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과정 소논문 투고 이야기
특수대학원에서 석사논문을 쓰겠다고 한 순간부터 이런 일이 생길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니 직감보다는 또 사서 고생하는 길을 선택한 나 자신을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그런 감정이 들었다.
너무 많이 석사 때 일을 언급했기에 생략하고, 나는 그 선택의 연장선인 박사과정에 몸을 담았다. 이제 마지막 학기이고, 벌써 입학한 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일반대학원이라 많은 기대를 하고 입학했고, 기대에 부흥하는 부분도 있었고 역시나 실망이 밀려오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과제부터 발표 그리고 종합시험 등을 순서대로 넘어가며 박사논문 자격을 얻기 위해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나는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공부라고는 제대로 한 적도 없고 모든 게 느린 아이. 바로 그게 나다. 그래서 쉬운 것도 절대 쉽지 않아서 항상 심호흡을 하곤 한다. 아직 박사 논문을 건들지 않았지만 2년의 과정 중에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등재지에 논문을 투고하는 일이었다.
2편 이상의 논문을 지도교수와 함께 써서 등재시켜야 박사 논문을 쓸 수 있다는 규정 때문에 무조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석사 논문의 분량과 비교하면 20페이지 내외의 소논문은 사실 어렵다고 생각하며 접근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역시나 세상을 모르는 순수한 아제의 멍청한 생각이었다.
우선 관련 학회부터 검색했고, 그 학회의 논문들을 살피면서 내 논문이 조금 수월히 통과되기 위한 알아보는 과정도 길었다. 선배 기수도 거의 없고, 연구소도 없기에 무엇을 물어서 하는 것이 제한되었다. 그래서 맨 몸으로 싸늘한 바람 앞에 서야만 했다.
작년에 첫 번째 논문을 투고할 때도 첫 번째 결과는 '불가'였다.
써본 사람 입장에서 아무리 부족해도 시간과 노력을 손 끝에 담아서 써 내려간 논문이기에 기분이 상하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나는 심사위원 3명이 남긴 피드백을 읽고 또 읽으며 수정작업에 들어갔다. 어떤 분은 괜찮다고 하고, 어떤 분은 그 부분이 가장 틀렸다고 하고. 어느 장단에 맞춰서 수정해야 하는지 어질어질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쓴 논문이 그만큼 논리적인 글이 아니라는 사실 하나였다.
몇 개월이 지나고 두 번째 투고를 해서 나는 '수정 후 게재'를 받아 겨우 등재지에 첫 번째 논문을 올렸다. 나름 기쁘기도 하고 완벽히 혼자 이뤄낸 일이라서 더 기뻤다. 나름 두 번째 투고에 자신감도 생겼다.
그렇게 나는 올해 두 번째 논문을 써 내려갔다. 수업도 열심히 듣고, 나름 연구방법론에 대한 연구와 선행연구들을 읽어서 그런지 주제를 잡는 것과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 수월했다. 쓰는 시간도 저 줄어들었다. 그렇게 나는 올해 전반기 학회에 투고를 했다. 그리고 다시 '불가'라는 판정을 받았다.
피드백은 더 차가웠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 관점은 너무도 날카로웠다. 질적연구라서 딱 떨어지는 것이 없는 것도 더 불리하게 작용하는 듯했다. 통계를 돌리면 적어도 이 정도의 비판이 나올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수정을 했다. 그리고 다른 학회를 찾았다. 그렇게 두 번째 투고를 6월쯤 넣었다. 이 정도 되니 자신감은 바닥을 치고 심사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렇게 몇 주를 기다려서 나온 결과는 또 '불가'였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아.. 역시나 부족하구나.. 6명의 심사위원분들의 의견이 다 비슷하다면...'
내가 쓴 논문은 쓰레기구나. 그렇게 냉정한 심사평을 마주하며 좌절을 경험하였다. 물론 목숨을 걸었다?
이 정도로 표현은 못할 것 같다. 대학을 다녀보니 정말 전임교수가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이고, 엄청난 운과 노력 그리고 그 외적인 것들이 충분히 갖춰져야 겨우 가능한 일로 보였다. 정체감도 없이 떠돌다가 이렇게 공부하는 나를 그것도 특별한 능력도 없는 나를 받아 줄 대학은 없어 보였다. 너무 빠른 포기는 아니었다. 세상은 정말 공평하기도 하고 냉정한 곳이라는 것을 처절히 배우며 20년 넘게 조직생활을 했다.
그냥으로 보이는 것도 그냥은 없었다. 모든 이유가 존재하고 그 이유는 사소해 보여도 사소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그래도 박사논문을 써야만 했다. 뭐 여기까지 왔으니 마지막 도장 5개는 받고 내 삶을 돌아가겠노라고. 그래서 이를 악물고 다시 소노문을 다듬었다. 아니 거의 다시 쓰는 수준으로 고치고 또 고쳤다.
10월 말 3번째 학회에 투고를 했다. 이번 논문이 그래도 가장 논문 같았다. 같은 대상으로 분석한 연구인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분석결과는 더 확실한 결론으로 이어졌다. 초조하게 기다렸던 심사 결과를 보고 나는 안도했다.
'수정 후 게재'
보완해서 다시 올리면 된다는 말이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심사의견서를 다운로드하여서 읽기 시작했다. 한 분이 '불가'를 주셨다. 그분의 피드백은 참으로 직설적이면서 나의 부족한 논리를 너무 집요하게 파고 들어서 나를 민망하게 만들었다. 물론 소논문의 특성과 연구자의 관점과 시각을 모두 이해한 심사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염두한 모든 것을 더 요구하니 나는 총알이 없는 군인처럼 진지 뒤에 숨고 싶었다.
연구 관련 나름 소통을 하는 한 분의 동료 선생님께 전화해서 투덜거리고 짧게 주어진 기한을 그래도 맞춰보겠다고 감기몸살로 영 불편한 몸을 이끌고 심사평에 충족하게 위해 주제부터 다시 수정해서 전체를 손봤다. 꼬박 3일이 걸렸다. 몇 번을 읽고 또 읽고 보충하다 보니 각주가 계속 늘어만 갔다. 그렇게 논문은 8페이지가 늘어났고, 처음과는 다른 글이 되어 있었다.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고치고 나는 기한이 다 되어 제출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 연락을 받았다.
'게재 가'..
9명의 심사위원분들이 이 논문을 보았다. 사실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그만큼 도움은 되었다. 적어도 왜?라는 질문에 '네'라고 이유를 설명할 정도는 되어가는 것 같았다.
수많은 연구결과를 만들어 낸 연구자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단독연구(공동저자에 대한 세부적인 이야기는 모두 비슷비슷한 사정이 있을 것이기에 논하지 않기로 하고)로 연구한 분들을 말이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배우는 중인데 사실 많이 지쳤다. 이걸 생업으로 하려면 그만큼 열정과 대의 그리고 보람을 같이 느껴야 가능할 것 같았다. 물론 백수라서 아직 이것저것 탐색하고 있지만 나 또한 급해지면 익숙한 것을 향해 다시 방향을 틀어버릴 가봐 벌써부터 걱정된다.
아무튼 박사논문이라는 더 큰 고비기 있지만 그래도 2번째 논문까지 마무리했으니 그걸로 만족하려 한다. 내 상황과 여건에 공부를 하는 것은 욕심이라기보다는 가만히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하는 그런 행위?라고 이해해도 될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신세한탄, 불평, 멀쩡한 사람들 시기 등등 계속 암흑으로 변해가기에 무엇인가 내 정신을 잡아 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도박'이나 '나쁜 짓'보다는 연구가 더 의미 있지 않은가?
아무튼 후련하다. 물론 지금 봐도 부족한 것이 보이지만 그래도 작년보다는 더 좋은 논문을 쓴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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