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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Jun 16. 2024

67. 옛날에는 치매환자를 좀비로 착각하지 않았을까?

엄마는 치매환자지만 누구보다 행복하다.

 엄마가 치매를 진단받고 보낸 세월이 이제는 가물가물 할 정도로 많이 흘렀다. 나중에 엄마가 아팠다고 그랬다고 라는 말로 그 소중한 시간들을 넘겨버리기 싫어서 이렇게 글로 남기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쓰리다.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처음에 우리 형제는 부정했다. 


엄마가 그냥 우울증일 거라고. 못난 아빠를 떠나보내고 그를 너무 사랑했던 엄마의 마음에 큰 구멍이 생겨서 그냥 잠시 그런 거라고. 하지만 그 구멍은 계속 커져만 갔다. 의사 선생님의 냉정한 진단에도 우리는 그저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고, 엄마도 부인했다. 그렇게 부여잡고 살았다. 그래도 5년 아니 6년 전에는 지금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이야기를 했고, 대화도 나눴다. 


음식 맛이 조금 이상해졌지만 가끔 밥도 차려줬고, 같이 영화도 보러 갔다. 그리고 내가 아내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것도 가슴 아파했다. 무엇보다 하나뿐인 손녀딸을 누구보다 사랑했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그 오래된 핸드폰을 열고 딸아이 동영상을 보고 또 보고 그랬다. 그래서 그런지 나와 동생은 엄마가 조금은 더 건강하게 버틸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아니 그래야만 우리가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하늘은 냉정했다. 그런 기적이나 해피엔딩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병원을 다니고 이것저것 다해봐도 엄마의 증상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리고 우리도 지쳐갔다. 애써 웃지만 마음속에서 절규가 흘러나온다. 

가끔 기사에서 부모님을 모시기 힘들어서 같이 세상을 끝내는 선택하는 보호자들의 이야기를 종종 본다.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냥 넘기기 어려워 마음으로 그분들을 위로하고 응원했다. 돈이 없어서 시설에 보내지 못해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약간 그런 식으로 표현되는 결말이 씁쓸하지만 적어도 단지 그 이유에서 그런 것은 아닐 거라고 감히 생각하곤 했다. 

동생은 애써 행복하다고 표현한다. 요양원에 보내야 했던 그 시간이 우리에게 너무 힘들었기에 그래서 일부로 더 그러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내가 모실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동생이 나를 대신해서 그 짐을 짊어지고 가는 것도 잘 안다. 


9살 딸아이를 키우는 나도 가끔은 지친다. 아이라서 그러는 것을 아는데 그게 참 어렵다. 부부가 동시에 무너지기도 하고 마음 한구석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언제나 공존한다. 우리 부부사이에서 태어나서 좋지 못한 것만 보고 자라서 눈치 보는 법만 배운 것도 미안하고, 남들처럼 평범하지 못한 것도 미안하다. 잘하려고 노력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던져서 사랑하고 있지만 언제나 남는 것은 아쉬움과 미안함 뿐이다. 


그래도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수월하다. 아이는 나름 이 세상에 적응하며 성장하고 있고,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사투를 벌이지만 그 속에서 꾸준히 무엇인가를 배운다. 그래서 점점 독립적인 한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다. 아쉽지만 응원하고 그 길을 조용히 바라보며 뒤에서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치매 환자인 엄마는 아이와 다르다. 말 안 듣는 것은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아니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속이 타들어가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 말라고 말해도 하는 그 모든 행동이 진짜로 진심이기에 더 화가 난다. 가끔 서울에 올라가서 며칠 지내고 오면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짜증을 내곤 한다. 동생도 마찬가지이다. 가끔인 나도 그런데 매일 얼굴 보는 그놈은 오죽하겠는가.


어쩌면 그 짜증은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목청 높여 외치는 우리의 애정표현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알아줬으면 좋겠지만 그냥 희망사항일 뿐이다. 최근 엄마는 정말 활발해졌다. 삼키는 것이 힘들어져서 치매약을 잘 먹지 못하다 보니 활동을 억제가 안 되는 것이다. 오로지 냉장고와 군거짓거리를 찾아서 수천 번을 움직인다. 먹을 것이 있음에도 또 찾고, 먹고 있어도 또 입에 넣는다. 보고 있으면 미쳐 버릴 것 같은 감정이 올라온다. 그러면서 동생이 잠든 새벽에 혹시나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최근에 우리 형제는 새벽까지 조금 넘어서 까지 집에서 술을 먹었다. 치매환자를 보시는 집에서 나가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기에.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집술이다. 우리가 먹는 동안 엄마는 들어갔다가 나왔다가를 계속 반복했다. 눈은 초롱초롱하고 먹고 싶은 것에 대한 열망은 뜨거웠다. 엄마를 아무리 설득해도 엄마는 해맑은 미소와 손짓으로 계속 과자만 달라고 했다. 


태어나서 아프기 전까지 그 힘든 모든 여정을 잘 판단하고 생각하며 살아온 엄마인데 뇌가 죽어가니 이런 꼴이 되어 버렸다. 나는 뇌가 참 중요하다고 혼잣말로 이 현실을 원망하며 술잔을 따랐다. 그러면서 동생과 이야기를 했다. 동생은 가만히 있다고 이런 말을 던졌다.


"형, 옛날에는 아마도 사람들이 치매를 몰랐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엄마같이 치매가 오면 다 미쳤다고 생각했겠지? 아마도 좀비라는 캐릭터는 이런 치매환자들의 모습을 보고 뭔가 상상한 것이 아닐까?"


헛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었겠지만 난 격하게 공감했다. 그 옛날에 의료기기도 없고 아무것도 없던 그 시절에 멀쩡하던 사람이 이렇게 변하면 사람들은 분명 당황했을 것이 뻔했다. 겉모습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 말도 안 통하고 오직 먹는 것에만 열중하며 달려드는 그 모습.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익숙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 맞네. 영화 같은 거 보면 꼭 주인공들이 좀비가 된 가족을 숨긴 후에 어디에 묶어두고 보살피잖아. 마치 우리가 엄마를 보살피는 것처럼..."


나와 동생은 그저 서로를 보며 웃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행복이라고 위로하면서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 가족뿐이다. 엄마를 알던 모든 친구들, 친척들 모드 엄마의 안부를 묻지 않는다. 알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그냥 모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간다. 치매 환자와 함께 보내야만 인생이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사실 인생에 행복은 아주 잠시뿐이다. 아주 잠깐 멈춘 장면이 전부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힘들다. 아마 계속 행복해서 아무 걱정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건 우리 엄마처럼 환자일지도 모른다. 

엄마를 보면 세상 힘든 것은 아무 걱정거리가 되지 않는다. 엄마는 걱정하는 법을 잊었다. 그래서 더 행복해 보인다. 그냥 눈뜨고 과자를 찾고, 먹고, 잠들고, 일어나고를 반복한다. 


가끔 내 방에 있는 엄마 핸드폰을 보며 생각한다. 


'인생이 정말 허무하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어쩌면 마지막은 허무한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것도 모르기에 내일을 향해서 오늘을 잘 버티려 한다.


동생과 농담으로 좀비 엄마라고 엄마를 놀리고, 과자를 들고 엄마를 유인해서 목욕을 시키고, 가끔 강렬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과자를 달라고 웃음을 보이는 엄마를 보는 이 순간도 나중에 그리움으로 찾아올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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