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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Dec 22. 2024

갈비뼈가 부러진 그날 밤하늘에서 빛나는 별을 보았다.

2024년 연말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그 날

만남을 최소화하면서 살아간 지 오래되었다. 사람을 갈구하고 옆에 없으면 불안하던 어린 시절을 지나서 사람을 가리고 필요에 따라서 만나는 관계들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억지스러운 관계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대신 빈 공간에 공부나 독서 등을 채워 넣었다. 이렇게 살아온 흔적은 내가 되어 이제는 사람들이 찾지도 않고 나도 사람을 억지로 찾지 않게 되었다. 만남이 있으면서 끝이 좋던 나쁘던 헤어짐이 있고, 무엇인가 유지하려면 부모 자식 관계가 아닌 이상 구두이든, 서면이든 무슨 서약 같은 것을 해야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된다는 것은 씁쓸했다. 


이런 식으로 특히 취업을 알아보는 직보기간에 공허한 무한의 시간을 느끼며 잔잔함속에 허우적거리다가 반가운 선배의 선배를 받았다. 이전 직장에서 그냥 만들어진 관계라기보다는 가치관이 비슷해서 더 흥미롭고 배울 점이 많다고 느낀 사람이었다. 내 생각이 옳다는 듯 그 선배는 전직해서 멋지게 자리를 잡았고, 이전의 삶보다 더 나은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희망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몇 십 분의 통화가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약속을 잡았다. 며칠이 지나고 평소라면 차를 타고 대리를 불었을 텐데 남는 것이 시간이고 그 시간을 느끼고 싶어서 버스와 기차를 타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2명의 멤버가 추가되었고, 모두 즐겁게 지내왔던 사이라서 더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나서 사는 이야기를 했다. 사람이야기, 전 직장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의 이야기 그리고 쓸데없이 잃어버릴 그런 이야기들을 소주잔과 함께 쏟아냈다. 오랜만에 마신 소주는 나를 둥둥 떠나니게 만들었다. 만취했다는 의미보다는 직장이라는 억지 관계조차 사라지지 소주를 마시는 횟수가 급격히 없어진 것 때문에 소량에도 아롱 했다. 그 마다 저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보다 적어도 5살 많은 선배들과 보낸 시간 속에서 나는 각자의 모습을 보았다. 아직 힘들지만 그곳에 남아 있으면서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과 나와서 개척하고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두 부류로 나눠져 있었다. 물론 모두 장단점이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와보니 상상했던 것과 어떻게 다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특히 마흔 초반에 이른 은퇴가 주는 부담감과 중압감은 하루하루 나를 억누르긴 했다. 그럼에도 선배들은 나를 응원해 줬고, 나도 그들을 응원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감싸고 응원하며 얼큰하게 화끈해진 얼굴로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기분이 좋았다. 택시가 아닌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보고 싶어도 보이지 않는 검은색 풍경도 나쁘지 않았고, 그래도 이런 사람들이라도 주변에 아직 존재함이 감사했다. 나를 빼면 모두 다음 날 출근하기에 빠르게 헤어졌고, 술도 적당히 먹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다면 날씨가 추웠다. 한동안 이게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이상한 날씨가 이어졌는데 그날따라 겨울로 변해있었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발걸음 재촉했다. 9시가 넘으면 반겨주는 사람 하나 없이 컴컴한 집이고, 따뜻한 온기를 싫어하는 가족 때문에 냉랭한 공기가 흐름이 다소 별로지만 그럼에도 내 공간이 있는 그곳에 빨리 도착하고 싶었다. 


주머니 손을 넣고 횡단보도를 건너서 걸음을 채촉하다가 나는 어딘가에 걸려 중심을 잃었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느낀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였으나 주머니에 들어간 손을 빼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넘어지면서 발꿈치로 떨어졌고 그대로 갈비뼈를 눌렀다. 길에 넘어진 나는 순간 직감했다. 이게 단순하게 넘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숨이 턱 막히면서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게 술 먹어서 이렇게 된 건가?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여러 생각이 흘렀고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지만 나오는 것은 신음소리뿐이었다. 


야속하게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몇 분을 버둥거리다가 나는 움직임을 포기했다. 잠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지금 조급해하면서 하루하루 눈 뜨고, 눈 뜨고 눈 감는 내 모습과 같았다. 헛웃음과 함께 정면을 주시하니 밤하늘에 별이 보였다. 찬 공기 때문인지 오늘따라 유난히 별이 빛났다. 그렇게 나는 내 몸이 적응할 시간을 주며 대로변에 누워서 밤하늘을 보았다. 


지금은 일어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음을 알고 포기하니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별빛을 보니 마음이 고요해졌다. 평소라면 재수 없다고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날은 그냥 웃음만 나왔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작은 넘어짐에 모든 삶과 작별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만약이라는 것은 언제나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런 넘어짐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랬다면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이었을 텐데. 그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냥 작은 존재임을 인정하고 내 선택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영원히 응원하며 하루하루를 그냥 살아냄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했다. 


느끼기에 몇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하지만 십 분 정도 누워있었던 거 같다. 나는 옆으로 몸을 굴려서 겨우 일어났다. 숨도 쉴 수 없고 움직이면 통증이 머리끝까지 전달되었다. 응급실보다는 일단 집으로 향했다. 캄캄한 현관문을 열고 작은 신음과 함께 내방 문을 열고 힘겹게 이층침대로 올라 겨우겨우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통증은 더 심해졌고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점심이 되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근처 병원을 갔다.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 선생님을 만나니 갈비뼈가 세 개가 부러졌다고 알려주셨다. 나는 그냥 웃었다. 어떻게 그렇게 넘어졌다고 뼈가 부러지나 싶었다. 약골도 이런 약골이 있나 싶었다. 갈비뼈라서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했다. 대신 진통제를 잔뜩 받았다. 


지금은 3주가 조금 지나서 이제 글도 쓰고 조금 사람답게 산다. 하지만 중간에는 열도 나고 아주 힘들었다.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그냥 참아가며 버티고 버텼다. 대학원도 마무리하고, 인턴강사 수업도 똑같이 나갔다. 그리고 집에서 요리도 하고, 종종 박사 졸업 논문도 건드렸다. 미묘한 고통이 그냥 당연한 것이 될 때까지 적응한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냥 아픈 게 익숙해졌다. 


24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좋은 일은 아니다. 이렇게 몸이 아프지 않아도 아쉬운 것들은 넘쳐났다. 게다가 예민한 성격 때문에 나는 그냥 넘길 일도 마음에 오랜 시간 품어야만 했다. 그래서 이번 경험은 나름 괜찮았다. 어쩌면 잠시 누워서 별도 보고 여유를 가지라는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 


급하면 실수하거나 후회를 한다. 춥다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뛰지 않았으면 넘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울퉁불퉁한 길을 원망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물론 변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하늘을 더 올려다보는 삶을 향해 25년부터는 노력하려고 한다. 너무 앞만 보며 달렸다. 잠시 쉰다고 세상이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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