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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Dec 08. 2024

75. 엄마의 소소한 행복을 돌려받을 수 있다면.

콧줄식사를 보는 것이 너무 힌들다.

병원에 입원한 엄마는 씹어서 먹는 음식 대신 콧줄식사를 하고 계신다. 올해 추석 연휴 전에 뇌출혈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한 후 지금까지 한쪽 코의 구멍은 엄마의 입이 되어버렸다. 나는 사실 그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싫다. 영양소가 가득한 식사는 액체 형태로 제공되고 엄마는 거부할 수 없고, 맛을 느낄 수도 없이 그 가느다란 줄로 식사를 하고 있다. 어쩌면 중증 치매이기에 조금은 위안이 되는 부분이 있다. 적어도 엄마가 느끼는 좌절감은 뇌의 기능이 온전한 사람보다는 적을 테니까. 


그럼에도 유일한 삶의 행복을 빼앗아 간 것이 분하다. 엄마가 건강할 때도 엄마는 그다지 욕심이 많은 여자가 아니었다. 아니 욕심이라는 것을 가질 형편도 안되었고, 그런 투정을 받아 줄 든든한 배우자가 있지도 않았다. 그저 주어진 삶이 하루하루 무탈하기만을 바라며 하루를 살아왔다. 엄마는 표현을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조용히 가슴속에 어려움과 고통 그리고 힘든 여정을 담아두는 그런 사람이었다. 물론 성장환경의 영향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어린 시절 충분한 사랑, 안전한 보금자리에 대한 부재는 항상 불안한 삶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삶을 막살거나 희망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성인이 되자마자 두 아들 모두 일터로 나가서 돈 버는 것이 마음이 쓰였는지 아끼고 아끼며 돈을 모았다. 혹시나 나중에 도움을 주려고 그러셨다. 다행히 그런 노력은 엄마가 말로 표현한 적 없지만 깨끗한 내 집이라는 형태로 돌아왔다. 은행의 대출과 두 아들 그리고 엄마의 전 재산을 털어서 산 그 집에서 엄마는 처음으로 행복을 겉으로 표현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는 게 너무도 행복했다. 강남 아파트도 아니고 신축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수가 큰 것도 아닌 그저 흔하고 흔한 신축빌라였지만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행복하게 아침을 준비하는 그때 그 시절이 아련하다. 아마도 이런 영향에서 나는 투자공부를 더 했는지도 모른다. 더 나은 행복을 제공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 행복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이어졌고 엄마는 50대 후반에 중증치매 판정을 받았다. 가끔 사진을 보면 엄마의 병세가 너무 빨리 나빠진 것을 느낀다. 몇 년 전에 했던 당연한 것들이 점점 우리 삶에서 멀어졌다. 


적어도 엄마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 형제가 아빠를 대신해서 더 엄마를 돌보고 챙겼어야 했다.  병원도 더 자주 가고 수술을 해도 많은 시간을 들여서 좋은 곳을 찾아다녀야 했다. 그렇다. 이런 후회가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늦은 후회는 가슴에 상처만 남긴다. 동생은 아직도 이런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만약이라는 단어가 항상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 같다. '만약'에 고혈압 약을 먹게 신경 썼다면..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동생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단지 너무나도 슬픈 것은 엄마가 쓰러지기 전에 냉장고 시위를 하며 먹으려고 했던 그 수많은 음식과 좋아하는 과자를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영향 불균형으로 설사도 많이 하고 건강에 좋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엄마가 무엇을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로 나는 좋았다. 지금처럼 누워서 아무런 표현 없이 그것도 반쪽 마비가 온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사는 엄마보다는 더 자유로웠다. 그래서 엄마 코에 달려있는 유일한 영양분 공급처인 그 콧줄이 나는 싫다. 


엄마가 쓰러지고 몇 통의 전화를 했다. 다들 우리 형제와 엄마를 걱정하는 고마운 분들이다. 그중에 몇 분은 우리를 위한다고 말하며 조심스럽게 콧줄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콧줄을 끊고 보내드리는 것이 엄마를 위한 길이라고.'


물론 자식 된 입장에서 그렇게 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고 그렇게 하고 싶은 자식도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온기가 느껴지는 엄마의 모습을 하루라도 더 보고 싶기 때문에.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잘 모르겠다. 중증 치매라서 의욕도 없고, 자신과 모든 것을 잃어가는 이 과정에서 삶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나는 상상할 수 없다. 

엄마의 뇌사진을 보고 나는 기적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겨울바람처럼 냉정하게 모든 것을 바라봐야 했다. 그래야 고통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이기적이지만 그래야 하루를 버티면 살 수 있기에 그렇게 했다. 그래도 조용히 무엇인가 바라며 간절히 원해본다. 


몸이 안 움직이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그래도 먹을 수 있게만 해달라고 말이다. 엄마가 그 평온한 곳으로 가시기 전에 그래도 좋아하는 과자의 맛이라도 느끼며 하루하루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맛도 모르고 왜 배가 부른 지도 모르는 그런 콧줄로 공급되는 영양분 말고 진짜 음식을 먹는 삶이라도 제발 돌려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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