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직장문화 소주한잔 할래?

기댈 곳을 찾는 어른들

by 고용환

나이를 떠나서 삶의 무게가 나를 심하게 누르면 잠시 모든 것을 뒤로하고 기대고 싶어 진다. 어릴 적에는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내가 컨트롤하고 힘든 일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버틸 거라고 착각한다.


생각해 보면 성인이 되고 삶은 더 치열해진다. 앞에서 웃고 내 고민을 들어주던 영원한 동지도 어는 순간에 나에게 등을 돌리며 실속을 앞에서 의리를 저버린다. 한두 번 배신자라고 욕도 하고 문자를 보내보지만 결국 배운 것은 '패배자'라는 타이틀이다. 길을 걸으며 수없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간다. 마음이 풍요롭지 않을 때는 모든 사람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반면에 내 삶에 대한 걱정이 없는 순간에는 주변을 바라보는 눈이 사라진다.


하지만 20대를 거쳐서 30대 그리고 40대로 갈수록 무게감은 더 무거운 진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악마 소리와 꼰대라고 손가락질받아가면서 지휘와 명예를 얻어도 결국 자신에게 생긴 작은 일에 기댈 곳이 없는 비참함을 느끼곤 한다.


가끔 드라마를 보면 노상 포장마차에서 혼자 술을 먹고 있는 중년의 배우들을 모습을 지금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정겨운 모습이고 소주 한잔이 심하게 당기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그런 포장마차에 혼자 찾아가려고 해도 그런 쓸쓸한 장소도 찾기 힘들어진 것이 현실이다. 어묵국에 소주 한 병을 시켜서 입에서 입김을 친구 삼아서 소주 한잔하는 그 모습이 항상 드라마에 나오는 이유는 그들의 외로움일 것이다.


어느 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집에서 좋지 않은 소식을 전화로 받았다. 너무도 충격적이었지만 표현을 할 수 없었다. 이미 지휘는 올라가서 팀장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나에게는 중요한 일들이 줄을 서 있었다. 어른이라는 것은 그런 것을 담담하게 이겨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묵묵히 일을 했다. 이유는 당장 벌어진 일을 해결할 수 이는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견디고 참고 멀쩡한 척하는 것이 어른의 기본 코스처럼 느껴졌다.


서운한 것은 모든 팀원이 야근을 하고 회사를 나올 때 '소주 한잔 할래? 하라고 말할 상대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요즘은 거절이 옵션이 아니고 필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초반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는 내 윗사람의 한숨소리까지 신경을 쓰고 먼저 '무슨 일 있어요?' 소주 한 잔 하시겠어요? " 물어봤던 것 같다. 물론 세상은 달라졌다. 그것에 적응하는 것이 꼰대에서 조금 멀어지는 길이고 시대에 발걸음을 맞추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도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가끔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진다.


그러면 궁금하다. 어른이면 결혼을 했을 거고 가족도 있는데 왜? 그 힘듬을 나누지 못하는가? 그런데 막상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 고통을 말한다는 것은 힘들다. 이유는 해결이 되지도 않고 괜히 말하면 내 주변 사람도 같이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부럽게 서로 감싸주고 챙겨주며 이겨가는 커플들도 있다. 아주 이상적인 모습이다. 나는 그런 부부나 커플들의 행동을 가장 부럽게 바라본 적이 있다.


내가 유학휴직으로 필리핀과 영국 그리고 유럽 여행을 하면서 공부를 할 때였다. 그곳에서 한국인 부부나 커플들이 만나서 생활하는 것을 보았다. 여행을 온 여행자가 아니고 현지에서 자녀를 키우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인연이 닿아서 같이 생활하면서 느낀 것은 타지에서 서로 똘똘 뭉쳐있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커플 이상의 것들을 서로 공유하고 있었다. 한국 부부가 자녀를 영국에서 키우면 자녀학업과 학교적응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리고 외지인으로써 서로 차별을 당한 경험이나 각자의 사회생활을 공유했다. 그 모습은 너무도 단단해 보였다. 절대 무너지지 않게 서로 의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랑 이상의 것들이 그들을 강하게 보호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나도 그런 이상적인 결혼 생활을 바라고 꿈꾸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마도 모두가 바라면서 결혼이라는 큰 결심을 실천을 옮겼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참으로 냉혹하다. 여러 가지 요소가 우리를 멀어지게 만들고 오히려 결혼 전보다 못한 관계로 변질시킨다. 나 또한 자식에게 부끄러운 부부싸움을 해본 경험이 있다. 이런 것도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루를 버티고 살아간다.


그래도 가끔은 기대고 싶다. 어릴 때는 알게 모르게 부모라는 큰 울타리에 기대고 투정 부리며 살았을 것이다. 가난한 생활이던 부유하던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 존재가 우리를 보호하고 감싸준다. 하지만 성인 되고 나이를 먹으면 치유보다는 배신이라는 단어가 주변을 맴도는 상황이 더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셀프 치유를 위해서 독서를 하거나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의 울타리 속을 찾아서 무의식 중에 한없이 맴돈다. 어쩔 수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싫든 좋든 주변과 함께 어울리면서 상처 받고 웃고 울면서 가끔 행복도 느끼면서 살아가야 하는 그런 동물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유난히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사람의 존재가 한없이 작게 느껴지고 안 믿던 종교를 가져야 하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불편한 현실이 주변에서 발생 안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복권을 사봐도 자고 일어나면 현실은 현실일 뿐이다. 그래도 우리는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한결같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는 친척형이 있다. 어릴 적 친척집에 놀러 가면 나이 차이가 15살 넘게 나는 형은 낮에도 일부로 낮잠을 잤다. 어린 나에게 형에게 물었다. "형 왜 이리 잠만 자? 어서 가서 비디오 빌려보자, 형."


형이 말했다.


"동생아, 형은 잠자는 게 좋아, 가끔 생각하는데 깨지 않고 영원히 자고 싶어."


그리고 바람대로 형은 깨지 않고 영원히 잠들었다.


어설픈 어른이 된 지금 형이 했던 그 말에 의미를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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