 


평균수명 80세 시대에 살면서 나이 마흔은 고작 인생에 절반을 걸어왔을 뿐이다. 

아직 걸어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 어떠한 부캐도 본캐가 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고, 그 속에서 기회를 만들고 행복을 찾기에 아직 충분히 젊다. 


주어진 먹이를 받아먹는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도 나이기에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어도 그 모습조차 사랑해보고자 한다. 




[브런치북] 엄마 방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brunch.co.kr) 


[연재 브런치북] 여전히 공부가 맛있다. (brunch.co.kr)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 글쓰기에 매달리면 인생이 뭔가 달라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